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경제가 위기에 놓였다. 정부는 경제 활성화를 위해 규제 완화를 추진하고 있다. 일자리를 창출하고 기업의 경쟁력을 키운다는 방침이다.
그러나 정부가 규제 개혁을 추진한 것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무엇보다 실제 시장에서 나타나는 효과와 실효성은 미미하다는 게 중론이다.
규제 완화에 가장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이 금융 산업, 그중에서 은행 산업이다. 지난해 7월 금융위원회는 금융권으로부터 불필요한 금융규제를 신고 접수 받아 일부를 개선, 정책에 반영키로 했다.
이번 규제 완화 정책이 향후 한국 금융의 위기를 극복하고 바람직한 기틀을 마련할 수 있을까. 조세일보(www.joseilbo.com)는 좀 더 현장감 있는 금융규제개혁의 방향을 모색하기 위해 전문가들의 의견을 듣는 자리를 마련했다.
이에 앞서 시장 참여자들을 통해 설문을 진행하고 현장의 소리가 정책에 반영될 수 있도록 했다. 설문에 답한 은행 및 금융지주 관계자들은 "정부 정책의 방향이 맞지만 실질적으로 은행 산업에 도움이 되지는 못하고 있다"고 답했다.
□ "정책 실효성 없다" 시장 평가 냉담 = 지난해 정부에 신고 접수된 금융규제는 약 1700건. 금융위원회가 규제 개혁 신문고를 설치해 시장의 목소리를 적극 반영한다는 계획은 '혁신적'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그렇지만 상당수의 건의가 받아들여지지 않은데다 오히려 규제가 강화되고 있다는 비판도 제기된다. 무엇이 문제일까.
금융은 근본적으로 '규제 산업'이라는 사실을 부인할 수는 없다. 문제는 규제 정책이 자주 바뀌고 예측 불가능하다는 데 있다.
시장 참여자 중 다수는 규제 완화 정책의 방향에 대해 공감했다. 단, 효과와 실효성은 미미하다고 지적했다.
대형 시중은행 관계자는 "규제의 복잡성, 모호성 때문에 현장에서 미처 알 수 없는 규제가 존재한다"며 문제를 지적했다.
그는 "전반적인 규제 개선과 완화의 추세에도 불구하고, 감독 당국이 수시로 각종 보고서나 자료를 요청함에 따라 업무 부담이 있다"고 덧붙였다. 또한 "규제 개선의 노력에 대한 체감도가 다소 떨어진다. 과도하거나 중복되는 자료 또는 보고서의 요청을 최소화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다른 은행의 관계자는 "정부 교체 시기마다 새로운 규제 정책이 추진되기 때문에 예측이 어렵다"고 말했다.
□ 기술금융 문제없나…또 다른 규제 = 정부는 중소기업과 벤처기업의 자금 통로를 열어주기 위해 '기술금융' 장려 정책을 시행 중이다. 기술금융이란 은행이 건물이나 부동산 없이 기술만을 담보로 대출을 승인해 주는 것을 말한다.
기술금융은 은행 대출과 관련한 규제를 개선해야 가능해진다. 문제는 정부가 기술금융 실적을 은행 경영 평가에 반영하는 등 강제하면서 오히려 '또 다른 규제'가 되고 있다는 점이다.
시중은행의 여신 담당자는 "기술금융 실적을 단기간에 끌어올리기보다는 효율적으로 지원할 수 있는 프로세스를 체계적으로 구축해 나가면서 진행해 나갈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다른 관계자는 "기술금융은 중소기업을 위한 것이기 때문에 나쁘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이를 은행 평가에 반영하고 수수료 부담을 가중시키는 것은 정부가 과한 측면이 있다"고 비판했다.
대형 금융지주의 관계자는 "금융회사의 기술평가서 의존도가 높은 만큼 기술평가기관이 보다 양질의 기술평가서를 제공해야 한다"고 말했다.
은행이 기술금융을 늘릴 경우 부실 대출이 커지는 점 역시 우려되는 부분이다. 특히 은행 수신은 일반 예금자, 즉 국민의 예금으로 운영되는 만큼 보수적으로 운영할 필요가 있다.
영업점에서 중소기업 대출을 담당한 적 있는 관계자는 "중소기업 기술은 시시각각 변화하고 있다. 내비게이션 제조업체가 빠른 시간에 급성장할 수 있었던 것은 독자적인 기술 덕분이나, 몇 년 만에 스마트폰이 활성화되며 판매량이 줄고 회사가 문을 닫는 것이 현실이다"고 말했다.
그는 "서울 시내에서 장사 잘되는 식당을 가보면 '대출 해도 안전하겠다'는 판단이 들지만, 기술금융은 자영업 대출보다 더 리스크가 큰 사업이다"고 우려했다.
□ 보안·소비자 보호 등 과제 = 핀테크 산업 역시 마찬가지이다. 핀테크는 금융과 IT를 융합한 기술을 뜻한다. 카카오톡, 네이버밴드 등 이미 많은 서비스들이 금융시장에 진입해 있다.
대형 금융지주의 관계자는 "IT 업체들이 고객을 확보한 채 금융업에 진출하면서 경쟁이 심화될 것이다. 금융 서비스의 질적 향상을 통해 고객 편의 향상에 기여할 것이다"고 기대했다.
그러나 이 회사의 IT 담당 임원은 "현재 정부가 은행과 증권의 벽을 허물어 복합 점포를 추진하고 있지만, 실제로는 고객 정보의 공유를 철저하게 분리시켜 오히려 규제가 강화되고 있다"고 했다.
이는 지난해 초 일부 카드사들이 고객 정보를 1억건 이상 유출하는 대형 사고가 발생하면서 정치권 일부가 금융지주 간 정보 차단을 추진한 결과이다.
이밖에 은행들은 해외 진출 시 한국과 그 나라의 규정·법령이 충돌한다, 금융회사 보안을 위협하는 데 대한 지속적인 대응 노력이 필요하다는 의견을 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