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조9000억원 X 5 vs +48조원'
계산해보나마나 둘 중 더 많은 금액은 48조원이다. -10조9000억원에 5를 곱하지 않아도 그 자체가 마이너스이기 때문에 비교하나마나다.
하지만 저 숫자가 나라살림을 의미하는 것이라면 어떨까. A항목에서 54조5000억원(-10조9000억원X5)의 적자가 나고 B항목에서 48조원의 수입이 있었다면 6조5000억원이 부족하다는 계산이 나온다.
6조5000억원이 박근혜 정부가 집권하는 5년 동안 발생한 세수결손액이라면 위기감이 덜하겠지만 지난해 세수결손액은 전례없는 10조9000억원이었다. 2013년 세수결손액 8조5000억원보다 2조4000억원 늘어난 규모다.
문제는 올해도 벌써부터 지난해만큼의 세수결손이 일어날 수도 있다는 우려섞인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는 것이다. 이대로가다가는 박근혜 정부 집권 5년 내내 매년 10조원 안팎의 세수결손이 발생할지도 모른다는 말까지 나오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 2012년 대선 당시 집권 5년 동안 세입확충으로 50조7000억원, 세출절감으로 84조1000억원으로 공약 이행에 필요한 예산 134조8000억원을 확보하겠다고 밝혔었다.
세입확충 계획(국세) 48조원 중 비과세·감면 정비로 18조원을 지하경제 양성화로 27조원을 마련하겠다고 공언했지만 지하경제 양성화란 말은 슬그머니 꼬리를 내린 상황이고 정부는 경제활성화로 정책의 무게 중심을 옮긴 모양새다.
이에 전문가들은 실체없는 지하경제를 쫓을 것이 아니라 눈 앞에 보이는 불필요한 비과세·감면 제도를 정비, 막대한 규모의 조세지출을 최대한 줄여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 비과세·감면 정비 원칙은 어디에? = "일몰이 도래한 비과세·감면 제도는 폐지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겠습니다."
2013년 3월 현오석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후보자가 인사청문회 당시 한 말이었다. 2년이 흐른 지금 결과는 어떨까.
정부는 비과세·감면 정비로 18조원을 확보하겠다고 약속했다.
박근혜 정부 출범 첫 해인 2013년에는 44개의 비과세·감면 제도가 일몰 예정이었지만 폐지된 것은 19개, 축소된 것은 36개였으며 10개의 제도가 신설됐다. 지난해에는 7개 제도를 폐지하고 8개를 축소, 6개를 신설했다.
2013년 비과세·감면 제도 정비로 3조원, 2014년에는 1231억원의 세수효과를 봤다. 이 추세대로만 간다면 5년 동안 비과세·감면 정비로 18조원을 확보할 가능성도 없지 않지만 문제는 그리 간단치 않다.
올해 일몰이 예정된 비과세·감면 제도는 88개. 박근혜 정부 집권 기간 동안 가장 많은 비과세·감면 제도가 일몰이 예정돼 있지만 88개 제도 모두 만만치 않다.
각 집단들의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얽혀있는데다가 농어민과 서민에게 주어지는 비과세·감면 제도는 일몰이 예정됐다고 해서 쉽게 폐지하다가는 또 다른 저항에 부딪힐 수 있다.
□ 올해 일몰 예정된 비과세·감면 제도는? = 정부는 올해부터 일몰이 도래한 연 300억원 이상의 조세지출 제도에 대해선 전문연구기관에 심층평가를 의뢰하는 것을 원칙으로 삼았다.
정부의 원칙대로 한다면 올해 일몰이 도래한 88개 비과세·감면 제도 중 조세지출이 연 300억원이 넘는 제도는 총 16개이다.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소속 새정치민주연합 오제세 의원이 기재부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조세감면 규모가 가장 큰 제도는 농임어업용 석유류 간접세 면제로 지난해 연 1조3754억원이 지출됐으며 2~3위로는 조합 등 출자금에 대한 과세특례와 조합 등 예탁금에 대한 저율과세 제도로 9203억원이 감면됐다.
감면액이 1~3위를 차지하는 3개 제도의 조세지출 규모는 2조2957억원으로 88개 제도의 전체 조세감면액 3조7000억원의 62%였다. 지출규모가 연 300억원이 넘는 16개 제도의 조세감면액은 3조4755억원으로 전체 지출 규모의 93%를 차지했다.
