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당국이 건설 · 조선업 등 수주산업에 대한 공시의무를 대폭 강화한데다 한국공인회계사회도 '외부감사 특별 실무지침'을 제정함에 따라 수주산업 회계투명성 제고를 위한 대책이 일단 마무리됐다.
금융위원회는 지난 27일 수주산업의 분식회계로 인한 투자자 피해를 막기 위해 K-IFRS(한국채택국제회계기준) 및 일반기업회계기준서 변경안을 의결했다. 이어 한국공인회계사회는 28일 수주산업 회계투명성 제고를 위한 '수주산업 외부감사 특별 실무지침'을 발표했다.
금융감독원과 회계사회 관계자는 "수주산업에서 장부상 이익이 돌연 대규모 손실로 전환되는 '회계절벽' 현상이 잦아 대응책 마련이 절실했다"며 "금융당국과 회계사회가 각각 내놓은 방안으로 수주산업 회계정보에 대한 시장불신이 해소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회계전문가들은 "개별 사업별 또는 사업부문별 진행률 · 미청구공사 · 미수금 등을 공시하도록 의무화한 것과 회계사회가 실무지침을 제정한 것은 진일보한 성과"라고 평가하면서도 "개별 사업별 공시에 예외를 둔 것은 효과를 반감시킬 수 있다"고 우려했다.
□ 회계사회, 수주산업 실무지침은 사실상 핵심감사제 기능
금융당국의 이번 조치로 건설 · 조선 기업들은 올해 1월 1일 이후 최초로 시작되는 회계연도부터 개별 공사별 또는 사업부문별로 진행률 · 미청구공사 · 공사미수금 등을 주석으로 공시해야 한다. 종전에는 회사 전체의 공사원가 · 공사수익 · 미청구공사 등의 합계만을 공시해 경영부실을 감추기 쉬웠으나 공시내용을 세분화함에 따라 회계투명성이 그만큼 높아지게 됐다.
금융당국은 개별 공사별 공시는 계약금액이 직전 회계연도 매출액의 5% 이상인 '원가기준 투입법' 적용 건설계약에 한해 적용키로 했다. 개별 공사별 공시는 수주산업 특유의 회계추정 및 잠재리스크 정보를 덩어리가 아닌 개별 사업별로 구분해 보여줘 투자자의 합리적판단에 도움을 주기 위해 마련됐다.
하지만 사업원가 노출로 기업의 영업비밀이 유출될 우려가 있는 항목의 경우 사업부문별로 합산해 공시할 수 있도록 허용해 개별 공사별 공시의 효과가 반감될 수 있다는 지적이 일고 있다.
금융당국의 이번 조치와 함께 한국공인회계사회는 핵심감사제(KAM)를 우리나라 실정에 맞게 변형시켜 수주산업 재무제표 감사에 우선도입키로 결정했다. 핵심감사제는 외부감사인이 피감사기업의 핵심적 재무정보나 위험정보를 감사보고서에 서술형태로 별도 기재하는 제도이다.
회계사회의 실무지침에 따라 수주산업 기업들은 앞으로 핵심감사항목을 반드시 선정해 외부감사인으로 하여금, 감사보고서 강조사항 문단에 각각의 핵심감사항목을 기술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관련법령에서 공시를 배제하는 등의 특정사항 발생시, 핵심감사항목에 대한 기재의무가 배제된다. 핵심감사항목의 기재가 필요없다고 여겨질 때에는 기재사항이 없다는 사실을 감사보고서에 기술하도록 했다.
현재의 감사보고서에는 적정 · 한정 · 부적정 · 의견거절 등 단문형 의견만이 표기되고 있어 감사보고서의 정보적 효용가치가 크지 않다는 지적이 그간 수차례 제기돼 왔다.
이번 실무지침이 실행되면 외부감사인이 핵심감사항목에 대해 구체적인 감사의견을 서술하는 과정에서 회계투명성이 제고될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 수주산업계 영업기밀 유출 우려에 예외 인정
건설 · 조선업계는 그동안 개별 사업별로 진행률 · 미청구공사 · 공사미수금 등이 공시되면 영업기밀 유출 등이 우려된다며 반발해왔다.
이에 금융당국은 업계 우려사항을 반영해 개별 공사별로 주석공시할 경우 원가노출의 우려가 있는 공사예정원가 변동금액 등은 예외적으로 영업부문별로 합계액만을 공시할 것을 주문했다.
또 군사기밀보호법 등 관련법령에서 비밀 · 비공개 사항으로 규정한 경우, 계약 당사자 간 비밀 · 비공개 사항으로 규정하고 해당항목의 일부나 전부를 공시하면 기업에 현저한 손실을 초래할 가능성이 높은 경우에도 영업부문별로 합계액만을 공시할 수 있도록 조치했다.
다만 일각에서는 금융당국이 이같은 예외사항의 남용을 억제키 위해 마련한 제도적 장치의 구체성이 불명확해 남용될 수 있다며 비판이 일고 있다. 예외를 적용할 통로가 마련된 이상 기업들이 이를 적극 활용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이와 관련 "기업이 영업부문별로 합계액만을 공시하기 위해서는 객관적 근거를 제시해야 하고 내부통제의 절차를 거쳐야 한다"며 "공시예외 조항이 타당한 근거 없이 함부로 적용되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설명했다
□ 금융당국 · 회계사회 "수주산업 회계투명성 제고" 장미빛 전망
금융당국과 회계사회는 일련의 조치가 "장기적으로 수주산업 회계정보에 대한 시장의 불신을 해소하는 데 기여할 것"이라고 기대했다.
금감원 관계자는 "수주산업계 회계정보를 개별 공사별로 상세히 공시함으로써 그간 합리적 투자판단을 저해했던 정보의 비대칭성 문제를 완화할 수 있게 됐다"며 "투자자 보호는 더욱 강해질 것이며 기업은 자의적 회계처리를 지양하게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회계사회 관계자는 "외부감사인은 핵심감사항목에 대해 전문가적 견지로 적절성을 검증하고 핵심감사결과를 감사보고서에 상세히 기술하게 될 것"이라며 "수주산업의 회계투명성이 제고되고 투자자들의 합리적 투자판단에 좋은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예상했다.
한편 금융감독원은 한국회계기준원과 함께 지속적인 교육을 실시하고 앞으로의 감리과정에서 이행여부 등을 점검할 계획이다. 한국공인회계사회는 수주산업 회계투명성 제고방안에 대해 외부감사인, 기업 재무담당자를 대상으로 금융감독원 · 한국회계기준원과 다음달부터 공동설명회를 열 계획이다.
□ 수주산업계, "최악은 면했지만 여전히 부담스러워"
수주산업 관계자들은 제도개선에 따른 부담을 느끼면서도 안도하는 분위기다.
건설업계 관계자는 "수주산업계의 고충이 정책에 대체로 많이 반영돼 최악은 면한 것 같다"는 반응을 보였다.
그는 "일단 추이를 지켜봐야 하겠지만 업계 전반적으로 많이 부담스러워 하고 있다"며 "그럼에도 업계는 바뀐 상황에 점차 적응해 가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금융감독원 관계자는 "수주산업계의 애로사항을 최대한 많이 정책에 반영하고자 했다"며 "이를 통해 수주산업계의 회계투명성이 제고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금융당국과 회계사회의 정책적압박 외에 수주산업계의 자정적 노력이 더해진다면 회계투명성은 조금 더 빨리 제고될 수 있을 것"이라고 곁들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