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RI지수, 코스피지수와 차별화가 열쇠
연기금 긴급수혈···"단기효과 그칠라" 우려
국민연금을 비롯한 기관투자가들이 올들어 사회책임투자(SRI)펀드에 대한 투자를 늘리자 SRI펀드(수익형) 수익률이 3~4%까지 뛰면서 상승추세가 이어질지 주목받고 있다.
8년 전 사회공헌 바람을 타고 상륙했던 SRI펀드는 SRI지수와 코스피지수의 차별화가 이뤄지지 않는데다 사회공헌에 대한 관심도가 낮아 외면받고 있다.
SRI펀드는 한창 붐을 일으켰던 2007~2008년 운용규모가 2조원을 넘어서기도 했지만 지난 2월말에는 5000억원대로 줄어들었다. 지난해에는 대형주의 약세로 부진한 성과를 나타내면서 자금이 계속 유출되는 추세를 보였다.
우리나라의 SRI펀드는 알리안츠자산운용의 운용규모가 가장 크다. 알리안츠·KDB자산운용의 펀드 이외에는 100억원을 넘지 못하고 있어 저변이 확대되지 않고 있다. 그나마 공모펀드보다 연기금을 중심으로 한 사모펀드 규모가 더 큰 실정이어서 일반투자자의 수요가 형성되지 않고있다.
수익률도 바닥을 헤매고있다. 3년 수익률이 존재하는 '주식형' 6개 SRI펀드의 수익률은 -12~-2%대에 머물러 있다. 17일 기준, 신한BNPPTops아름다운SRI펀드가 -12.97%로 가장 저조했고, 알리안츠기업가치향상장기펀드가 -12.04%, 동양Great Company(SRI)펀드가 -8.75%로 뒤를 이었다. '채권혼합형'인 KDB PIONEER펀드만 3년 기준 9.33%의 양호한 실적을 냈다.
SRI펀드가 외면받는 이유가 무엇일까. 그 동안 SRI펀드 투자의 기초가 되는 SRI지수가 코스피지수와 다를 게 없어 유명무실하다는 지적이 있었다. 2009년 9월에 생성된 우리나라의 SRI지수는 시가총액 상위의 70개 대형주로 구성돼 있다.
SRI은 펀드의 포트폴리오를 구성할 때 기업의 환경, 사회, 지배구조라는 3요소를 고려한다. 환경보호와 사회공헌 등은 기업이 생존의 단계를 넘어선 이후 고민할 수 있는 문제라는 인식이 지배적이기 때문에 SRI펀드에서 투자하는 기업은 우량·대형 기업인 경우가 많다.
이런 구조적 문제점 때문에 우리나라 SRI지수는 코스피지수와 차별화하지 못하고, 오히려 대형주 주가가 떨어지면 코스피지수를 하회하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선진국과 달리 우리나라에서는 사회공헌과 기업 이익은 별개라는 인식이 자리 잡고 있는 것도 문제다. 미국의 대표적 연기금인 캘리포니아공무원연금은 1987년부터 실적이 저조하거나 지배구조에 문제가 있다고 판단되는 기업의 리스트를 매년 5~10개씩 발표해 왔고, 부실기업의 주주권 행사에 나서 경영권 교체 등을 요구할 정도로 기업의 사회적책임을 중시하고 있다.
하지만 국내 대기업의 경우 사회공헌은 기업이미지 개선 활동이라는 인식이 강하다.
남영숙 이화여대 국제대학원 글로벌사회적책임센터장이 지난 2013년 55개 대기업을 대상으로 '한국 기업의 사회적책임 현황'을 조사한 보고서에 따르면 사회공헌 관련 부서에 속한 임직원 수는 평균 13.1명으로 나타났다. 이들 기업 중 51.7%는 사회공헌 부서가 만들어진 지 3년 미만이라고 답했다.
조사대상 기업 가운데 사회공헌 활동에 연간 1억원 미만의 예산을 반영하고 있는 곳이 전체의 41.8%에 이를 정도로 기업들이 사회공헌활동에 소극적인 것으로 드러났다. 연간 50억원 이상을 지출하는 기업은 23.4%에 그쳤다.
증권업계 전문가들은 이같은 구조적인 환경때문에 SRI펀드가 유명무실해지고 있다고 분석했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최근 국민연금 등 기관투자자들이 SRI펀드에 긴급수혈을 결정했다. 이로 인해 빛바랜 SRI펀드가 '반짝' 활기를 되찾는 모습이다.
국민연금은 펀드를 활성화시키기 위한 방편으로 코스피지수와 차별화된 신규 벤치마크 지수 개발을 추진하고 있다. 또 주식형 SRI펀드에 5년 전 대비 5배 가까이 늘어난 6조원을 투자하기로 했다.
연기금의 적극적인 움직임에 올들어 국내 SRI 펀드(주식형)의 수익률은 상승 추세를 보이고 있다. 이 중 동양Great Company(SRI)펀드, 마이트리플SRI펀드가 올해 들어 4%대, 키움프런티어지속가능기업SRI펀드, 신한BNPPTops아름다운SRI펀드, 알리안츠기업가치향상장기펀드가 3%대의 수익률을 기록하고 있다.
하지만 운용업계에서는 연기금의 자금 투입으로 인한 단기 효과일 뿐이라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SRI지수가 얼마나 코스피지수와 차별화될 수 있을지, 연기금이 지속적으로 투자금을 늘릴 수 있을지 불투명하기 때문이다.
운용업계 관계자는 "국민연금 등이 사회공헌펀드를 부활시키고자 올해 들어 거대 자금을 투입하고 있지만, 장기적인 효과는 기대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