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달 한번씩 모여 포트폴리오 논의…8개 종목 압축 투자
주식 열공 끝에 출범 1년2개월만에 수익률 23% 넘어
"저출산 고령화 투자클럽 활성화돼야"
“A종목은 300%나 먹었으니 이제 차익실현 합시다” “그래요. 그 정도면 많이 먹었지. 더 욕심내면 안 돼” “H종목은 영 안 오르네. 유일하게 마이너스인데 손절매할까요” “업황이 괜찮아서 오래 기다렸는데 아마 한참을 더 기다려야 할 것 같으니 다른 종목으로 교체합시다” “M종목은 오르면서 비중이 좀 커졌는데 이제 빼고 다른 종목을 좀 더 사죠”
20일 여의도 증권가 한 식당에 머리 희끗희끗한 70~80대 6명이 모였다. 오가는 대화에서는 종목에 대한 깊은 분석과 고민이 드러났다. 자산운용사의 치열한 포트폴리오 회의를 방불케 한 이날 모임은 바로 7080 투자클럽의 정기회동이었다.
멤버는 비슷한 시기에 투자자문 대표, 증권사 임원, 시중은행 지점장, 금감원 국장 등으로 금융투자업계를 쥐락펴락했던 베테랑들이다. 이 중 50년 지기도 있고 안면을 튼 지 2~3년 되는 이도 있지만 은퇴 후 마음이 맞는 사람들이 모여 투자클럽을 결성했다.
처음엔 한 달에 한 차례씩 만나는 친목 모임이었으나 시간이 지나면서 함께 여행도 다니고 고민도 들어주는 ‘절친’이 됐다. 그러던 중 박동욱 전 대우투자자문 대표가 투자클럽을 제의했다. 대부분 금융업계에서 일한 경험이 있는 만큼 함께 투자론을 공부하고 실천해보자는 취지에서였다. 이미 선진국에서는 투자클럽이 상당히 보편화 돼 있다며 멤버들을 설득했다.
그렇게 해서 작년 2월에 출범한 7080 투자클럽. 매월 둘째 주나 셋째 주 월요일에 만나 25만원씩 갹출해 공동을 투자한다. 나름대로 투자클럽 원칙도 정했다. 매달 회의를 통해 종목을 선정할 것, 투자종목은 8개 이내로 제한할 것, 6명의 회원이 만장일치로 찬성한 종목에 투자할 것.
출발이 순탄하지는 않았다. 손실을 보고 손절매한 종목도 나왔다. 하지만 시간이 갈수록 회원들 간의 난상토론을 거쳐 엄선한 투자전략은 빛을 발하기 시작한 것이다. 작년 말 모임에서 한 회원이 유안타증권을 추천했다. 중국 후강퉁 시행으로 수혜를 입을 것이란 전망에서다. 이미 너무 올랐다는 의견과 더 갈 것이라는 의견이 팽팽히 맞섰으나 그동안 적자에서 이제 턴어라운드할 조짐을 보이고 있다는 점에 주목하기로 하고 담았다. 그 결과 80% 수익을 얻었다.
삼익악기도 열띤 토론 끝에 편입한 종목이다. 중국에서 피아노 수요가 늘어나니 담자는 의견과 시가총액 대비 영업이익이 만족스러운 수준이 아니라는 분석이 맞섰다. “아모레퍼시픽을 봐라. 중국인이 화장품만 사겠나. 소득이 늘어나면 피아노도 사겠지”라는 한 회원의 의견에 결국 매수하기로 의견일치를 봤다. 평균 3500원이 안되는 가격에 샀는데 최근 5300원대로 올랐다. 이번 모임에서 삼익악기를 추가로 담기로 했다.
엄선한 종목 8개 이내로 포트폴리오를 압축한 것도 높은 수익률의 비결이다. 박 회장은 “사실 컴퓨터 앞에 앉아서 자기 개인계좌를 운용하다 보면 TV에서 추천한 종목, 친구들한테 들은 종목, 증권회사 직원들이 추천한 종목, 나름대로 혼자서 개발한 종목들을 계획 없이 사게 된다”며 “그러다 보면 금방 10종목을 넘어 20종목으로 늘어나기 십상인데 이 중에서 대박 종목이 나온다 해도 전체 포트폴리오에는 그다지 영향을 주지 못한다”고 설명했다.
4월 기준 원금은 2100만원인데, 주식보유 평가액은 2600만원을 넘어섰다. 1년2개월 만에 수익률 23.8%를 달성한 것이다. 매달 150만원씩 적립했으니 적립기간을 가중한 수익률은 이보다 훨씬 높다. 웬만한 자산운용사의 적립식 펀드에 부은 것보다 나은 수익률이다.
투자클럽 회장을 맡은 박동욱 전 대우투자자문 대표는 “이름난 세계적인 포트폴리오 매니저도 실상은 최후의 5분 사이에 충동적인 매매결정을 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며 “그런 면에서 투자클럽은 회의를 통해 결론이 나야 집행하기 때문에 그런 일이 일어날 수 없도록 제도적 장치를 해둔 셈”이라고 말했다.
멤버들의 자부심은 대단하다. 비단 수익률이 좋아서만은 아니다. 박 회장은 “주식을 산다는 것은 그 회사의 주주가 된다는 의미”라며 “7080 투자클럽은 조그만 지주회사인 셈”이라고 설명했다.
박 회장은 이런 투자클럽이 저출산 고령화 시대에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1898년에 미국 텍사스에 첫 투자클럽이 설립됐으니 선진국에서는 이미 투자클럽의 역사가 100년도 넘는다. 미국 전역에서 활동하고 있는 투자클럽이 2만8000여개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일본에서도 1990년대부터 투자클럽이 유행하기 시작해 현재 300~400개의 투자클럽이 활동하고 있다. 미국투자가협회(NAIC) 등 투자클럽을 지도하고 있는 비영리법인(NPO)들도 많다.
투자클럽에선 전문가를 초청해 강의를 듣고 금융전문지나 투자관련 교재를 함께 스터디하기도 한다. 노력할수록 투자에 대한 시야는 넓어진다. 노력과 결과가 반드시 일치하지 않는다. 여의도에서 잔뼈가 굵은 회원이 추천한 종목은 반 토막 나서 결국 손절매한 반면, 은행에서 퇴직한 후 주식투자교실을 통해 실력을 쌓은 초보 회원이 추천한 종목은 수익률 2위와 3위를 기록했다.
현재 국내에서는 투자클럽 명의로 계좌를 개설할 수 없다. 멤버 중 한 명의 명의로만 가능한 상황. 투자원금이 불어날수록 계좌 주인도 부담스럽고, 멤버들도 불안할 수 있는 상황이다. 때문에 투자클럽 명의의 계좌개설을 허용해야 투자클럽이 활성화될 수 있다는 게 박 회장 설명이다. 7080 투자클럽은 결국 이달 회의에서 평가액이 2600만원을 넘어가면서 6명의 회원이 똑같이 실물을 배분하기로 결정했다.
박 회장은 “1%대의 초저금리가 정착되면서 이제 투자를 공부하지 않고는 자산형성을 할 수 없는 시대가 됐다”며 “개인들도 투자클럽에 관심을 갖고 정책당국, 금융·증권업계 또한 투자클럽의 활성화에 지혜를 모아야 할 시기”라고 강조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