이 제도만 잘 정비된다면 적지 않은 규모의 세수감소를 막을 수 있지만 문제는 조세지출 규모가 큰 1~3위 모두가 농어민과 조합 등 줬던 혜택을 쉽게 빼앗기 힘든 계층이라는 점이다.
농임어업용 석유류 간접세 면제 제도는 농어민의 영농·영어비용의 경감을 목적으로 지난 1972년 도입된 것으로 이미 국회에서는 새누리당 김종태 의원이 해당 제도를 2025년 12월31일까지 연장해야 한다는 법안을 발의했다.
일몰이 예정된 비과세·감면 제도를 정비하기도 전에 벌써부터 세제혜택 폐지·축소에 대해 반발하고 있는 것이다.
기재부가 연 300억원이 넘는 조세지출 제도에 대해선 심층평가를 해야 하는 규정에 따라 선정한 심층평가 대상도 폐지가 그리 녹록치 않을 것으로 보인다.
기재부는 지난해 12월 도시철도 건설용역에 대한 부가가치세 영세율을 비롯해 10개 제도를 심층평가 대상으로 선정했으며 개인종합자산관리계좌 신설 등 2개 제도를 예비타당성 조사 대상으로 선정했다.
23일에는 전자세금계산서 발급·전송에 대한 세액공제 특례제도를 비롯한 4개의 비과세·감면 제도를 심층평가 대상으로 추가로 선정했으며 보훈관련 취업지원대상자에 대한 세제지원을 예비타당성 조사 대상으로 추가했다.
전자세금계산서 세액공제 제도는 이미 지난 2013년 일몰이 다가와 정부가 이를 폐지하려했지만 세무대리업계가 강력하게 반대했고 결국 정부가 한발 물러선 전례가 있다.
최경환 경제부총리 겸 기재부 장관도 지난 4일 국회 기재위 업무보고에서 비과세·감면 제도를 정비하라는 의원들의 요구에 이런 어려움을 헤아려 달라고 이해를 구하기도 했다.
정부가 아무리 의지를 가지고 일몰이 예정된 비과세·감면 제도를 정비하려고 해도 이해관계자와 국회의 '등살'에 밀려 폐지하기까지 쉽지 않은 것이다.
□ 매년 30조원 지출…방법 없나 = 매년 비과세·감면으로 정부가 지출하는 조세감면액은 33조원에 이른다. 정부가 1년 동안 지출하는 재정의 8~10%를 차지하는 규모로 생각보다 큰 규모이다.
이를 체계적으로 정비해야 한다는 목소리는 기존부터 꾸준히 제기되어 왔지만 각 이해단체의 첨예한 대립과 국민들의 눈치를 살필 수밖에 없는 정부와 국회 입장에서는 과감하게 손을 대기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일몰이 도래한 비과세·감면 제도를 제외하고서라도 국회에서는 매년 수백개의 비과세·감면 제도를 연장하자거나 신설하자는 법안이 쏟아진다. 이에 전문가들은 비과세·감면 제도 정비가 현실적으로 어렵기 때문에 원칙을 세워 그 원칙대로 정비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박훈 서울시립대 세무학과 교수는 "비과세·감면 축소가 기존에 있던 세목이나 세율인상보다 더 어렵다고 얘기를 한다. 이해관계자가 명확하기 때문"이라며 "우선 일몰이 도래하는 비과세·감면 제도를 통으로 묶어서 경제효과가 없다면 제도를 폐지한다는 원칙을 세워야 한다"고 강조했다.
박 교수는 "효과를 산출할 수 없는 제도는 이혜관계자의 의견을 받고 그 자료를 토대로 국회라든가 3자 협의체를 통해 순위를 매겨 자르는 절차를 마련해야 한다"며 "다만 순위를 매겨서 정비를 한다면 대기업의 축소되는 것이 아니라 서민이나 농어촌 부분에서 줄어들 수 있는 부분도 염두에 둬야 한다"고 말했다.
정부는 올해 일몰이 도래한 제도 중 지출규모가 연 300억원이 넘는 제도에 대해선 원칙적으로 재검토를 하겠다고 했지만 이해관계자들의 반발로 제도 정비가 쉽지 않을 것임을 예고했다.
기재부 관계자는 "올해부터 처음 시행하는 심층평가를 통해서 제도를 폐지할 것인지 연장할 것인지 결정할 것"이라며 "다만 해당 제도가 정책목표를 달성했다고 하더라도 규모가 큰 조세감면 제도의 경우 이해관계자가 많아 이를 무시하기 어렵다"고 밝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