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 항문에 생기는 질환을 치질이라고 한다. 이는 항문에 생기는 암을 제외 한 양성 질환들을 통칭해 부르는 것으로, 크게 치핵, 치루, 치열 등으로 구분된다. 이 중 치핵이 전체 치질의 70% 정도를 차지한다.
국민건강보험공단의 분석 결과 지난해 치핵 환자는 65만6000여명으로 2009년부터 매해 평균 0.8%씩 늘고 있다. 연령별로는 40대 환자가 5명 중 1명꼴로 가장 많았고 50대와 30대가 뒤를 이었다. 성별 비율은 비슷하지만 20대와 80세 이상에서는 여성 환자가 더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겪어보지 않은 사람은 모르는 은밀한 고통, 치핵에 대해 최병민 대전선병원 대장항문외과 과장의 도움말로 알아본다.
치핵은 항문 안의 혈관조직을 포함하는 점막 및 점막하조직과 주변 항문관의 지지력이 약화돼 발생한다. 주로 항문 밖으로 꽃이 핀 것처럼 덩어리가 밀려내려온다. 원인은 복합적이지만 항문혈관을 확장시키는 자세나 생활태도가 주원인으로 꼽힌다. 특히 화장실에서 오래 앉아 있거나, 쪼그리고 앉는 습관이 장기간 지속되면 항문혈관 안에 피가 고이면서 혈관이 확장된다. 술의 성분인 알코올도 혈관을 늘어나게 해 치핵을 유발한다.
변비 때문에 변을 볼 때 힘을 많이 주면 복압이 올라가면서 혈관 내에 피가 많이 들어차 항문혈관이 쉽게 늘어난다. 가파른 산을 오르거나, 무거운 것을 들거나, 골프를 치는 것 등도 비슷한 결과를 초래한다.
임신과 출산도 치핵을 악화시키는 원인이 된다. 임신 중 증가하는 황체호르몬은 장운동에 영향을 줘 변비를 유발한다. 또 임신 중에는 복압이 올라가 항문의 혈액순환에 장애를 일으킨다. 조직이 연해지고 혈액양이 많아지는 등 여러 원인으로 치핵이 심해질 수 있다. 출산 중 힘을 주면서 임신 기간에 심해치핵이 갑자기 빠져나와 심한 고통을 유발하는 경우도 많다.
20대 여성의 주요 치핵 발병원인은 다이어트다. 살을 빼기 위해 밥을 적게 먹으면 대변량이 줄고 딱딱해져 변비가 나타날 수 있다.
치핵은 항문 안의 치상선을 경계로 치상선 상부의 내치핵, 하부의 외치핵, 두 부분이 혼재된 혼합치핵으로 구분된다. 내치핵과 외치핵에 따라 증상이 조금씩 다르지만 항문 안 조직이 탈출되는 탈홍이 가장 흔하다. 탈홍이 없는 선홍색의 항문 출혈도 자주 관찰된다. 혈관이 파열되면서 혈전이 생기는 혈전성 치핵도 발생하며, 이런 경우 심한 통증이 동반돼 농양으로 오인받기도 한다.
내치핵은 항문 안쪽의 조직 덩어리가 항문 밖으로 탈출되는 증상이 일반적이다. 배변 후 통증 없이 선홍색의 출혈이 자주 발생한다. 탈홍 정도에 따라 1~4기로 구분되며, 질환이 악화될수록 가려움증과 출혈의 발생빈도가 높다.
외치핵이 생기는 치상선 아래쪽은 피부로 덮여 있어 출혈이나 탈홍이 쉽게 발생하지 않느다. 간혹 피하에 피가 엉기는 현상인 혈전이 생기고 항문 바깥쪽으로 늘어진 꼬리 모양의 췌피가 자주 관찰된다.
치핵을 진단하려면 항문 부위를 살핀 뒤 항문수지검사와 항문경검사를 시행한다. 항문수지검사는 의사가 손가락을 항문 안으로 넣어 항문과 직장의 상태를 알아본다. 다른 복잡한 검사 없이 항문과 직장에 생기는 많은 질병을 확인할 수 있어 효과적이다.
항문경검사는 7~8㎝ 길이의 항문경을 집어넣어 항문 속의 상태를 눈으로 확인한다. 최근엔 항문경에 카메라를 달아 모니터 영상으로 항문 속 상태를 관찰하기도 한다. 경우에 따라 다른 질환을 배제하기 위해 초음파검사, 항문기능검사, 내시경검사를 병행한다.
치료법은 보존적요법과 외과적수술로 나뉜다. 보존적요법에는 변 완하제, 식이요법, 통증치료, 좌욕, 배변습관 교정 등이포함되며 증상을 일시적으로 호전시키는 데 도움된다.
좌욕은 미지근한 물을 좌욕기나 대야 등에 준비한 뒤 3~5분씩 하루 2~3회 항문 부위를 담그고 앉으면 된다. 항문 통증의 주원인이 되는 항문괄약근의 경련을 이완시켜서 통증을 줄인다. 항문 부위를 청결히 세척하고 혈액순환을 촉진해 상처 치유를 돕고 혈전이 녹는 효과도 볼 수 있다. 단 물이나 증기가 너무 뜨거워 화상을 입을 수 있어 너무 오래 하는 것은 삼간다.
외과적 수술은 보조술식과 치핵근본술식으로 나뉜다. 보조술식은 치핵을 절제하기보다는 치핵 점막을 고정시키거나 혈관조직을 결찰해 치핵 크기를 줄인다. 부식제주입법, 고무밴드결찰술, 치핵동맥결찰술 등이 있다.
치핵근본술식의 경우 이전에는 치핵 조직을 절제하는 방식으로 진행됐지만 최근엔 직장점막을 절제한 뒤 밀려나오는 치핵을 다시 해부학적 위치로 복원시키는 방법이 자주 시행된다. 이를 ‘PPH 치질수술법’이라고 한다. 고전적 치질수술에 비해 수술 후 통증이나 불편이 적어 일상생활로의 복귀가 빠르고 재발률이 낮다.
치핵을 비롯한 항문질환은 생명에 결정적인 위험을 주지는 않지만 삶의 질을 떨어뜨릴 수 있어 정확한 진단 및 치료를 받는 게 좋다. 치핵의 진행 정도와 증상에 대해 대장항문외과 전문의와 상담한 뒤 수술 여부와 시기를 결정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