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경제의 성장둔화와 위안화 평가절하, 예고된 미국의 금리인상 등 악재들이 계속 불거지면서 한국경제가 주저앉고 있다.
내수경제에 엄청난 타격을 준 메르스(중동호흡기증후군)충격에서 벗어나나 싶더니 북한 리스크까지 재발했다. 반복되는 북한리스크에 어느 정도 내성이 생기긴 했지만 남북 간 합의사항이 실천되지 않는 한 북한리스크는 우리경제의 고질적 불안요인으로 항상 잠복돼 있다.
가장 민감한 주식시장은 지난 한 주 내내 폭락장세를 거듭했다. 일시적인 조정이라면 문제는 간단하다. 연 2%대의 낮은 경제성장률, 답보상태의 상장회사 이익, 중국과 일본 사이에 끼여 신음하는 제조업, 정부의 경제 리더십부재, 전망이 불확실한 구조개혁 등이 ‘꿈을 먹고 사는’ 주식시장의 활력을 앗아가고 있는 점이 심각하다.
외국인뿐만 아니라 국내 기관들도 공격적으로 주식을 내다 팔고 있다. 제조업의 쌍두마차 격인 삼성전자 현대자동차가 중국 업체들의 거센 도전에 직면한 상황에서 경제의 지속적 성장을 이끌어낼 산업과 기업이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가장 큰 악재는 ‘세계의 공장’ 중국의 저성장이다. 지난 10년간 중국경제는 연 10%씩 성장하면서 원자재와 공산품을 엄청나게 사들였다. 중국에 대한 우리의 수출비중은 29.5%(6월말 현재), 국내총생산(GDP) 의존도가 10%를 넘는다.
‘중국 프리미엄’이 중국경제의 성장둔화로 어느새 ‘차이나 리스크’로 반전한 것이다. 대중국 수출은 지난해 0.4%, 올 상반기 2.1% 감소했다. 반도체를 제외하고 주요 수출품목이 성장둔화에 따른 수입수요 감소와 저가공세에 나선 중국 기업들과의 가격경쟁으로 어려움이 가중되고 있다. 중국 성장률이 1%포인트 떨어지면 우리 성장률은 0.17%포인트 하락한다는 한국개발연구원(KDI)의 분석이다.
양국 간 기술격차도 빠르게 줄어들어 주요 10개 업종의 기술격차가 2년 미만으로 축소됐다. 대중 수출의 60%를 차지하는 부품소재 역시 ‘중국산 부품과 소재를 중국산 완제품에 더 넣겠다’는 ‘차이나 인사이드’ 전략으로 물량이 크게 줄면서 경쟁력도 약화되고 있다.
중국에 대부분 중간재를 수출해 중국수출이 늘면 한국수출도 덩달아 늘어나는 것도 옛말이 됐다. 위안화 절하로 중국의 수출이 증가하면 한국의 대중(對中) 수출이 늘어나 한국도 이익을 봤지만, 이제는 경합 업종이 늘어나면서 부정적인 영향이 더 커졌다.
원·위안 환율이 5% 하락하면 한국의 총수출이 3% 감소하고, 특히 기계·석유화학 업종의 피해가 클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투자은행 모건스탠리가 최근 중국 위안화 절하로 충격을 받을 ‘불안한 10개국’에 한국을 집어넣은 것도 이런 사정 때문이다.
위안화 절하는 금리 인하, 재정 투입에 이어 중국 정부가 꺼내 든 마지막 경기부양 카드임은 분명하다. 일본이 인위적 엔저를 통해 수출 신장에 성공한 만큼 중국도 경기 진작과 수출 제고까지 염두에 두고 위안화 평가 절하에 나서 글로벌 환율 전쟁을 촉발하고 있다는 우려를 낳고 않다.
위안화 평가절하가 위안화 국제화 목적에서 이뤄졌다는 분석도 한편에서 나오고 있다. 국제통화기금(IMF)이 긴급인출권(SDR) 기반통화에 위안화를 포함시킬 것인지를 올해 안에 결정할 예정이다. 달러가치에 묶여 유로나 엔화에 비해 고평가 돼 있던 위안화의 변동폭을 넓혀 국제결제통화로 격상시키려는 중국의 장기계획의 첫걸음으로 해석될 수도 있다.
