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벌 및 부유층의 '세금 없는 부의 세습' 행위를 방지하기 위해 2003년(2004년부터 시행) 정부가 도입한 증여세 완전포괄주의의 위헌 논란은 사실상 완전포괄주의 라는 '화두'가 던져지기 이전부터 들끓기 시작했다.
논란의 핵심은 '상증세법 제33조~제42조가 규정한 구체적인 과세근거 유형에 해당하지 않아도 상증세법 제2조3항(완전포괄주의)을 근거로 과세권을 행사할 수 있는가' 여부다.
증여의 개념을 대폭 확장, 사실상 추상화한 상증세법 제2조3항은 '경제적 가치를 계산할 수 있는 유형·무형의 재산을 직접 또는 간접적인 방법으로 타인에게 무상으로 이전하는 것'과 '기여에 의해 타인의 재산가치를 증가시키는 것'을 증여로 규정해 어떠한 유형의 증여행위에도 세금을 부과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이 조항을 근거로 증여세를 부과할 수 있다면 과세관청의 자의적 과세를 허용하는 결과로 이어져 자유로운 경제활동을 위축시킬 수 있다는 지적이다. 특히 구체적인 과세요건의 규정 없이 포괄적으로 과세하는 것은 '조세법률주의'에 정면으로 위배된다는 지적도 많다.
□ 대법, 해묵은 논란에 '종지부'를 찍다 = 지난 10월15일, 흑자법인에 자산을 증여해 해당 법인의 주주가 보유한 주식가치를 높였다면 이 가치 상승분에 대해 세금(증여세)을 부과할 수 있는지 여부를 둘러싼 조세소송에 대한 대법원 판결이 처음으로 나왔다.
그동안 증여세 부과처분 취소소송에서 다수의 하급심 판결이 선고됐지만 하급심 판결의 결론이 재판부에 따라 들쭉날쭉, 적법성에 대한 논란이 계속되던 차에 대법원의 명쾌한 결론이 나온 것이다.
대법원은 과세관청의 증여세 부과에 대해 '조세법률주의 위반 및 이중과세'라는 결론을 내리며 납세자의 승소로 사건을 최종 정리했다.
흑자법인의 경우 자산수증이익에 대한 법인세를 이미 부담했기 때문에 법인의 주주들이 얻는 이익에 대해 상증법 제2조 3항 등을 적용해 증여세를 부과한 것은 이중과세에 해당한다는 것이다.
아울러 결손법인의 경우에도 과세대상에 해당하지 않는 범위 내(증여이익 1억원 미만)에서 재산을 증여한 경우 증여세를 부과할 수 없으며 결손범위를 넘는 부분 또한 휴폐업법인을 제외하고는 증여세를 부과할 수 없다고 판시했다.
대법원은 판결문(2013두13266)을 통해 "상증세법 제2조3항에 규정한 증여세 완전포괄주의 과세가 가능하다고 보아야 한다면서도, 상증세법 제41조 제1항(특정법인과의 거래를 통한 이익의 증여)의 규정은 자산수증이익에 대해 법인세를 부담하는 법인과의 거래로 인해 주주가 얻은 이익을 증여세 과세대상에서 제외하고자 하는 입법의도가 분명하다"고 설명했다.
제41조의 입법의도는 법인이 정상적으로 법인세를 내고 정상거래를 통해 주주가 얻는 이익에 대해서는 제41조에 적용되는 증여세만 내면 되는 것이고 그 이외에 포괄적으로 미실현 이익 등의 주식가치 증가분이 있다고 해도 포괄주의로 다시 과세하지 않겠다는 것을 염두에 두고 만들어진 법이라는 것이다.
대법원은 이어 "완전포괄주의 도입으로 인해 이러한 입법의도가 변경되었다고 볼 수 없다. 따라서 결손법인과의 거래로 인한 이익 중 결손금을 초과하는 부분이나 결손금이 없는 법인과의 거래로 인한 이익에 대해서는 증여세를 과세하지 않도록 하는 한계를 설정한 것으로 보아야한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이와 같은 이익에 대해선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상증세법 제2조 제3항을 근거로 해 주주에게 증여세를 과세 할 수 없다"고 못 박았다.
◆…지난 10월15일 대법원이 내린 증여세부과처분취소 소송 판결문 中 일부. 흑자법인에 대한 증여와 관련한 첫 판결을 내린 대법원은 유사한 사건에 대해 무더기로 과세관청의 패소를 확정짓고 있는 상황이다.
대법원의 첫 판결이 그동안 막혀있던 유사 사례에 대해 '물꼬'를 튼 격이 된 것이다.
지난달 2일 대법원은 A씨 등 8명이 주식의 시세차익 과세에 대한 법조문이 없다며 과세관청을 상대로 제기한 '증여세 부과처분 취소소송'에서 원고(납세자)의 승소를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
포괄적인 증여 개념은 공평과세를 구현하고 변칙적 상속 증여에 선제적으로 대처하기 위해 도입된 것이나 과세요건 법정주의와 관련한 납세자의 예측가능성을 보장해야 한다는 것이 판결의 골자.
