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경환 부총리 극과 극 발언.."금리보다는 구조개혁"
주요 통화 환율전쟁, 원화로 막기는 역부족이란 인식
가계부채·美 금리인상도 변수
글로벌 환율전쟁이 치열한 가운데 우리나라만 유독 이에 동참하지 않고 있어, 적절한 통화정책 시점을 실기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시장에서는 글로벌 ‘쩐(錢)의 전쟁’에 한국이 보이지 않는다며 아우성이지만 정부에선 오히려 최경환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까지 나서 금리동결 논리를 공고히 하는 모습이다.
금리인하에 대한 확연한 입장변화는 최경환 부총리의 최근 발언에서도 엿볼 수 있다. 최 부총리는 지난 9일 주요20개국(G20) 재무장관회의 참석차 터키를 방문, 외신과의 인터뷰에서 “금리인하보다 구조개혁이 중요한 시점”이라고 말했다. 이 발언으로 금리인하에 대한 기대감이 사그라들면서, 시장의 혼선을 샀다.
최 부총리는 지난해 7월 취임 전 인사청문회 당시부터 “경제회복에 모든 정책 수단을 동원하겠다”며 금리인하의 당위성을 역설해왔다. 발언의 정점은 지난해 9월 G20 재무장관·중앙은행 총재 회의를 위한 호주 출장에서였다. 그는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와 가진 와인회동을 소개하면서 “금리의 금자도 얘기하지 않았다. 하지만 척하면 척”이라며 추가 금리인하를 강하게 압박했었다.
최 부총리의 이 같은 발언에 시장이 요동쳤다. 최 부총리 언급이 알려진 10일 채권시장에서 국고채 3년물 금리는 전일보다 0.079%포인트 상승한 2.056%를 기록, 9거래일 만에 2%대로 반등했다. 원·달러 환율도 추가 금리인하가 없다는 실망감을 반영하며 5.2원 하락한 1089.70원으로 거래를 마쳤다.
한은 역시 지난해 두 차례 금리인하가 정부에 떠밀린 결정이라는 비판론과 함께 기준금리가 사상 최저치인 2.0%에 와 있다는 점을 의식하는 분위기다. 이주열 한은 총재는 지난해 말 기자간담회에서 금리인하보다는 구조개혁이 중요한 시점이라고 강조한 데 이어 지난달에도 “지난해 두 차례 단행한 금리 인하의 효과를 보기 위해서는 시간이 필요하다”면서도 “현 금리수준은 실물경기 흐름에 비춰 볼 때 부족하지 않다”고 말해 현 기준금리를 유지할 것임을 시사했다.
반면 세계 각국은 금리인하와 양적완화로 ‘유동성 파티’에 나서고 있다. 자국 통화 가치를 떨어뜨려 수입 인플레이션을 유발하는 한편 수출경쟁력을 강화하겠다는 의도다. 주변국이 통화완화 정책을 펴면 우리나라는 상대적인 통화 강세로 수출 등에 불이익이 뻔한 상황이다. 하지만 당국자들의 언급에서 보듯 우리나라가 통화완화 정책을 주저하고 있는 것은 달러·유로·엔화·위안화 등 주요통화의 환율전쟁을 원화로 방어하기에는 힘이 부칠 수밖에 없다는 현실의식이 반영된 것이란 시각이다. 박혁수 대신경제연구소 팀장은 “핵심은 환율인데 지금까지 한은이 원화의 한계 등을 감안해 환율에 금리정책으로 대응한 사례는 없다”고 언급했다.
대내적으로는 금리인하가 가계부채만 키웠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려운 것도 이유다. 금통위 의사록에서도 최근 가계부채 증가세가 빨라지면서 가계부채 규모가 소비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임계치 수준에 근접한 것으로 보인다고 지적했다. 또 우리나라와 연관성이 높은 미국이 오는 6월 금리인상 카드를 만지작거린다는 얘기가 나오는 것도 환율전쟁 동참을 주저하게 만드는 이유다. 우리나라는 통상 자본유출 방지를 위해 미국보다 1~2%포인트 높은 금리를 유지해왔다는 점에서 한은은 미국의 금리인상에 보조를 맞추겠다는 의지를 내비쳤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