위안화 환율의 시장결정력이 확대된다는 긍정적인 대목도 크지만 위안화 가치 절하가 중국 경제의 경기부양에 별 도움을 주지 못하면서 한국 등 신흥국들에 큰 피해를 입힐 우려가 있다는 점이 문제다.
더 큰 문제는 한국을 비롯한 아시아 국가들이 중국 고성장에 안주해 다가올 저성장시대를 제대로 준비하지 못한데 있다. 한국입장에서 일본의 ‘잃어버린 20년’과 중국의 고도성장은 일본과의 격차를 좁히고 중국에 대한 기술적 우위를 탄탄하게 다질 수 있는 ‘골든타임’이었다. 유감스럽게도 한국은 이 기회를 살리지 못하고 반사이익만 취하며 안주해왔다.
그 결과 중국의 성장에 지나치게 의존하게 됐고, 중국이 성장하면서 기술격차마저 추월을 당하는 처지가 됐다. 혁신과 구조개혁으로 제조업의 국가경쟁력을 높이고 일본이나 독일 같은 소재·부품 선진국으로 도약을 서둘러야 했었지만 중국의 고성장과 중앙은행들의 양적완화의 달콤함에 취해 천금 같은 기회를 놓치고 만 것이다.
위안화 평가절하로 달러화 강세 현상이 더 두드러지고 미국이 금리까지 올리면 신흥국 통화 가치는 더 떨어진다. 환차손에 민감한 외국인들이 투자자금을 거둬들이게 돼 급격한 자본 유출→신흥국 화폐가치 하락→수입수요 감소→총수요 둔화라는 악순환을 불러온다. 한국 증시가 또다시 외국자본의 ‘현금자동입출금기(ATM) 신세’가 될 수 있다는 경고등도 켜졌다.
중국정부의 부양의지가 워낙 강해 통화․환율․재정정책을 총동원 경제를 떠받칠 것이고, 연 6~7%성장은 유지하리라는 위안 섞인 전망도 없지 않지만 중국 경제의 감속이 심화될 경우 글로벌 경기침체 내지 경제위기의 진앙이 된다. 벌써부터 그 조짐이 심상치 않다.
여기다 미국의 금리인상이 빨라지면 위기가 가속화될 수 있다. 금리인상으로 달러가 강세가 되면 미국수출이 타격을 받고 세계적 경기후퇴는 결과적으로 미국경제의 성장에 걸림돌이 될 수 있다. ‘9월 위기설’이 고개를 들고 있지만 미국은 금리인상에 앞서 이런 상황들을 종합적으로 고려할 수밖에 없는 점이 남은 변수다.
우리 증시는 그동안 풍부한 글로벌 유동성에다 저유가와 초저금리에 따른 비용절감이 기업실적 개선으로 나타날 것이라는 기대감속에 고공행진을 해왔다. 미국의 금리인상은 단숨에 유동성을 축소시킬 수 있고, 실적 기대감 역시 실제 매출확대가 뒷받침되지 않으면 뜬구름이다. 돈의 힘으로 떠받치는 증시의 고공행진은 거품일 뿐이다.
미국과 중국은 세계경제의 ‘빅2’다. 두 ‘고래’싸움에서 한국 같은 ‘새우’는 마땅한 대응책이 없다. 환율 대응을 위해 원화를 절하시키면 자본유출이 더 커질 수 있어 과감하게 대응하기도 쉽지 않고 미세조정을 통해 환율의 출렁거림에서 몸의 균형을 잡는 일이 고작이다.
기업들은 700조원의 사내유보를 쌓아둔 채 여전히 투자를 망설이고, 소득이 늘어도 돈을 쓰지 않는 ‘흑자형 소비침체’속에 해외여행과 해외직구는 급증하는 등 ‘내수유출’도 심각하다.
‘재도약을 위한 대장정’은 창조경제와 문화융성이라는 슬로건만으로 성장동력을 찾기 어렵다. 지금부터라도 제조업이 일자리의 근원이라는 생각으로 핵심 제조업 분야의 경쟁력 확충에 국가적으로 ‘올인’하는 일 말고는 달리 묘책이 없어 보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