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秦)·초(楚)·제(薺)·연(燕)·위(魏)·한(韓) 그리고 조(趙). 춘추시대가 막을 내린 기원전 403년부터 진시황이 천하를 통일한 기원전 221년까지의 전국(戰國)시대를 풍미한 전국7웅들이다. 이 중 조는 아주 작은 나라였으나 다른 나라들이 함부로 건드리지 못했다. 명재상 인상여(藺相如)와 명장 염파(廉頗)가 버티고 있었기 때문.
그 조나라에 ‘화씨지벽(和氏之璧)’이라는 큰 구슬이 있었다. 후에 진시황이 옥새로 썼을 정도로 귀한 보물이다. 전국7웅 중 최강자 진의 소양왕이 이를 탐내 15개성과 맞바꾸자고 제안했다. 구슬만 뺏자는 속셈이나, 불응하면 트집을 잡아 쳐들어 올 판이니 응하지 않을 재간이 없었다. 당황한 조의 혜문왕의 걱정이 늘어졌다. 그 때 환관 목현의 식객 인상여가 혜성처럼 등장, 구슬을 들고 진으로 갔다.
인상여로부터 구슬을 받아 든 진왕은 그것을 신하들과 총희들에게 자랑만 하고 정작 15성을 준다는 말은 하지 않았다. 인상여의 머리가 번개같이 돌아갔을 터. “실은 그 구슬에 조그마한 흠이 있는데 그걸 일러드리겠다”면서 잽싸게 구슬을 돌려받고는 돌기둥에 착 붙어 섰다.
그리고 일갈했다. “나를 건드리면 내 머리와 함께 이 구슬을 기둥에 콱 박아 버릴 테니 알아서 해라. 그리고 우리 조왕이 이 구슬을 넘겨주기 위해 5일간 목욕재계했으니 진왕도 5일간 목욕재계하면서 기다려라.” 인상여의 등등한 기세에 질린 진왕이 할 수 없이 그에 동의했다.
시간을 번 인상여는 하인을 시켜 구슬을 몰래 조나라로 빼돌렸다. 닷새 뒤 진왕 앞에 선 인상여. 이렇게 말한다. “진왕이 구슬만 뺏고 15개성은 줄 마음이 없는 것 같아 구슬은 이미 조나라로 보냈으나, 지금이라도 15성을 준다면 구슬을 가져 오겠다.”
진의 신하들이 격분하여 그를 죽이려고 했으나 인상여의 담대함에 감복한 진왕은 그를 융숭하게 대접하여 돌려보낸다. 그 후 인상여는 승승장구, 조의 재상인 상경의 자리에 오른다. “완벽하다”의 ‘완벽(完璧)’은 온전히 보존되어 돌아온 구슬을 뜻한다. 인상여의 그런 기지와 대담함에서 유래된 말이다.
염파. 그는 수많은 전투와 전쟁에서 혁혁한 공을 세워 대장군에 오른 명장 중의 명장이다. 당나라의 시성(詩聖) 두보가 “어찌하면 염파 같은 장군을 얻어 온 군사들과 함께 편안히 잠잘 수 있으리오(安得廉頗將 三軍同晏眠)”라고 칭송했을 정도다. 그런 염파가 인상여의 승승장구에 단단히 뿔이 났다. “환관의 일개 식객에 불과했던 자가 무공도 없이 세치 혀로만 숱한 무공을 세운 나보다 높아졌다”며 “꼭 수치를 주고 말 것이다”라며 떠들고 다녔다.
소문을 들은 인상여. 행동이 괴이하다. 염파가 조정에 나타날 것 같으면 아프다며 조정에 나가지 않았다. 심지어 길에서 염파가 탄 마차를 보면 골목으로 숨기까지 했다. 인상여를 따르던 부하들이 그의 비겁함에 실망한 나머지 하나 둘씩 보따리를 쌀 즈음 인상여가 이렇게 말한다. “진왕도 꾸짖은 나 인상여가 뭣 때문에 염파장군을 두려워하겠는가. 나와 염파장군이 반목하면 진은 반드시 우리 조를 칠 터이니 내가 진정 무서워하는 것은 바로 그것이다.”
그 말을 전해들은 염파. 자신의 옹졸함을 너무나 부끄러워한 나머지 꺼이꺼이 통곡한 후 웃통을 벗고 가시나무를 등에 진다. 그리고는 인상여를 찾아가 가시나무로 자신을 매우 쳐달라고 청한다. 이른 바 부형청죄(負荊請罪). 깜짝 놀란 인상여가 “염파장군은 바로 조나라 그 자체입니다”라고 말한다. 그러자 염파는 “인상여 그대를 위해서라면 내 목을 치는 일이라도 후회하지 않겠소”라고 화답했다.
춘추시대 제나라 관중과 포숙의 우정을 그린 ‘관포지교(管鮑之交)’에 버금가는 우정의 고사 ‘문경지교(刎頸之交)’는 그렇게 해서 생긴 말이다. 후에 진시황의 대제국 진이 되었고 오늘날 China의 어원이 된 그 진나라 조차 문경지교로 똘똘 뭉친 이 두 사람이 있는 동안에는 조나라를 함부로 대하지 못했다.
아주 옛날, 그것도 기원전의 고리타분한 얘기를 늘어놓고 있는 이유는 분명하다. 나라가 매우 어렵다. 계속되는 불황에 국민들은 지쳐가고 있다. 거기에다 북한은 걸핏하면 핵으로 공갈을 친다. 인상여와 염파의 문경지교를 장황하리만치 길게 얘기한 것의 배경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