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금 걷을 수 있는거야?" = 국세청이 제2차 납세의무자
로 '멜보'라는 회사를 지정, 권혁 회장에 대한 세금을 부과했지
만 부과한 세액을 모두 거둘 수 있을지 막막한 상황이다. 멜보의
순자산이 권 회장이 부과받은 세액의 절반도 되지 않기 때문에
국세청의 고심은 깊어지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국세청과 '선박왕' 권혁 시도상선 회장이 수천억원대의 세금을 놓고 치열한 소송전을 벌이고 있는 가운데 뜻하지 않은 '암초'가 도사리며 국세청을 긴장시키고 있는 모습이다.
국세청은 지난달 서울고등법원이 사실상 국세청의 주장을 인정, 소송전에서의 완승을 자신하는 태세였지만 서울행정법원에서 권 회장의 제2차 납세의무자로 지정된 '멜보 인터내셔널 인베스트먼트 리미티드(이하 멜보 Melbo)'의 손을 들어주면서 미궁으로 빠져가는 모양새다.
서울행정법원 행정5부(재판장 김경란 부장판사)는 지난 5일 멜보가 반포세무서장과 서초세무서장 등을 상대로 낸 종합소득세부과처분 취소소송에서 "멜보에 대한 채권의 압류처분을 취소한다"며 원고 일부승소 판결했다.
국세청은 권 회장에게 종합소득세와 지방소득세 등 3000여억원을 부과했었고 권 회장이 이를 단 한 푼도 납부하지 않자 홍콩에 설립된 멜보라는 회사를 제2차 납세의무자로 보고 권 회장의 세금을 멜보에 부과했다.
이에 멜보는 소송을 제기했고 일부 승소하면서 국세청과 권 회장의 소송전은 한 치 앞을 내다보기 힘들게 됐다.
□ 국세청-선박왕, 악연의 시작은? = 국세청과 권 회장의 악연은 2006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국세청은 2006년부터 2010년 기간 동안 권 회장이 국내 거주자임에도 국내에 소득신고를 하지 않았다며 종합소득세 2774억원과 지방소득세(지자체 관할) 277억원을 부과했다.
초대형 세금폭탄에 권 회장은 즉각 반발했고 자신은 국내에 주소가 없으며 주 사업장이 위치한 일본과 홍콩에서 거주했기 때문에 한국 국세청은 과세권이 없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국세청은 권 회장이 회사 명의로 주택을 매입해 가전이나 가구 등 가족들을 위한 물건을 비치해놓았고 일본과 홍콩을 오갈 때 국내에 수일 동안 머무른 점들을 들어 국내 거주자라고 간주했고 법원은 국세청의 손을 들어줬다.
다만 '어드레스 커미션'에 대한 과세는 부당하다며 법원은 988억원에 대한 과세취소를 결정했고 국세청과 권 회장은 항소하겠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
어드레스 커미션은 선주가 조선소와 직접 선박 건조를 계약할 때 받는 일종의 수수료로 업계에서는 선주가 어드레스 커미션을 받는 것은 관행으로 여겨지고 있다.
문제는 권 회장이 세금을 단 한 푼도 내지 않은 채 소송을 진행하고 있다는 것. 이에 국세청은 멜보라는 회사를 권 회장의 소유로 보고 이 회사를 제2차 납세의무자로 지정, 권 회장이 체납한 종합소득세와 지방소득세를 부과했다.
□ 법원, 왜 멜보의 손을 잡았나? = 엄연히 말하면 법원은 완전히 국세청의 패배도 멜보의 승리도 확신하지 않았지만 국세청이 부과한 세액 중 일부만 인정, 원고측인 멜보 입장에서는 '일말의 희망'이 보이게 됐다.
멜보는 2006년 홍콩에 설립된 회사로 바하마 국적의 '오로라'란 회사가 멜보의 지분을 100% 갖고 있다. 오로라의 지분은 권 회장이 100% 갖고 있는데 국세청은 이 점에 주목해 멜보가 사실상 권 회장의 소유로 판단해 제2차 납세의무자로 지정했다.
멜보는 권 회장이 멜보의 지분을 직접 소유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고 반발하며 소송을 제기했지만 법원은 멜보가 사실상 권 회장의 자금으로 설립됐다며 국세청의 주장을 받아들였다.
멜보의 지분 100%를 가지고 있는 오로라는 인적·물적 설비없는 페이퍼 컴퍼니(서류상 회사)로 오로지 멜보의 주식만을 가지고 있으며 권 회장은 오로라의 주식 100%를 소유하고 있는 것을 그 원인으로 지목했다.
하지만 국세청이 압류한 자산을 놓고는 법원과 국세청의 입장이 달랐다.
멜보는 권 회장으로부터 시도상선과 유도해운, 서남중공업 주식을 매수하고 그 대금을 지급했다.
법원은 이를 근거로 멜보가 소유한 시도상선과 유도해운, 서남중공업의 주식은 권 회장 소유가 아닌 멜보의 소유로 봤고 이는 '제3자에 대한 체납처분'이라며 위법하다고 판결을 내렸다.
문제는 법원이 인정한 멜보에 대한 과세처분이 897억9847만원 밖에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법원은 멜보의 자산 1235억1694만원 중 부채 337억1846만원을 제외한 897억9847억원을 순자산으로 인정했다.
국세청이 권 회장에게 부과한 종합소득세와 지방소득세(지자체 관할)는 3051억원이었으며 이 중에서 법원이 부과취소를 한 988억원을 제외하면 남는 세액은 2063억원이다.
멜보의 순자산인 897억원은 국세청이 걷어야 할 세금의 절반도 되지 않는 셈이다.
이에 국세청은 비상이 걸렸다. 국세청은 송무역량 강화를 위해 서울지방국세청에 송무국을 신설하자마자 국민은행과 OCI 법인세 소송에서 패소하는 등 분위기가 침체된 상황에서 법원이 멜보에 일부 승소 판결을 내리자 당황한 분위기가 역력하다.
국세청 관계자는 "보안이 강화되면서 개별 사건에 대해선 말해줄 수 없다"며 "다만 항소 여부는 현재 검토 중에 있다"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