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밤, 지인들과 가벼운 술자리를 가졌다.
자연스럽게 이야기가 이완구 국무총리의 '목숨발언'으로 흘러갔다. 각자의 생각을 두서없이 늘어놓는 와중에 누군가가 농담 반 섞어 한마디를 툭 던졌다.
"3000만원이 목숨까지 걸 정도로 큰 돈인지 모르겠네..."
살짝 오른 취기를 안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 이 말이 머릿속에 자꾸 멤돌았다.
일국의 국무총리가 검은 돈을 받았다는 의혹에 휩싸인 것도 한심하기 짝이 없는데 국민들 앞에서 목숨을 운운하는 행태를 보이고 있다니, 참담하다는 결론 밖에 나오지 않았다.
이 총리는 지난 14일 국회 대정부질문에 참석, 어마어마한 리스트를 남기고 유명을 달리 한 故성완종 전 경남기업 회장으로부터 3000만원의 돈을 받았다는 한 국회의원의 질의에 "만약 돈 받은 증거가 나오면 목숨을 내놓겠다"고 말했다.
자신의 결백을 밝히기 위해 이런 강성발언을 했다고 이해해 주기에는 그가 서 있는 위치가 걸린다.
그는 일인지하 만인지상(一人之下 萬人之上) , 국무총리다. 한 나라의 국무총리가 국민들이 다 보고있는 앞에서 목숨을 걸겠다는 말을 하는 것은 대단히 부적절하다.
'내가 목숨까지 걸었으니 더 이상 날 흔들지 말라', 는 섬뜩한 공갈협박처럼 들린다.
'이완구'라는 사람의 수준이 이정도 밖에 안된다는 것인가.
사실 이 총리는 국무총리 후보자로 지명된 이후부터 온갖 설화로 말썽을 일으켰다. 특히 기자들과의 식사자리에서 대단한 '갑(甲)'이라도 되는 양 부적절한 발언을 한 사실이 들통나면서 곤욕을 치르기도 했다.
만약 지금 떠도는 이야기들을 확증해 줄 증거가 나온다면 이 총리는 어떻게 할 것인가. 국민들 앞에서 경솔하게 뱉어낸 자신의 말을 어떤 식으로 주워담을 것인가.
잘못이 있으면 사퇴하고 처벌을 받겠다고만 해도 충분하다.
얼마나 대단한 자존심이기에 초중고생들도 다 보고 있는 앞에서 목숨을 걸겠다는 둥 생명을 경시하는 듯한 발언을 한다는 말인가.
같은 맥락에서 망자를 탓하는 일이 적절치 못하지만, 故성완종 회장의 선택도 문제라고 할 수밖에 없다. 잘못된 것이 있다면 살아서 진실을 밝히기 위해 맞서 싸웠어야 했다.
개인의 심적 고통이 상당했겠지만 기업의 총수로 국회의원으로 사회지도층으로 살아왔던 인물이라면 더더욱 진실을 밝히기 위해 노력했어야 했다.
대한민국은 세계에서 알아줄 정도로 자살률이 높은 나라다. 사회지도층들이 나서서 한국 사회에 만연한 생명경시 풍조를 없애는데 힘을 보태도 모자를 판국에 스스로 목숨을 끊고, '목숨을 걸겠다'는 등 옳지 않은 모습을 보여서는 결코 안 될 일이다.
이 총리는 이미 일국의 국무총리로서의 수명을 다한 듯 보인다.
여기저기서 몰려 들어오는 사퇴압박을 국무총리 자리에 앉아 감당해 내기에는 본인 스스로는 물론 대한민국 국민들에 대한 예의가 아니기 때문이다.
본질로 돌아가보자.
이 총리가 취임하자 마자 한 일은 '부패와의 전쟁' 선포였다.
말이 좋아 부패와의 전쟁이지, 자원외교와 관련한 부분부터 건드리면서 결국 역대 정권들이 우려먹은 전 정권 사정을 통한 현 정권의 지지도를 올리는 뻔한 정치행보라는 비판이 제기됐다.
전 정권의 치부를 겨냥한 살아있는 권력의 칼날은 스스로 목숨을 끊은 성완종 회장의 호주머니에서 나온 메모지 한 장을 기화로 현 정권을 겨냥하는 어이없는 상황이 됐다. 부패와의 전쟁을 선포한 장본인 마저 부패에 연루된 의혹을 받고 있다.
어떤 측면에서 박근혜 대통령에게 '성완종 리스트'는 두번 다시 오지 않을 '기회'다.
리스트에 거론된 인물들은 자신의 측근, 이 정권에서 한 권력 휘두른다는 인물들이다. 제대로 수사해서 제대로 처벌한다면 정권의 도덕성에 대한 지탄은 받겠지만 부패와의 전쟁에서는 승리했다는 평가를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