대법원은 납세자의 예측가능성을 보장하기 위해 증여재산가액의 계산에 대해 개별적 규정을 두고 있는 것이라며 일정한 거래에 대해 개별 가액 산정규정에 의해 증여세가 매겨지도록 한 경우 여기서 벗어난 거래가 실질적으로 증여에 해당하더라도 세금을 부과할 수 없다고 밝혔다.
국세청은 증여세 완전포괄주의를 적용, 주식평가액 차액을 증여세 부과 대상으로 파악하고 증여세를 부과했으나 A씨 등이 이에 불복해 증여세 부과처분 취소소송을 제기했고 결국 1·2심에 이어 대법원까지 A씨 등의 승소로 종결됐다.
이 외에도 대법원의 첫 판결 이후 증여세 포괄주의를 둘러싼 수많은 소송이 국세청의 부당과세로 귀결되고 있는 상황이다.
□ 무엇이 문제였나? = 포괄주의 조항이 없었던 시절에는 민법상의 증여, 상증법이 증여로 본다고 하거나 증여로 추정한 행위에만 증여세가 과세됐다. 편법증여가 횡행했다 해도 최소한 열거주의를 채택해 법적 안정성과 예측 가능성은 확보하고 있었다는 얘기다.
하지만 과세대상으로 열거한 것과 유사한 것이면 구체적으로 열거되지 않더라도 과세하는 방식인 유형별 포괄주의를 거쳐 2003년 완전포괄주의가 도입된 이후 상증법의 개별조항(상증세법 제33조~제42조)에 증여로 규정된 행위들은 증여세가 부과될 수 있는 예시규정에 지나지 않게 됐다.
완전포괄주의는 상속세 및 증여세법 제2조 제3항에서 증여의 개념을 정의하면서 그동안 증여의제로 과세하던 조항을 예시규정으로 전환하고, 일일이 예시하지 못한 증여유형에 대해서는 동법 제42조를 적용해 과세하도록 하는 것. 상증법에 예시된 것 외의 행위도 포괄주의에 걸리면 가차없이 과세관청의 '철퇴'가 가해진 것이다.
완전포괄주의 도입 당시 상증법은 아버지가 아들이 대주주로 있는 결손법인에 증여한 경우, 아들이 증여를 받은 것으로 간주했다. 결손법인이기 때문에 법인세는 납부하지 않지만 그만큼 아들 주식의 가치가 상승했기 때문에 아들에게 증여세를 매긴다는 논리였다.
문제는 대법원 판결과 같이 흑자법인을 통해 증여했을 경우 불거졌다. 이 경우에도 아들 주식의 가치는 분명 커지기 때문이다. 적자, 흑자만 다를 뿐 예시규정(상증법 제41조)과 흡사할 뿐만 아니라 타인의 기여에 의해 재산가치가 커진다는 것도 분명한 사실이다.
이 대목만 보면 과세관청의 입장에서도 완전포괄주의를 들이 밀만한 근거가 나름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납세자들은 상증법 제41조에선 결손법인에 증여한 경우에만 증여세가 과세되는 것 아니냐며 즉각 반발하고 나섰다. 아버지가 흑자법인에 돈을 증여할 때 법인세를 내야 하고 아들은 증여세를 납부함과 동시에 배당을 받을 때 배당소득세까지 내는 '3중 과세'의 위험에 처했기 때문이다.
대법원이 최근 연이어 납세자의 손을 들어주는 것도 바로 포괄주의로 발생하는 이중, 삼중의 과세 위험 때문이다.
이를 의식한 정부는 2013년과 2014년 연이어 법을 개정, 증여를 통한 주식가치 증가에 대한 증여세 부과 규정, 영리법인이 재산을 증여받는 경우에 대한 규정 등을 뜯어고쳐 이중과세가 발생하지 않도록 장치를 만들었다.
흑자영리법인과의 거래를 통한 이익의 증여에 대해서는 법 제41조 제1항을 적용하되, 그 과세대상을 흑자법인의 지배주주에 한정하고 배당소득에 대한 이중과세를 조정하는 개정을 통해 일정한 요건에 해당하는 경우에만 증여세를 과세하는 것으로 개정한 것이다.
결국 최근 있었던 일련의 판결 뿐 아니라 현재 대법원에 계류 중인 법인 증여세 관련 소송은 개정 이전의 상증세법에 따라 과세된 부분과 관련된 것들이라는 이야기다.
국세청도 대법원 판결에 따라 같은 유형, 같은 쟁점으로 조사나 검토, 이의신청, 심사·심판단계 등에 머물러 있는 사안에 대한 처리 및 향후 포괄주의와 관련한 과세에 대해 입장을 정리한 것으로 전해졌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