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드업계가 이번달 가맹점 수수료율 재산정을 앞두고 정치권에서 수수료율 인하를 촉구하고 나서자 비상에 걸렸다. 정치권이 이번 국정감사에서 기준금리 인하에 따른 조달비용 감소 등을 이유로 수수료율을 연내 조속히 내려야 한다며 뭇매를 때리고 나섰기 때문이다.
카드업계는 지난 2012년 금융당국이 카드가맹점 수수료율을 인하해 이미 수수료수익이 연간 4000억원 가량 쪼그라든 상태인데다 경기침체까지 겹쳐 수수료율을 더 내릴 경우 업계가 입을 타격이 만만치 않다며 반발하고 있다.
카드업계 관계자는 "가뜩이나 어려운데 카드사 수익이 더 줄어들면 신규채용이 축소되는 등 카드사 영업활동에 제약이 따를 수 밖에 없다"며 "수수료수익이 감소하면 제휴사 할인 등 카드상품 부가서비스가 줄어들어 결국 고객들이 피해를 고스란히 입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 국회, "카드가맹점 수수료율 내릴 여건 충분히 조성돼"
정치권은 카드업계가 가맹점 수수료율을 내릴 여지가 충분히 여물었다는 입장이다. 적격비용의 개념을 도입한 2012년 당시보다 기준금리가 1.5%포인트 낮아져 카드사들의 자금조달비용 부담이 줄었고 이로 인해 카드사들의 지갑이 두둑해졌다고 판단한 것이다.
카드가맹점 수수료율 산정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자금조달비용이 기준금리가 낮아진 만큼 카드사들의 비용부담이 가벼워졌다는 주장이다.
박병석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은 국정감사를 통해 "기준금리가 내려감에 따라 카드사들의 자금조달 부담이 줄었다"며 "당기순이익까지 늘어 카드사들은 여유가 생겼다"면서 수수료율을 시급히 내려야 한다고 주장했다.
카드사들은 2012년 1조3056억원의 당기순이익을 기록했고 작년 말에는 2조1696억원, 올해는 상반기에만 1조971억원의 당기순이익을 기록했다.
국회에서는 일반가맹점과 대형가맹점 간 카드 수수료율에 부당한 차별이 존재한다는 지적도 제기됐다.
김기준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은 "이번 상반기 일반가맹점의 평균 수수료율은 2.25%로 대형가맹점의 1.99%보다 0.26%포인트 높았다"며 "여신전문금융업법 제18조의3에 따르면 수수료율 결정은 공정하고 합리적이어야 하는데 일반가맹점의 수수료율이 상대적으로 높다"고 비판했다.
김 의원은 "자영업이 죽어가고 서민들은 가계부채에 취약한데 지난해 카드사들의 당기순이익은 무려 60%나 늘었고 그들은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고 있다"며 "정부의 조속한 대책이 필요하다"고 촉구했다.
임종룡 금융위원장은 이 자리에서 "기준금리가 내려갔고 그간 제도변경도 있었기 때문에 충분히 카드가맹점 수수료율 인하 요인이 있다고 생각한다"며 "수수료율 인하에 관한 전담팀을 구성해 하루빨리 문제를 해결하겠다"고 답했다.
가맹점 수수료율 인하가 불가피 해지는 분위기이다.
□ 카드업계, 3년간 사람 적게 뽑고 상품혜택 축소
카드업계는 수수료수익이 경영실적에 큰 영향을 미치는데다 가맹점 수수료율은 상방 경직성이 있어 사상 최저수준의 기준금리에 맞춰 수수료율을 낮추게 되면 금리가 상승세로 돌아설 때 경영난에 빠질 수 있다며 난색을 표하고 있다. 카드사들은 수수료율이 인하될 경우 지난 3년의 경우처럼 내핍경영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고 있다.
우선 카드사들은 지난 3년간 신입사원 채용에 소극적인 태도를 보여 왔다.
우리카드는 작년에 신입사원을 뽑지 않았으며 올해는 20여명만을 뽑을 계획이라고 밝혔다. 하나카드도 2012년부터 채용규모를 줄여 지난해엔 신입사원을 한명도 뽑지 않았고 이번 채용규모는 15명 내외이다.
현대카드는 작년 하반기 100여명의 신입사원을 뽑았으나 이번에는 20명 적은 80여명의 신입을 채용키로 했다. 신한카드와 BC카드, 롯데카드, KB국민카드는 평년수준을 유지해 채용을 이어갈 양상이다.
카드업계는 지난 2012년 수수료율 인하 이후 고객에 대한 부가서비스를 줄여왔듯이 수수료율을 추가로 내릴 경우 고객서비스 수준이 급격히 떨어질 것으로 걱정하고 있다.
신한, KB국민카드 등 7개 카드사는 제휴사와의 계약을 종료하면서 총 81종의 상품 중 16종의 부가서비스를 지난해 축소한 바 있다.
신한카드는 'GS 신한카드'의 GS 적립포인트와 적립율을 기존보다 하향시켰다. 종전에는 GS주유소에서 리터당 80포인트, GS충전소에서 리터당 30포인트, GS홈쇼핑에서 구매금액의 3%를 적립해 줬으나 변경 후에는 GS주유소 77포인트, GS충전소 28포인트, GS홈쇼핑 2.8%로 적립수준을 낮췄다.
KB국민카드는 'KB국민비씨 레인보우카드'의 외식업체 할인혜택을 이달 중으로 없애기로 했다. KB국민카드 고객이 이 카드로 베니건스에서 현장결제를 할 경우 구매금액의 20%를 깎아주지만 베니건스 자체할인 범위가 넓어짐에 따라 오는 31일자로 할인혜택을 종료키로 한 것이다.
카드업계 관계자는 "수수료수익이 카드사 경영에 중대한 영향을 끼친다"며 "내년 총선을 앞두고 무작정 카드가맹점 수수료율을 내리라는 등 정치권의 일방적 압박에 시달리는 것만 같아 마음이 편치 않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한편 조남희 금융소비자원 대표는 "수수료율을 1%로 내리자는 정치권의 주장은 총선을 의식한 것이지만 다소 과도한 측면이 있다"며 "전문적 연구를 거치지 않고 시류에 휘둘려 수수료율을 내리겠다고 답변한 정부도 문제"라고 지적했다.
조 대표는 "이런 식의 의사결정 과정은 왜곡된 수수료율 체계를 낳을 뿐"이라며 "중립적이고도 전문적인 의사결정을 통해 보다 합리적인 수수료율 체계가 나와야 한다"고 주장했다.
카드가맹점 수수료율은 여신전문금융업법에 따라 3년에 한번씩 재산정되며 지난 2012년 10월에 이어 이달 재산정될 예정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