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화 국회의장이 16일 기자회견을 통해 청와대와 여당이 강력히 촉구한 쟁점법안 직권상정에 대해 국회법을 근거로 거부했다.
박근혜 대통령이 강력히 추진하려는 경제활성화-노동시장 개편 관련 5대 법안의 연내처리에 '비상등'이 켜지면서 '플랜 B'에 대한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임시국회는 내년 1월8일까지지만 청와대와 새누리당은 서비스산업발전기본법과 기업활력제고법(원샷법), 테러방지법, 노동시장 개선 관련 5법 등 쟁점법안 연내 처리에 목을 매고 있다. 연내 처리가 안 될 경우, 내년 총선을 앞두고 더더욱 법안 처리가 어려워진다는 판단 때문이다.
하지만 정의화 국회의장이 16일 쟁점법안 직권상정 요구를 거부하면서 연내 처리가 불투명해지자, 청와대의 강력한 '비상카드' 즉 긴급 재정경제명령 발동이 거론되고 있다.
□ 대통령 긴급권, 靑은 '조심' 與 '운 띄우기' = 청와대는 공식적으로 부인하고 있지만 내부적으로 조심스럽게 검토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새누리당이 긴급권 '운 띄우기'에 나서고 정 의장을 압박하고 있다.
법안 처리 필요성을 강조하면서 긴급권 발동을 위한 포석을 쌓는 것 아니냐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이인제 최고위원은 이날 "국민의 대표기관인 국회가 이것(직권상정)을 못하면 다음에 기다리는 것은 대통령의 (국가)긴급권 밖에 없다"면서 "며칠 남지 않은 연내 임시국회에서 비상한 마음으로 이 위기 상황을 돌파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무성 대표도 정 의장이 쟁점법안 직권상정을 거부한 뒤 기자들과 만나 '긴급재정경제명령을 검토할 수 있다고 보느냐'는 질문에 "검토해 보겠다"고 힘을 실었다.
□ 정의화, 국회법에 쟁점법안 직권상정 '불가' "靑, 법적근거 달라" = 정 의장이 직권상정을 거부한 이유는 국회법에 의한 직권상정 조건에 해당되지 않기 때문이다.
국회법 85조에 따르면 국회의장은 특정 안건의 직권상정(심사기간 지정)을 할 수 있는 경우는 ▲천재지변 ▲전시·사변 또는 이에 준하는 국가비상사태 ▲의장이 각 교섭단체대표 의원과 합의 등으로 제한적이다.
정 의장은 기자회견을 통해 쟁점법안에 대한 '직권상정' 요구에 대해 "전시사변 또는 이에 준하는 국가비상사태의 경우에 (직권상정이) 가능하다"며 "(하지만) 과연 지금 경제 상황을 그렇게 볼 수 있느냐 하는 것 자체에는 저는 동의할 수 없다"고 거부했다.
정 의장은 "청와대에서 메시지가 왔기에 제가 그렇게 할 수 있는 법적인 근거를 좀 찾아봐달라고 오히려 제가 부탁했다"고 청와대와 여당의 쟁점법안 직권상정 요구가 법적근거가 미비함을 꼬집었다. 특히 현기환 정무수석이 "선거구 획정만 직권상정하는 것은 국회의원들의 밥그릇 챙기기"라고 지적한 것에 대해 "아주 저속하고 합당하지 않다"며 강한 불쾌감을 나타냈다.
정 의장의 거부는 입법부 수장으로서 직권상정을 엄격히 규정한 국회법을 근거로 한 '원칙'을 강조함과 동시에 청와대의 입법부 권한 침해 논란에 대한 강한 반발 성격이 짙다.
◆…박근혜 대통령이 16일 경제관계장관회의를 주재하며 거듭 쟁점법안 처리를 국회에 촉구했다. 정 의장이 쟁점법안 직권상정을 거부하면서 대통령의 '플랜 B'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사진 청와대)
□ 긴급권 요건 엄격, 대통령 입법부 침해 논란…국론분열 자초할 수도 = 문제는 헌법상 긴급명령 발동 요건은 매우 엄격하게 규정되어 있어 발동을 할 경우, 야당과 시민사회 단체의 강력한 반발은 물론 국민적 저항에 직면할 가능성이 크다는 점이다.
국론 분열이 불가피해질 것이라는 지적이다.
1996년 헌법재판소는 헌법 76조에 규정된 대통령의 긴급재정경제명령에 대해 정상적인 재정운영·경제운용이 불가능한 중대한 재정·경제상의 위기가 현실적으로 발생하여 긴급한 조치가 필요함에도 국회의 폐회 등으로 국회의 집회를 기다릴 여유가 없을 때에 한해 최소한으로 필요한 재정·경제상의 처분을 하거나 법률의 효력을 가지는 명령을 발동할 수 있다고 결정했다.
긴급재정경제명령·처분은 국민의 경제적 생활에 관련된 기본권을 제한할 수 있으나 국회에 보고해 승인을 얻어야 하며, 승인을 얻지 못하면 즉시 효력을 상실한다.
가장 최근의 긴급명령은 김영삼 전 대통령의 금융실명제 실시였다. 긴급명령이 발동되면 국회는 곧바로 이를 찬반에 부치는 절차를 밟아야 한다. 만약 박 대통령이 긴급권을 발동하면 대통령에 의한 쟁점법안 직권상정이 된다.
한 야권 관계자는 17일 "이미 국회로 넘어온 법안에 대해 긴급명령권을 발동할 수 있느냐"면서 "그건 대통령이 입법부(국회)를 무시하는 것을 넘어서 헌정질서 유린이다. 국민적 저항도 만만치 않아 쉽게 하지 못할 것"이라고 말했다.
□ 총선 앞 긴급권 '무리수' 우려 …與, 정 의장 '해임결의안' 전방위 압박 = 긴급명령권 발동이 자칫 총선을 앞둔 시점에서 '무리수'가 될 수 있다는 지적이 여권 일각에서도 감지된다.
특히 정부여당이 주장하는 노동개혁 관련 5법은 노동계가 강력 반발하고 있는 사안으로 이를 무리하게 처리할 경우, 1996년 김영삼 정부 노동법 '날치기' 후 임기 말까지 휘청거렸던 전처를 밟을 수 있다는 지적이다.
1996년 12월 김영삼 정부 당시 여당이던 신한국당은 정리해고제, 근로자파견제, 대체근로제 도입을 골자로 한 노동법 개정안을 새벽에 '날치기 통과'를 시켰고 이에 야당과 노동계는 강하게 반발했다. 노동계는 30만명 규모의 총파업을 1997년까지 이어가면서 극렬한 국론분열을 야기했다.
이에 새누리당은 긴급권 발동 운을 띄우면서도 정 의장을 향한 전방위 압박수위를 높이고 있다. 야당의 분열 사태로 인한 정상적인 원내 협상이 불가능한 점과 대내외 상황이 '비상사태'라고 주장, 정 의장에게 '직권상정 요구 결의문'을 전달하는 등 거듭 촉구하고 있다.
심지어 친박계인 이장우 대변인은 국회의장 해임결의안까지 거론했다.
그는 전날 KBS 라디오에 출연해 "12월31일까지 선거구 획정에 합의를 못하면 선거구가 무효로 돼 혼란은 걷잡을 수 없게 되는 헌정비상상태"라면서 "만약 직권상정을 하지 않는다면 해임결의안을 낼 수도 있다"고 압박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