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써 네 번째 속은 국민들의 분노는 수그러들기는 커녕 마른장작에 기름을 들이부은 것처럼 활활 타오르고 있다.
이번 연말정산 대란의 시초가 된 2013년 발표된 세법개정안이 여론의 거센 반발로 수정된 것도 모자라 지난해 초에는 주택 임대차시장 선진화 방안으로 과세형평성 논란까지 일어나면서 기획재정부가 부랴부랴 수정안을 내놨다.
이런 충격이 채 가시기도 전에 담뱃값 인상에 이어 연말정산 대란까지 근 2년 사이 국민들은 속고 또 속았다. 담뱃값으로 2000원이 더 나가고 연말정산으로 몇십만원 혹은 몇백만원을 토해내도 결코 증세가 아니라고 말하는 정부의 흔들리지 않는 억지도 계속되고 있다.
정부는 지난 2013년 세법개정안 발표 당시 세부담 증가 기준을 당초 연간 총급여 3450만원에서 5500만원으로 올리는 수정안을 내놓으면서 5500만원 이하에 해당하는 근로자는 세부담이 늘어나지 않을 것이란 말로 국민들을 설득했다.
주택 임대차 선진화 방안도 임대소득에 무조건 과세하겠다던 방침을 선회해 2016년까지 비과세 하는 한편 소득이 연 2000만원 이하일 경우 14%의 분리과세를 허용하는 수정안으로 임대소득이 노후소득의 전부인 은퇴 노년층을 달랬다.
이 때까지만 하더라도 국민들은 정부의 수정안을 믿었다.
아니 믿을 수밖에 없다는 말이 더 정확할 것이다. 중요한 과세정보나 자료는 기재부가 다 틀어쥐고 공개하지 않는 상황에서 추계를 해 볼 수 있는 자료는 고사하고 어려운 세법용어에 헤매는 국민들은 그저 정부의 말이 진실이겠거니 믿을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결과는 어떤가. 총급여 5500만원 이하 근로자들도 세부담이 늘어날 뿐더러 세부담이 얼마 늘어나지 않을 것이라던 연봉 7000만원 이상의 고소득 근로자들은 말 그대로 세금폭탄을 맞게 됐다.
정부의 감언이설에 다시한번, 제대로 속은 것이다.
그런데 이를 수습하는 정부와 국회의 태도가 이상하다.
처음에는 정부가 증세가 아니라거나 간이세액표를 조정해 더 많이 걷고 많이 돌려주는 방식으로 바꾼다는 대책을 내놓아 '조삼모사'라는 비판을 받더니 이제는 여당이 연금계좌 세액공제율을 인상하고 출생입양자녀공제를 신설하고 소급적용을 검토하겠다고 나섰다.
그것도 4월 임시국회 때 소급적용을 '검토'해보겠다고 말이다.
근로자들의 연말정산이 끝난 뒤 상황을 봐서 법안을 통과시키겠다는 것이 아닌 '검토'하겠다는 정부와 여당. 당정의 '국민들 간보기'는 계속 되고 있는 것이다.
야당의 태도 또한 황당하기 짝이 없다. 조세소위에서 함께 법안을 심의 통과시켰던 야당이 오히려 '피해자' 행세를 하며 국정조사를 하자고 주장하고 있다.
당시 소득세 최고 과표구간 3억원에서 1억5000만원으로 하향조정하는데 몰입했던 민주당은 여당과 양도세 중과 폐지를 놓고 막판 빅딜을 벌이면서 세액공제 법안을 처리했음에도 현재는 정부와 여당의 밀어붙이기로 법안이 통과됐다고 주장하고 있다.
국민들은 도대체 누구를 믿어야 하는가?
전문가들은 소득공제보다 세액공제 방식이 고소득자에게 세금을 더 걷는 '소득재분배' 효과가 더 크다고 말한다. 장기적으로 봤을 때는 세액공제로 가는 것이 맞다는 의견이 우세하다.
그럼에도 국민들은 정부와 국회에 속았다고 아우성을 치고 있다.
정부와 국회가 과연 무엇을 놓쳤기 때문일까.
정부 정책이 아무리 좋아도 중요한 것은 국민들의 '의견수렴 과정'이다. 정부는 2013년 세법개정안을 만들면서 전문가들과 국민들의 의견을 충분히 수렴하지 않아 수정안을 내놓은 사상 초유의 사태를 만들었고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조세소위원회는 비공개 회의를 진행해 논의 과정을 철저하게 가렸다.
회의가 투명하게 운영됐다면 국민들의 목소리가 국회 논의 과정에 반영됐을지도 모를 일이다.
지난 2013년 조세소위 첫 회의가 열렸을 당시, 정의당 박원석 의원은 회의를 공개해 투명하게 운영하자고 주장했지만 거대 여당과 야당은 한 목소리로 공개를 반대했다. 논의과정이 실시간으로 언론에 전달된다면 세법을 잘 모르는 국민들이 혼란스러워 한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이들의 논리를 뒤집어서 말하면 국민들은 세법에 대해 무지한 사람들이기 때문에 정부와 국회가 정하는대로 따르기만 하면 된다고도 충분히 해석가능하다.
그 말을 했던 사람이 지금의 청와대 경제수석인 안종범 수석이다.
하지만 정부와 국회가 생각해봐야 할 것이 있다. 공무원들의 월급과 국회의원들의 세비는 국민들의 주머니에서 나온 세금으로 지급된다. 그 세금으로 먹고사는 이들이 그들만의 리그에서 국민들의 동의도 없이 주머니를 턴다면 국민들은 세금을 낼 이유를 찾을 수 있을까?
지금 이 순간도 내가 낸 세금이 그들의 월급으로 쓰여지고 있다는 사실이 씁쓸하게 느껴진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