"고소득 전문직종, 이건 옛말입니다. 하는 일에 비해 처우나 대접은 갈수록 열악해지고 책임만 커졌습니다. 회계사 시험에 합격해도 계약직으로 취업하는 실정입니다."
최근 회계업계를 바라보는 젊은 회계사들이 안타까움 담긴 하소연을 하고 있다.
경제가 성장하고 기업의 경영환경이 복잡해질수록 회계사 역할은 더욱 중요해지고 있지만 회계사에 대한 처우는 점점 각박해지고 있다.
회계법인의 주 수익원인 감사보수는 지속적으로 감소해왔다. '갑을 관계'에 놓인 기업과 회계법인, 그 여파가 고스란히 회계사들에게 돌아가고 있다.
일감을 주는 기업과 그 일감을 경쟁적으로 수임해야 하는 회계법인. 회계법인 간의 출혈경쟁도 문제이지만 그 이면에는 기업들의 감사보수 후려치기가 더 큰 문제이다.
과거 10년 동안 감사보수는 시간당 8만3000원에서 8만원으로 줄었다. 특히 2011년 국제회계기준(IFRS) 도입 이후 감사시간은 22%가 늘어난 반면 감사보수는 오히려 10% 떨어졌다. 일은 늘었지만 그에 대한 대가는 줄어든 셈이다.
국내 주요 기업들의 감사보수 역시 10년 동안 큰 변화가 없거나 오히려 줄었다. 현대차와 SK텔레콤, 포스코, GS칼텍스, 롯데쇼핑, 한화케미칼, 대한항공 등은 감사보수를 줄였다.
10대 그룹의 주력 계열사 중 그나마 시간당 감사보수가 늘어난 곳은 삼성전자 한 곳 뿐이다.
감사보수가 유일하게 오른 삼성전자 역시 해외 사례와 비교하면 형편없는 수준이다. 미국 GE의 매출은 삼성전자에 크게 못 미치지만, 감사보수는 2013년 기준 900억원이 넘어 삼성전자의 38억원과 비교하면 23배에 달했다.
이러한 이유로 회계사 평균 연봉은 외환 위기 이후 '제자리걸음'이다.
외환 위기 직전 신입 회계사의 평균 연봉은 3500만원 수준이었다. 당시 한국경영자총협회가 발표한 대졸 신입사원 평균 연봉은 1581만원으로, 회계사 평균 연봉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했다.
그러나 상황은 변했다. 현재 초임 회계사 평균 연봉은 3500~4000만원 사이로 외환 위기 당시와 큰 변화가 없지만 대졸 신입사원 평균 연봉은 3700여만원까지 올랐다.
더구나 계약직 회계사마저 증가하고 있는 추세다.
지금처럼 감사보고서를 작성하는 1분기는 회계사들에게 '지옥의 시즌'이다.
12월 결산법인의 경우 기업 실적자료 작성이 마무리되는 1월 말부터 사업보고서 제출 기한인 3월 말까지 회계사들은 감사보고서를 작성해야한다. 그런데 12월 결산법인이 전체 외부감사 대상 기업의 95%에 달하고 있다.
이 기간 동안에 외부감사를 몰아서 벌이다 보니 회계사들이 격무에 시달리는 것은 물론, 이 기간에만 활용될 계약직 회계사들마저 늘고 있는 것이다.
회계사 간 양극화도 상황을 더욱 어렵게 만든다. 파트너(임원)급에 올라 있는 회계사는 억대 연봉을 받지만 현 시점에서 젊은 회계사들이 책임자 직급으로 올라가도 억대 연봉을 꿈꾸기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이 때문에 공인회계사 자격증을 취득했음에도 회계법인을 찾는 게 아니라 금융당국이나 일반 기업에 회계·재무 담당자로 가는 경우가 늘고 있다.
회계법인에서 수년간 근무하다 금융감독원으로 자리를 옮긴 한 회계사는 "비록 연봉은 줄었지만 영업 압박이 없어 천국이더라"며 "과거 회계사 수험생들은 돈도 돈이지만 직업에 대한 자부심이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프라이드를 잃었을 뿐 아니라 주변의 불쌍하게 바라보는 시선마저 느껴진다"라고 말했다.
한 대형 회계법인 고위 임원은 "젊은 회계사들에게 밝은 미래를 제시할 수 없어 미안한 심정"이라며 "회계사라는 직업에 회의감을 갖는 회계사들이 갈수록 늘고 있다"고 안타까움을 나타냈다.
회계사를 '자본시장의 파수꾼'이라고 표현하기도 한다. 경제가 발전할수록 기업에 대한 외부감사가 더욱 철저해야 하는 만큼 회계사는 우리 경제에 꼭 필요한 인적 요소이다. 회계사의 질적 성장과 함께 이들에 대한 처우도 개선돼야 한다.
만일 회계사들이 제 역할을 하지 못할 때, 자본시장의 발전과 건전한 투자문화의 확산은 '공허한 메아리'에 불과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