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측면에서 보면 임환수 국세청장은 불운한(?) 국세청장이다.
'변화의 아이콘'으로 주목받으며 취임, 국세행정의 체질 개선을 강력하게 추진하고 있지만 조직원들이 연루된 크고 작은 사건·사고가 연달아 터지면서 안팎으로 국세청의 이미지가 구겨졌기 때문이다.
임 국세청장이 취임한 지난해 8월부터 올해 현재까지 각종 비리사건이 하루가 멀다하고 발생, 국세청은 과장 조금 보태 바람잘 날 없는 시간을 보내고 있다.
고위직 출신이 연루된 권력형 비리, 세무조사 금품비리, 성매매 사건 등 사건·사고의 규모와 내용 또한 충격적이다.
자기관리가 철저한 것으로 유명한 임 국세청장이 취임과 동시에 '청렴'을 강조하며 본인부터 수신(修身)하겠다는 선언이 무색할 정도로 튀어나오고 있는 사건·사고로 인한 국세청 이미지 손실을 막기 위해 국세청은 강도 높은 부조리 방지 대책을 내놓으며 해법 찾기에 골몰하고 있다.
하지만 임 국세청장이 제시한 해법이 가시적 성과로 이어졌는지 여부를 제대로 판단하기 위해서는 상당한 시간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 국세청 권력과 부패의 원천, '세무조사' = 세무조사는 국세청을 국가정보원, 검찰, 경찰과 함께 '4대 권력기관'으로 불리우게 만든 강력한 무기이자 '조세공평' 확립이라는 국세청의 기본 모토를 실현하기 위해 활용할 수 있는 핵심적인 권한이다.
하지만 국세청 부패의 원천이라는 양면성을 가진 것이 세무조사다.
국세청 개청 이래 수 십년 동안 세무조사와 연관된 금품비리는 끊이지 않았다. 수단과 방법을 동원해도 근절되지 않는 국세청의 고질병은 '청장이 누구냐' 를 가리지 않고 계속해서 불거지고 있다.
임 국세청장이 취임한 지 얼마 되지 않아 현직 본청 감찰담당관이 과거 세무조사를 하던 업체에서 뇌물을 받았다는 혐의로 검찰 수사를 받았다. 사건의 본질을 떠나 구설이 만들어졌다는 것 자체로 국세청 안팎을 뒤흔든 사건이었다.
지난해 10월과 11월에는 세무조사 편의를 봐주는 대가로 금품을 수수한 중부청 소속 사무관과 모 세무서 6급 직원이 구속되기도 했으며 12월에는 불법대출 문제로 세간을 떠들썩하게 했던 모뉴엘 세무조사와 관련해 금품을 수수한 모 세무서 소속 사무관(과장)이 구속되기도 했다.
올해 3월에 터진 전·현직 서울청 조사국 직원들의 조직적인 금품수수 행태는 국세청 내외부적으로 엄청난 충격파를 안겼다.
지난 5월 불거진 일명 '신모 세무사' 사건은 세무조사 편의를 봐달라는 대가로 수 십명의 국세공무원들이 금품을 수수했다는 의혹에 휩싸이기도 했다.
이밖에 무혐의 처분을 받으며 일단락 된 것으로 알려진 성매매 노예 각서 사건을 비롯해 서울청 소속 간부들의 성매매 사건이 터지면서 큰 망신을 당하기도 했다. 또 전직 지방청장 출신들이 청와대 문건 파문에 휩쓸리고 대통령 친인척 비리에 연루, 곤욕을 치르거나 치르고 있는 상황이다.
□ 부조리 방지 대책 쏟아냈지만… = 임 국세청장은 취임하자 마자 자신이 평소 생각하고 있던 부조리 방지 대책을 하나씩 꺼내들었다. 가장 먼저 감찰담당관 명칭을 변경했다.
표면적인 이유는 납세자들이 쉽게 이해할 수 있는 명칭으로 바꾼다는 것이었지만 실제로는 과거의 감찰방식을 바꾼다는 의미가 컸다. 무조건적으로 감시하고 다그쳤던 권위적인 감찰방식을 바꿔 수집된 정보를 바탕으로 효율적으로 감찰활동을 하겠다는 의미가 명칭 변경의 진짜 목적이었다.
이를 위해 정보수집전담반을 신설하고 고위직을 전담하는 기동감찰반도 신설했다.
세무조사 모니터링 제도 운영과 조사심의팀 신설, 조사팀 순환제를 실시해 투명성 제고에 애썼다.
청렴교육을 의무적으로 실시하고 자율적 청렴활동을 위해 청렴동아리 운영도 활성화했지만 세무대리인과 연계된 비리 사건이 계속 터지자 기어코 특단의 대책을 들고 나왔다.
세무공무원에게 금품을 제공한 세무대리인에 대해서도 징계를 강화하겠다고 나선 것이다. 징계로 등록이 취소된 세무대리인에 대해선 재등록 불가기간을 연장하고 세무사법을 위반한 세무대리인은 국세청의 각종 위원회 활동에서 배제시키기로 했다.
또한 조사팀-납세자 면담 시 세무대리인을 배제하는 방안도 포함시켰다.
□ 부조리 근절 위한 노력, 보완할 부분은? = 임 국세청장이 마련한 각종 부조리 근절대책이 효과를 발휘했는지 여부는 현재로서는 평가가 힘들다. 특히 세무대리인 부조리에 대한 대책은 발표된 지 얼마 되지 않았기 때문에 실효성을 논하는 것 자체가 아무 의미없는 일이다.
하지만 임 국세청장이 내놓은 특단의 대책, 세무대리인 부조리 차단 대책이 세상에 공개된 배경을 짚어볼 필요는 있다. 내부직원을 상대로 시행했던 감찰조직 개편, 투명성 제고를 위한 업무 프로세스 개선, 청렴교육 활성화 등의 대책들만으로는 부족하다는 사실을 통감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이는 국세청 홀로 자정노력을 지속한다고 해서 조직의 비리문제를 완전히 걷어내기에는 한계가 있다는 사실을 제대로 인지했다는 의미로도 해석할 수 있다.
세무대리인 제제 강화에 나선 것에 대해 국세청은 '손바닥도 마주쳐야 소리가 난다'는 의미에서 내놓은 대책이라는 설명이다. 금품을 주는 사람과 받는 사람이 공존하고 있기 때문에 양쪽 모두를 제재하지 않고서는 비리가 계속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 대책의 성패는 곱지 않은 시각으로 국세청의 대책을 바라보고 평가하는 세무대리 업계의 인식을 얼마나 누그러뜨리고 그들의 적극적인 협조를 얻어내느냐에 달려있다는 분석이다.
감찰조직 개편이나 감찰운영방식 개선의 경우 임 국세청장의 의도대로 내용적인 면에서 바뀌었는지에 대한 의구심이 제기되고 있다.
겉옷만 바꿔입었을 뿐 과거의 권위적인 감찰방식은 여전히 남아 있다는 것이 국세청 직원들의 여론이다. 또한 국세청에 청렴문화가 자리잡으려면 장기적인 관점에서 대책을 추진하는 것은 물론 '제 식구 감싸기' 같은 문화도 빨리 사라져야 한다는 의견도 나오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