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혼막을 간통죄 사라져 파탄주의 택하면 축출이혼 우려
유책배우자라도 상대방과 협의로 이혼할 수 있어
여성 지위 올랐지만 완전한 양성평등 미흡
바람을 피운 배우자는 이혼소송을 낼 권리가 없다는 종전 대법원 판례가 그대로 유지됐다.
대법원 전원합의체(주심 김용덕 대법관)는 15일 백모씨가 부인 김모씨를 상대로 낸 이혼 청구소송에서 유책주의에 따라 원고 패소 판결한 원심을 확정했다. 대법관 13인 가운데 7인은 유책주의 유지를, 6인은 파탄주의 도입을 주장했다. .
재판부는 혼인파탄 배우자의 이혼청구는 신의성실의 원칙에 어긋나고, 파탄주의를 택하면 사회적·경제적 지위가 남성보다 낮은 여성 배우자가 입을 불이익이 큰 점을 고려해 50년간 유지해온 유책주의를 변경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시기상조라고 판단했다.
특히 재판부는 헌법재판소 위헌결정으로 간통죄가 사라진 점을 유책주의를 유지해야 하는 이유로 꼽았다. 대법원이 유책주의를 택한 데는 중혼(重婚)관계에 처한 배우자의 축출이혼을 방지하기 위해서다. 중혼에 대한 형벌조항으로 기능한 간통죄가 사라진 상태에서 파탄주의를 도입하면, 결과적으로 중혼을 인정하게 될 위험이 있다는 것이다.
재판부는 유책배우자라도 소송에 이르기 전에 협의를 통해 이혼하는 방법이 있다는 점을 고려했다. 지난해 전체 이혼 가운데 77.7%는 협의이혼이다. 아울러 재판부는 여성의 지위가 과거보다 높아진 것은 사실이지만 사회경제 모든 영역에서 완전한 양성평등이 실현된 것으로 보기에는 미흡한 점도 감안했다.
이 사건에서 재판부는 백씨가 집을 나와 사실혼 배우자 사이에서 혼외자를 출산하고, 김씨에게 생활비를 지급하지 않고, 김씨가 혼인관계를 유지하기 원한다는 점을 종합해 “백씨는 혼인생활 파탄에 주된 책임이 있는 유책배우자이므로 이혼을 청구할 수 없다”고 설명했다.
다만 민일영·김용덕·고영한·김창석·김신·김소영 대법관 6인은 파탄주의를 도입해야 한다는 의견을 냈다. 대법관 6인은 “유책배우자라는 이유만으로 재판상 이혼청구를 허용하면 안 된다는 다수의견에 찬성할 수 없고, 종전 대법원 판례는 변경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관계가 회복하지 못할 정도로 혼인의 실체가 소멸한 경우라면 실질적으로 이혼한 것으로 봐야 하는데, 이런 경우는 부부의 법률관계를 정리하는 것인 합리적이라는 취지다.
백씨는 1976년 김씨와 결혼한 뒤 2001년 자신의 딸을 낳은 여성과 동거했다. 이후 2011년 김씨를 상대로 이혼 소송을 냈다. 1심과 항소심은 유책배우자의 이혼청구는 받아들일 수 없다는 대법원 판례에 따라 백씨의 이혼 청구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