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일감 몰아주거나 떼어줘도 증여세 매기실거죠?" = 정부가 애매모호했던 증여세 과세기준을 정비하는 한편, 그동안 일감을 몰아주거나 떼어주는 방식으로 증여행위를 해왔던 기업들에 대해 과세를 강화하겠다는 방침을 내걸었다. 앞서 감사원은 일감몰아주기를 통해 편법적으로 증여행위를 해온 기업들에 대해 과세권이 발동되어야 한다고 지적한 바 있다.
상속증여세 완전포괄주의 개념이 도입(2004년)된 이후 일감몰아주기를 통한 편법 증여행위를 두고 어디까지 세금을 부과할 수 있는지에 대한 논란이 끊이지 않았다.
그동안 기업집단 대주주의 특수관계자가 비상장법인을 설립하거나 인수한 후 계열법인들이 해당 특수관계법인에 수익성 높은 일감을 몰아주거나 떼어주는 방식의 내부거래를 통해 편법적으로 부(富)를 이전해 왔다.
그러나 증여세 완전포괄주의가 적용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기업의 일감몰아주기 등 편법 증여에 대한 과세는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다. 증여세 완전포괄주의를 통해 충분히 과세가 가능했다는 점을 근거로, 과세당국이 이를 적법하게 집행하지 않았다는 비판까지 나오기도 했다.
일감몰아주기 증여세 과세대상을 두고 논란이 끊이지 않는 상황에서, 정부가 증여개념의 확장적 의미를 담고 있는 완전포괄주의 근거를 명확하게 마련하겠다는 방침을 내걸었다.
예측가능성과 법적안정성을 높여 과세권 집행의 명분을 확보하고, 과세당국과 납세자 간 불복 등 조세분쟁을 없애겠다는 복안이다.
□ 감사원 지적 외면했던(?) 기재부·국세청 = 일감몰아주기 증여세 논란의 불씨는 사실 감사원이 당겼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지난 2013년 감사원은 "기획재정부와 국세청이 대기업들의 일감 몰아주기를 방치했다"는 요지의 감사결과를 발표했다. 대기업 최대 주주들이 자녀 등이 보유한 비상장회사에 편법적으로 부를 이전했는데도 기재부와 국세청이 과세에 손을 놓고 있었다는 것이다.
사실 부유층의 세금부담 없는 부의 무상이전을 차단하기 위한 완전포괄주의가 적용되고 있음에도 제대로 활용하지 못했다는 점이 가장 큰 논란거리였다.
이에 감사원은 2004년 상증세법에 명시된 완전포괄주의 규정 이후부터 '일감 몰아주기 증여세 과세제도'가 시행된 2012년 사업연도 이전 기간에 이루어진 기업들의 편법 증여 행위에 대해 과세권 행사를 촉구했다.
당시 ▲현대차그룹 계열 현대글로비스 ▲SK그룹 계열 SK C&C ▲CJ ▲롯데쇼핑 ▲GS ▲동국제강 ▲신세계 ▲STX ▲대선주조 등 9개 재벌그룹이 타게팅 됐다. 조세·회계전문가들 사이에서는 감사원 권고에 따라 증여세가 부과될 경우 총 과세액이 2조원에 달할 것이라는 분석까지 내놓기도 했다.
관심은 감사원이 기재부와 국세청에 과세를 촉구했던 재벌가 편법증여에 대한 '소급과세' 여부에 쏠렸다.
감사원은 2004년 당시 세법(완전포괄주의 도입)을 적용하는 문제이기 때문에 소급과세는 아니라는 주장을 펼치면서 과세당국을 압박했으나, 기재부와 국세청은 어떤 행위를 증여로 보고(과세표준) 과세 할 것인가라는 명확한 법적 기준이 없다는 점을 이유로 난색을 표했다.
즉 일감 몰아주기 과세제도가 2012년 사업연도를 기점으로 발동했다는 점을 감안할 때 소급과세는 불가능하다는 입장이었다.
특히 일감을 몰아 받아 얻은 소득에 법인세 또는 소득세가 과세된 지배주주 등에 다시 증여세를 과세했을 때 '이중과세' 문제도 도마 위에 올랐다.
