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이 27일 9박 12일 일정의 중남미 4개국 순방을 마치고 서울공항에 도착해 전용기에서 내리고 있다. 청와대는 이례적으로 박 대통령이 촉박한 일정 탓에 위경련과 인두염을 앓고 있다고 병명을 밝혔다. (사진 = 청와대)
"아파도 말 못하는 게 대통령"…재보선 영향 염두
與 일각, 이 총리 거취 놓고 지도부에 '심기불편' 지적도
박근혜 대통령이 27일 중남미 4개국 순방을 마치고 귀국했지만 '성완종 리스트' 파문에 대한 입장 발표는 당분간 미뤄질 전망이다. 취임 이후 최장기 9박 12일 순방일정을 소화하면서 심한 복통과 미열 등으로 박 대통령의 '건강상태'에 빨간 불이 켜졌기 때문.
하지만 대통령 측근들이 불법정치자금과 불법대선자금 수수의혹이 불거지고 있는 위중한 상황에서 청와대가 이례적으로 대통령의 병명을 구체적으로 언급해 의구심을 갖게 만들고있다. 정치권에서는 4·29 재·보궐선거를 이틀 앞둔 시점에서 여론을 살피면서 시간을 벌려는 의도가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 靑, '1급 비밀' 통수권자 건강상태 이례적 공개 = 민경욱 청와대 대변인은 27일 오전 브리핑을 통해 "지구 반대편 중남미 4개국에서 펼쳐진 순방 기간 박 대통령은 지속적으로 심한 복통과 미열이 감지되는 등 몸이 편찮은 상태에서도 순방 성과를 위해 애쓰셨다"며 "오늘 새벽 9박12일간 방문을 마치고 귀국한 박 대통령은 오전 서울 모처에서 몸 컨디션과 관련한 검진을 받았다"고 밝혔다.
민 대변인은 "검진 결과 과로에 의한 만성 피로 때문에 생긴 위경련으로 인한 복통이 주 증상이었다"며 "인두염에 의한 지속적인 미열도 있어 전체적인 건강 상태가 많이 좋지 않았던 것으로 나타나 의료진은 하루나 이틀 정도 절대 안정이 필요하다고 권장했다"고 말했다.
청와대는 전날(26일)에도 박 대통령이 몸살 기운이 있다고 밝혔다.
국군통수권자인 대통령의 건강상태는 말 그대로 '국가 안보'사항이기 때문에 대통령의 '병명'을 명확히 밝히는 일은 매우 드문 일이다. 국가 기밀일수 있는 민감한 사항인 대통령의 건강상태는 공식 일정을 취소해야하는 경우에만 언급을 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 野 "아프다 말하는 대통령 처음 봐…속보이는 꼼수" = 야권은 공식적으로 대통령의 와병에 대해 비판을 자제하고 있지만 속내는 '대통령의 선거용 꼼수'로 해석하고 있다.
청와대 경험이 있는 한 정치권 관계자는 "보통 대통령의 건강상태는 일일이 언급을 안 하고 알려져선 안 된다. 때문에 알아도 수행비서나 비서실장 등 최측근 몇 명만 알고 있고 급히 일정을 취소할 경우엔 몸살 정도로 해서 가볍게 알리는 식"이라며 "이틀 연속 알리는 것은 의도가 있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한 야권 관계자 역시 "국군통수권자인 대통령의 건강상태는 국내외를 막론하고 정치적으로 '1급 비밀'"이라며 "그런데도 병명을 구체적으로 말하고 속보까지 띄우는 것은 성완종 리스트 파문에 대한 언급을 하지 않겠다는 것"이라고 꼬집었다.
이어 "아파도 아프지 않다고 하는 게 대통령인데, 재보선이 내일 모레인 상황에서 이러는 거는 선거 결과를 보고 입장 수위를 조절하겠다는 것"이라며 "선거 전에 사과를 하면 여론에 영향을 주게 되니 선거 후에 입장을 발표하겠다는 건데 너무나도 속보이는 꼼수"라고 비판했다.
또 다른 야권 인사는 "대통령의 병명을 언급한 건 처음 본다"며 "여야 모두 사과를 요구하고 있고 이완구 국무총리 사퇴 문제도 있으니 입장을 안 밝힐 수 없는 상황이지만 코앞에 재보선도 걸리고, 진심으로 리스트 파문과 자신은 상관없다고 생각하니 사과할 마음이 안 드는 게 아닌가"라고 지적했다.
□ 여 지도부 '대통령 사과' 기대…일각 "대통령, 지도부에 섭섭함 드러낸 것" = 새누리당 내에서도 박 대통령의 와병이 '선거용'이라는 데는 완전히 부인하지 않는다.
당 관계자는 "성완종 리스트 파문으로 여론이 악화된 상황이고 내일 모레가 재보선이니 대통령의 입장 표명은 영향을 줄 수 있다"며 "여러 고민 끝에 그런 언급이 나온 게 아니겠나"라고 말했다.
하지만 당 지도부는 선거전 대통령의 사과 등 입장표명이 있어야 한다는 입장이다.
야권이 '성완종 리스트'를 고리로 '정권심판'을 내걸고 있는 상황에서 대통령의 발빠른 입장 표명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새누리당 유승민 원내대표는 이날 오전 최고위원회의에서 "국민은 이 문제에 대한 대통령의 정직한 목소리를 듣길 원한다"며 "대통령이 국민이 수긍할 수 있는 진솔한 말씀을 직접 해줄 것을 기대한다"고 사과를 촉구했다. 김무성 대표 역시 전날(26일) "검찰 수사의 진행과정 중 어떤 형태로든 대통령의 사과가 있을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때문에 일각에서는 대통령의 '심기 불편'이라는 시각도 존재한다. 박 대통령이 순방을 떠나기 전 김무성 대표와 가진 단독회담에서 이완구 국무총리 거취문제를 두고 "순방 후 결정하겠다"고 밝혔지만 이 총리가 순방 와중에 자진사퇴하게 되면서 당 지도부에 섭섭함이 생긴 게 아니냐는 지적이다.
새누리당 관계자는 "박 대통령의 스타일을 보면, 결정을 그리 빨리 하는 편이 아니다. 여론을 충분히 보고 후속 대안까지 생각한 후에 결정을 하는 편"이라며 "근데 이 총리 거취 문제를 순방 다녀와서 한다고 했는데 여론 악화로 여당 지도부에 의해 이 총리가 사퇴를 한 거니까 그 부분에 대해 대통령이 지도부에 섭섭하고 불쾌함을 느꼈을 수도 있다"고 분석했다.
그는 "물론, 재보선 영향을 주니까 그 부분도 고려가 됐겠지만 현재 몸과 마음도 많이 복잡한 상태가 아닌가 싶다"며 "후임자 문제도 고민이고 대통령 비서실장들이 다 의혹을 받고 있으니 대통령 본인은 몰랐어도 신경이 안 쓰일 수는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