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약자와 짜고 '누이좋고 매부좋고 식' 보험사기
보험설계사 A씨는 44개의 보험상품에 가입했다. 그는 보험약관을 악용해 입원할 필요가 없는 경미한 질병에도 장기간 입원·퇴원을 반복했다. 입원기간 중 수시로 외출하면서 입원일당은 꼬박꼬박 청구했다. 이 같은 수법으로 32~41회에 걸쳐 편취한 보험금은 무려 3억1400만원에 달했다.
B씨는 보험설계사로부터 고액의 보험금 수령이 가능한 보험상품을 추천 받았다. 그 뒤 허위진단서 발급이 용이하고 장기입원이 가능한 병원에 대해 정보를 받아 15개의 보험상품에 집중 가입했다. 이후 그는 허위 무릎수술과 장기입원으로 5100만원의 보험금을 편취했다.
지난해 상반기 보험사기 적발현황을 살펴보면 생계를 위한 고령자·무직자(일용직) 등의 보험사기가 증가했다. 하지만 이처럼 대다수의 비중을 차지하는 일반 보험사기꾼보다 더 무서운 이들은 따로 있다. 바로 보험설계사들이다.
보험설계사들은 보험에 대한 전문적인 지식을 갖고 있다. 따라서 이들이 저지르는 보험사기는 계획된 범죄여서 죄질이 나쁘다는 평가를 받는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지난해 상반기 보험사기로 적발된 보험설계사는 총 390명이다. 그나마 지난 2013년 상반기 594명에서 204명 줄어든 수치다. 설계사의 보험사기 건수는 2012년 상반기 497명에서 2013년 상반기 594명으로 증가세를 보여왔다.
보험설계사의 사기가 고질화되자 지난해 7월 설계사의 보험사기를 줄이기 위해 보험사기에 연루된 보험업종사자를 보험업계에서 퇴출하도록 보험업법을 개정하기에 이르렀다. 개정된 보험업법은 보험업종사자의 보험사기 행위에 최고 등록취소 등 중징계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하지만 이 같은 보험업법의 시행에도 불구하고 보험설계사가 보험사기에 연루되는 사건은 끊이지 않고 있다.
보험설계사 김모씨는 "설계사 출신이 사기에 가담하는 경우는 알려진 것보다 훨씬 더 많아 주변에도 볼 수 있다"며 "전문 지식을 악용한 설계사는 범행이 치밀해 보험사가 대책없이 당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그는 "장기화된 경기 불황으로 사기의 유혹에 빠지는 사례가 있다"고 지적했다.
김씨는 "악질 사기범이 갈수록 진화하고 늘어나는 것은 '솜방망이 처벌' 때문"이라면서 "금융당국은 수사망을 확대하고, 설계사를 대상으로 한 맞춤형 교육을 철저히 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그렇지만 설계사 스스로의 윤리의식을 정립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생명보험업계의 관계자는 "보험설계사가 보험계약자와 공모하는 보험사기에 연루되는 것은 서로 이해관계가 맞아 떨어지기 때문"이라면서 "걸리지만 않으면 모두가 윈윈하는 것이기 때문에 이를 제도를 통해 막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고 꼬집었다.
그는 "이 같은 보험사기는 보험사가 부담하지 않아야 할 보험금을 잘못 지급하는 피해를 입힌다"면서 "누수된 보험금은 환수하기 어렵고 이를 해결하기 위한 인력과 시간의 소모도 만만치 않다"고 덧붙였다.
또 다른 보험업계 관계자 역시 "경제가 어려워서 먹고 살기 힘들어지는 게 보험사기 증가와 가장 큰 연관이 있다"면서 "보험은 복잡하고 어려운 금융 상품이다 보니 아는 사람이 더 사기를 잘 칠 수밖에 없다"고 덧붙였다.
소비자단체 관계자는 "처벌만으로는 부족하다"며 "보험사나 협회의 홈페이지에 일정기간 보험사기자의 신상을 공개하는 것을 검토해 볼 수도 있다"고 제안했다.
이와 관련, 금감원 관계자는 "다음 달 초 지난해 발생한 보험사기 적발 통계를 분석해 개정 보험업법의 보험사기 방지 효과를 파악한 뒤 대처할 것"이라며 추가적인 대책을 마련할 가능성을 내비쳤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