④'연말정산 민란(民亂)', 책임질 사람이 없다

근로자들의 지갑을 섣불리 건드린 후폭풍이 심상찮다.

예상치 못한 연말정산 여론에 정부와 정치권 당황하며 납작 엎드리고 있는 모양새다.

올해 연말정산은 '덜 내고 덜 돌려받는' 방식의 간이세액표와 소득공제가 적용되던 의료비, 교육비 등이 세액공제로 전환되는 첫해로, 갑작스레 줄어든 연말정산 환급액에 다수 근로자들이 '세금폭탄'이라며 분노를 표출하고 있는 상황이다.

논란이 불거지자 정부와 여당은 앵무새처럼 자신들의 기존 입장만 반복했다. 홍보가 부족해 국민들이 오해했다는 황당하기 짝이 없는 이야기까지 내뱉었다.

결국 거센 조세저항에 무릎을 꿇고 지난 21일 보완책 추진을 천명했지만, 근본적인 해결책은 생략되면서 국민들의 분노를 잠재우는데는 실패한 모습이다. 

세부담 증가 여부는 일단 접어두고서라도 정부가 세련되지 못한 방법으로 인해 자기 발등을 찍었다는 점은 연말정산 세금폭탄 논란이 남긴 아픈 유산이다. 그렇다면 사태의 책임은 과연 누구에게 있는 것일까. 그리고 그 책임자들은 대체 어디로 사라져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있는 것일까.

시간을 거꾸로 돌려, 2013년으로 가보자.  

□ 연말정산 민란의 단초를 제공한 인물들 = 이번 연말정산에 적용되는 세법개정안은 지난 2013년 8월 현오석 전 경제부총리 겸 기재부 장관의 지휘 아래 김낙회 당시 기재부 세제실장(현 관세청장)이 만들어낸 작품이다.

당시 소득세법 개정안 초안은 각종 소득공제를 세액공제로 전환하고, 근로자들의 1순위 공제항목인 신용카드 소득공제율을 15%에서 10%로 낮추는 것을 골자로 하고 있었다.

정부는 시뮬레이션을 통해 연봉이 3450만원을 초과하는 근로자 434만명(전체 근로자의 28%)의 세부담이 늘어나는 것으로 파악했고, 중산층 세금폭탄이라는 반발여론이 거세게 일어났다.

불난집에 기름을 붓는 격으로 당시 조원동 청와대 경제수석은 세법개정안 브리핑을 통해 "거위가 고통을 느끼지 않도록 깃털을 살짝 빼는 것이 세금을 걷는 것"이라며 "어느 정도는 감내해야 하지 않나"라고 말해 대중의 분노를 이끌어 냈다.

결국 박근혜 대통령의 '원점 재검토' 지시로 현 부총리가 다시 수정안을 들고 나왔다. 세부담 증가기준을 연간 총급여 3450만원에서 OECD 중산층 기준인 5500만원(가구별 중위소득의 150% 이하)으로 올려 세부담이 늘어나는 근로소득자를 434만명에서 200만명대로 크게 줄이겠다는 것이었다.

발표 당시 최경환 새누리당 원내대표는 "소득공제를 세액공제로 전환할 때 서민의 세부담이 증가하지 않도록 정부에 수정을 요구했다"며 대중의 이해를 구하기도 했다.

그리고 중산층 세금폭탄이라는 '시한폭탄'을 안은채 정기국회가 개회됐다.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조세소위는 2013년 12월2일부터 31일까지 총 15차례 회의를 열고 세제개편안을 논의하게 됐다.

□ 조세소위 '세금폭탄' 출고과정 들여다보기 = 지난 2013년 12월24일 조세소위 속기록을 살펴보면 세금폭탄이라고 불리는 올해 연말정산에 대해 당시에는 소득공제냐 세액공제냐를 두고 약간의 논의가 있었던 것 말고는 특별한 논쟁이 없었다.

새정치민주연합 이용섭 의원은 "기본적인 공제인 보험료, 의료비, 교육비 공제는 비용의 성격이기 때문에 소득공제로 남아야 한다"고 말했고, 홍종학 의원도 "개인연금계좌까지 소득공제로 하는 것은 타당하지 않지만 보장성보험료까지 세액공제로 넘겨야 하느냐에 대해서는 의문의 여지가 있다"고 말했다.

정의당 박원석 의원은 "조세형평성을 기하는 측면에서 특별공제 부분을 세액공제로 바꾸는 것은 정부안대로 하는 것이 특별히 문제가 없다"며 "인적공제부분을 세액공제로 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고 본다"고 정부 개정안을 평가했다.

반면 새누리 이만우 의원은 "교육비나 의료비를 세액공제로 하면 고소득층 부담이 크게 늘어난다"고 말했다.

김낙회 세제실장은 "정부의 소득세제 개정으로 전체적으로 근로자에게서만 약 2300억원 정도의 세수감소가 날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나성린 의원은 "분명히 손해보는 계층이 나오고 이득보는 계층이 나온다"며 지금 사태를 바라보는 이들의 '실소'를 자아내는 발언을 하기도 했다.

이후 2014년 새해 첫날 열린 제321회 국회 제4차 본회의에서 2013년 소득세법 개정안은 투표한 의원 286인 중 245인이 찬성, 6명 반대, 35명 기권으로 통과됐다.

당시 여당 조세소위 위원이었던 새누리 나성린, 안종범, 류성걸, 이만우, 김광림, 이한성 의원 전원이 소득세법 개정안 통과에 찬성했고, 야당 조세소위 위원이었던 조정식, 박원석, 이용섭, 윤호중, 홍종학 의원 중 박원석 의원을 제외한 전원 찬성표를 던졌다.

□ 아무 소용없는 '정책실명제' = 대체 누구에게 책임을 물어야 하는 것일까. 당시 찬성표를 던졌던 새정치 윤호중, 홍종학 의원마저도 기자회견을 통해 2013년 소득세법 개정안의 문제점을 지적하며 '피해자 코스프레'를 하고 있는 이 상황에서 말이다.

정부도 정치권도 그 누구도 책임질 사람이 없다.

지난 2013년 정부는 정책실명제를 도입했다.

정책을 주창하고 설계한 공무원과 그 정책을 시행하고 감독한 공무원들의 성명을 확실히 밝혀, 정책의 성공과 실패에 대해 책임을 지게 하는 제도가 정책실명제다. 하지만 대한민국 정부 부처의 정책실명제는 빈껍데기에 불과하다는 것이 이번 사태를 통해 증명됐다.

박완규 중앙대 경제학과 교수는 "제도를 시행하기 전에 예측을 제대로 못한 것 같다"며 "소득공제 항목을 거의다 세액공제로 돌리다보니 전반적으로 연말정산 추가세액이 늘어나게 됐다"고 말했다.

그는 "청와대에서도 적게 걷고 적게 돌려받는다고 했는데, 걷는 것을 줄인게 아니라 똑같이 걷고서 환급받는게 줄어든 것이다. 세부담이 올라가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