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직 8대 금융감독원장을 지낸 한 고위 당국자는 "금융 제도 개혁은 사람의 문제"라고 말했다.
당시 18대 대선을 앞두고 정부와 정치권에서는 금융 감독 체계를 개혁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았다. 무엇보다 당시 대선 후보였던 박근혜 대통령은 금융 소비자를 보호하기 위해 현재의 금감원을 분리하고 '금융소비자보호원'을 설립하는 것을 공약으로 내세웠다.
그렇다면 '사람이 문제'라는 것은 어떤 의미를 지닐까.
1999년 외환 위기를 계기로 금감원이 설립된 이후 금융 감독 체계는 수차례 변화를 겪었다. '개혁'이라는 명분 하에 부서가 개편되고 사라지고 생겨나는 일이 반복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축은행 비리 사태, 기업어음(CP) 부실 사태, 개인정보 유출 사태 등 대형 금융 사고는 끊임없이 일어났다. 모든 사건이 몇 사람의 잘못된 판단이나 부정한 유착에서 비롯됐다.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최근 금감원의 임원 인사는 과연 바람직한 금융 감독 체계를 향해 가고 있는 것인지 의심스럽다.
'인사는 만사'라는 말이 자주 강조되지만 금융권에서는, 더욱이 금융 제도를 만들고 정책 결정을 하는 금융 당국에서는 가장 중요하고 새겨봐야 할 이야기이다. 금융 산업 자체가 사람이 만드는 제도로부터 파생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번 금감원 임원 인사는 어땠나. 전임 원장이 휘하에 두고 있던 임원이라는 이유로 절반 이상이 옷을 벗고 나갔다. 전부 다 임기를 채우지 못한 인사들이다.
임원 인사가 있기 전 금감원 다수 관계자들은 "임기가 많이 남아 있기 때문에 상당수가 교체되지 않을 것이다"고 추측했다.
이들 임원 중에는 그 분야에서 전문성을 인정받았을 뿐 아니라 부하 직원들로부터 존경 받는 리더 1위에 뽑힌 사람도 있다.
이번 인사 결과를 두고 일부에서는 조직 개편과 연관 짓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정부이자 금감원의 상위 기관인 금융위원회가 금감원 분리를 위해 법 개정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상당한 반발과 어려움이 있었기 때문이다.
금감원 노조는 금융위의 인사권 확대와 낙하산 시도를 문제 삼아 금융소비자보호원 설립에 반대해 왔다. 현재의 금감원과 마찬가지로 새로 생길 금융소비자보호원장 역시 금융위원장 제청을 받아 대통령이 임명하는 자리이며, 임원 선임에 있어서도 금융위 출신 고위 공무원이 내정되는 것을 우려한 탓이다.
물론 인사 내막이야 인사권자만이 알 수 있는 일이다.
그렇지만 정권 교체기도 아닌 시기에 이유를 알 수 없는 대규모 물갈이와 납득하기 어려운 인사 시스템을 이해할 만한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심지어 지난해 KB금융그룹 내분 사태에 대한 문책성으로 금감원장이 물러난 데 반해 금융위는 그 어떠한 책임도 지지 않았다.
국제통화기금(IMF)이 2013년 한국 금융 평가(Financial Sector Assessment Program)를 실시 후 '정치 리스크를 개선하라'고 권고했다. 한국 금융이 정치권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고 지적한 것은 우리가 금융 제도를 발전시켰는지는 몰라도 인식 수준이나 관행은 여전히 과거에 머물러 있다는 뜻이다.
금감원은 잘못된 제도를 바로잡고 금융 소비자인 국민을 보호하기 위해 만들어진 조직이다. 그런 금감원이 언제까지 옛날 방식에 머무르며 인사 하나 제대로 하지 못한다면 국민 중 어느 누가 '감독'이라는 권한을 인정해 줄 것인가.
더군다나 사람은 그대로인데 조직 개편만 한다고 해서 선진적인 금융 감독 체계가 갖춰질지도 믿을 수 없는 일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