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텔예약사이트 에바종 회원 1만여명 정보 유출
개인정보 유출 뒤 회원들에 협박 문자 날아와
일부 회원들 환불 요청에 '면책' 요구해 물의
동의서 미제출 회원들에겐 예약 취소 거부
해킹으로 회원정보 등을 유출한 유명 호텔 예약사이트 업체가 피해 회원에게 정보 유출 책임을 묻지 않겠다는 동의서를 요구해 물의를 빚었다. 이 회사는 동의서를 제출하지 않은 고객을 상대로 예약 취소 및 환불을 거부했다.
지난해 12월 가족 여행을 떠날 꿈에 부풀었던 손모(33)씨는 휴대전화로 협박 문자 한 통을 받았다. 익명의 문자 발신자는 자신을 ‘에바종(EVASION)을 해킹한 사람’이라고 주장하며 ‘에바종이 우리와 합의하지 않으면 회원 정보를 중국 전화금융사기(보이스피싱) 업체와 베트남 인신매매 조직 등에 팔아넘기겠다’고 으름장을 놓았다. 에바종은 전 세계 호텔과 리조트 예약을 대행하는 업체인 본보야지(Bon Voyage)의 온라인 사이트로, 현재 회원제로 운영되고 있다.
문자 발신자는 에바종 사이트를 해킹해 회원정보 1만여 건을 빼낸 해커였다. 이 해커는 에바종 측에 5000만원을 내놓지 않으면 회원정보를 외부에 공개하겠다고 협박했다. 에바종이 이를 거부하자 해커는 개인정보를 이용해 회원에게 협박 문자를 보냈다.
이 사건을 수사 중인 서울 남대문경찰서 관계자는 “중국인으로 추정되는 해커가 에바종 측과 협상이 잘 되지 않자 개인정보를 빼낸 고객들에게 문자를 발송한 것”이라며 “아이피(IP) 주소가 중국 쪽이어서 해커 윤곽이 잘 드러나지 않는다”고 말했다.
손씨 외에도 적지 않은 회원이 협박 문자를 받고 납치 등 범죄에 연루될 가능성을 우려해 에바종 측에 호텔 예약 취소와 환불을 요구했다.
논란은 에바종 측이 손씨 등에게 무리한 요구를 하면서 불거졌다. 에바종은 환불을 요구하는 고객에게 ‘금번 개인정보 해킹에 따른 유출 등에 대해 에바종을 면책한다’고 명시된 ‘에바종 호텔 예약 변경 신청 동의서’에 사인해야만 환불해줬다.
손씨는 “어린 아이를 데리고 가는 여행인데 인신매매 집단 등에 정보를 넘기겠다는 문자를 받으니 정말 납치라도 당하면 어쩌나 하는 걱정이 들었다”며 “에바종 측에 환불을 요구했으나 동의서에 사인해야 한다고 해서 환불도 못 받고 여행을 포기했다”고 말했다. 에바종 사이트를 해킹한 해커는 회원 개인정보뿐 아니라 호텔 투숙일정 등 예약 정보도 모두 빼냈다.
또 다른 피해자인 이모(33)씨는 며칠 앞으로 다가온 여행을 ‘울며 겨자 먹기’로 떠나기로 결정했다.
이씨는 “개인정보와 예약 일정이 유출돼 환불을 요구하는 데도 에바종은 환불조차 선심 쓰듯이 동의서를 요구했다”며 “에바종 사이트에서 개인정보와 호텔 예약정보가 유출돼 여행을 취소하려는데 고객이 전적으로 추가 비용을 부담해야 한다는 에바종 측 태도에 어이가 없었다”고 말했다.
현재 손씨 등은 개인정보 유출로 피해를 입은 다른 에바종 회원과 집단소송을 논의 중이다.
김승주 고려대 정보보호대학원 교수는 “법적으로 문제가 없지만 금전적인 손해를 줄이기 위해 고객에게 면책 동의서를 요구하는 행위는 올바르지 않은 태도”라며 “해커가 피해 당사자에게 직접 연락한 사례는 드물다는 점에서 개인정보 유출로 인한 추가 피해가 발생할 가능성이 크다”라고 지적했다.
에바종 관계자는 “여행 특가 상품이라 환불이나 예약 취소를 하기 매우 어려운 상황이지만 고객에게 편의를 제공하려고 동의서를 받아 자비로 환불해준 것”이라며 “수사가 진행 중인 사안이라서 사건이 마무리되는 대로 과실 여부를 논의해 보상 방침 등을 마련하겠다”고 해명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