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길진 칼럼] 대리만족도 우리 마음의 손님이다
우리나라처럼 드라마 왕국인 나라가 있을까. 제작 편수도 많지만, 대중문화를 좌지우지하는 파급력이 보통이 아니다. 동네 아주머니들이 찜질방에 가기 위해 드라마 공부를 한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일상의 화제에서 드라마가 빠지지 않는다.
과연 드라마의 무엇이 그토록 사람들을 끌어들이는 걸까. 쇼 비즈니스는 대중들에게 판타지를 주는 것이 존재 이유 중 하나. 그러한 대리만족을 통해 현실의 지루함과 고단함을 잠시 잊고 현대판 일장춘몽을 꾸는 것이다. 평소라면 상상할 수 없는 행태의 복수극이나, 자극적인 막장 드라마가 시청률의 효자 노릇을 하는 것도 같은 맥락으로 보인다.
이렇듯 인간에게는 평소에는 쉽게 드러나지 않는 대리만족의 욕망이 잠재해 있다. 세상사가 그렇듯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니다. 오히려 보이지 않는 세계에 그 실상이 더욱 잘 나타날 때도 많다.
한 유명작가 영가를 만났을 때의 일이다. 생전의 그 작가는 스케일이 크고 웅장한 작품을 쓰기로 정평이 나 있었다. 작품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하나 같이 호탕한 성격에 돈도 물 쓰듯 잘 쓰는 호걸 캐릭터였다. 그러나 아들의 고백은 뜻밖이었다. 생전에 아버지께서 너무 민망할 정도로 금전적으로 야박해서 식구들 마음고생이 심했다고 했다.
대중들이 작품을 통해 막연히 추측해왔던 그의 이미지와는 전혀 딴판이었다. 게다가 영가는 나타나자마자 돈 좀 아껴 쓰라며 아들을 야단쳤다. 살아생전에 어떠했는지 짐작이 가고도 남았다. 그의 작품은 그런 자신에 대한 대리만족의 분출구였던 셈이다.
대리만족이 긍정적으로 작용하면 꿈과 희망의 기폭제가 되어 현재의 자신을 뛰어넘도록 하는 좋은 자극이 될 수 있다. 문제가 되는 가장 흔한 대리만족은 자식을 향한 부모의 욕심이다.
우리 모두는 이 세상에 잠시 잠깐 왔다가는 손님이다. 좀 특별한 손님이긴 하지만 자식도 손님인 것이다. 태중에 있을 때부터 내 인생을 대신 살아주길 바라면서 자식을 기다린 부모가 세상에 어디 있겠는가. 건강하게만 태어나게 해달라고 바랐을 것이다.
자식에 대한 바람이나 기대는 딱 그만큼으로 족하다. 기대가 크면 그만큼 실망도 크다. 그 실망에서 파생되는 노년의 부양 문제도 끝까지 가족관계를 괴롭히는 주범이 되는 것이다. 부모의 인생을 대신 살아온 자식이, 자식의 인생을 대신 살아온 부모를 진정으로 위하고 감사할 수 있겠는가.
세상에 영원한 것은 없다. 모두 잠시 머무르다 떠나는 나그네인 것이다. 대리만족도 우리 마음의 손님이다. 잠깐의 허상이 영원한 실상이 될 수는 없는 노릇이다. 남의 떡이 커 보이는 것은, 그것을 결코 진정으로 먹을 수 없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