감사원은 완전포괄주의 도입 이후 주식가치 상승분을 증여이익의 일부로 간주, 증여세를 과세해야 한다는 논리를 펼쳤다. 쉽게 말해 법인이 증여를 받으면서 한번 법인세를 내는데 주주에게 또 회사의 가치가 올랐다는 근거로 증여세를 부과해야 한다는 이야기다.
□ 논란거리 증여세 완전포괄주의 '손질' = 정부는 오랜 기간 동안 논의 끝에 감사원의 결정을 따르기 힘들다는 결론을 내린 것으로 전해졌다. 다만 감사원의 지적사항을 반영해 과세근거를 명확히 하는 내용을 2015년 세법개정안에 담았다.
구체적으로 애매모호했던 증여세 과세 기준을 ▲무상 또는 현저히 저렴한 대가를 받고 재산을 이전하거나 ▲증여예시규정 및 증여의제규정을 충족하고 ▲이를 근거해 증여재산가액을 계산할 수 있을 때로 정비했다.
눈에 띄는 대목은 일감 몰아주기나 일감 떼어주기와 같은 변칙 증여 사례를 더 찾아 과세를 강화하겠다는 방침이다.
부모가 자식이 아닌 법인에 증여했을 때 법인세를 내는 상황에서 법인과 주주에 모두 증여세를 과세하면 이중과세 논란이 있기 때문에 한번만 과세하기로 했다. 다만 정부는 주주에 대한 변칙 증여가 가능한 사례(일감몰아주기 등)를 증여의제 규정으로 열거, 예외적으로 과세한다는 방침이다.
즉 일감을 몰아 받아 얻은 소득에 이미 세금(법인세 등)이 과세 됐다하더라도, 일감몰아주기 등 변칙적인 증여사례로 포착되면 증여세를 매긴다는 것이다. 그동안 경제적 실질에 대한 부분에 과세권이 발동되지 않아 감사원으로부터 지적된 사항을 수용한 것이다.
기업들이 총수 일가가 운영하는 업체에 사업기회를 제공하는 등의 일감 떼어주기에도 증여세가 부과될 것으로 보인다. 정부는 기업들이 특수관계법인에 사업기회를 제공할 경우 수혜법인의 지배주주에게 증여세를 물리겠다는 방침을 내걸었다.
가령 극장을 운영하는 A법인이 대주주의 친족이 설립한 B법인에 극장 내 매점을 임대할 경우, B법인에 사업기회를 제공했다고 보고 대주주의 친족에게 증여세를 부과하겠다는 것이다. 수혜법인 대주주 일가의 주식보유비율이 간접보유비율을 포함해 50% 이상인 법인이 과세대상 표적이다.
다만 3년간 손익을 정산해 실제 이익이 난 부분에만 과세하기로 했다.
기획재정부 관계자는 "상증법상 증여 예시규정에 한정하지 않고 경제적 실질이 증여에 해당하면 증여세가 과세가능 하도록 제도를 보완했다"고 밝혔다.
□ 포괄주의 보완됐으니, 편법증여 소급과세? = 증여세 완전포괄주의 법적근거가 보완됨에 따라, 그동안 변칙적인 증여를 통해 이익을 본 기업들에 대한 과세권이 발동될지의 여부에 눈길이 쏠릴 수밖에 없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증여시기 확정, 증여재산가액(과세표준) 산정 등 일감몰아주기 과세를 위한 법령상 근거나 집행기준이 마련되었다고는 하나, 이전 사례에 대한 정부의 과세권 행사는 불가능할 것이라는 관측을 내놓고 있다.
정부 역시 증여세 소급과세를 하는 것은 세법의 원칙에도 어긋난다는 취지로 과세권 발동에 부정적인 입장이다. 올해 세법개정안을 통해 과세권을 행사할 수 있는 명분이 만들었으나, 과거의 편법증여에 대해 세금을 물리기 위해선 당시의 세법을 적용해야 하기 때문이다.
세법 개정 이전 법령에서 정한 구체적 과세요건을 찾을 수 없으므로 과세가 곤란할 수밖에 없다는 소리다. 기재부 관계자는 "명확하게 증여세 과세 기준에 해당하는지의 대해 판단이 필요하기 때문에 법적으로 명확히 하자는 의미에서 세법을 개정했다"면서 "감사원의 지적사항은 그걸로 끝난 것이다. 당시에 법조문을 가지고 과세를 해야 하기 때문에 소급과세는 말이 안 된다"고 밝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