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편의 '코미디' 같은 인사다."
지난 1일 뚜껑이 열린 조세심판원장(이하 심판원장) 인선 결과를 두고 극악에 가까운 평가가 나오고 있다. 장고 끝에 악수(惡手)를 제대로 두고 말았다는 평가다.
이 인사 한 방으로 '납세자권리구제 기관'으로서 그동안 쌓아온 심판원의 권위는 날개 없는 추락의 길로 접어든 모습이다.
국무총리실은 지난 1일 심화석 조세심판원 상임심판관을 1급(고위공무원 가급)으로 승진시켜 공석 중인 조세심판원장에 앉혔다.
'인물론'의 측면에서 심 심판원장은 해당 직위에 손색이 없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문제는 심판원장이라는 엄중한 자리를 수행하는데 반드시 필요한 '전문성(조세경력)'이 상대적으로 부족하다는 평가에서 비롯되고 있다.
또한 표면적으로 조세심판원 '내부승진'의 형태를 띄고 있지만 실질적으로 국무총리실 출신의 내부승진일 뿐, 심판원 출신의 내부승진은 아니라는 비아냥도 나오고 있다. 이럴 바에는 차라리 애초 유력한 후보로 거론됐던 기재부 출신 인물을 인선했어야 한다는 볼멘 소리까지 나올 정도다.
계속되는 '전문성' 논란…균열 커지는 조세심판원
신임 심화석 심판원장은 국무총리실에서 공직 생활 대부분을 보낸 '총리실맨'.
총리실 근무에 잔뼈가 굵은 만큼 시각이 넓고 조율능력이 뛰어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하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개인의 능력 평가에 불과하다.
심 심판원장은 지난 2014년 1월 상임심판관으로 임명될 때부터 '전문성' 논란의 중심에 서 있었다.
지난 2010년 국무총리실을 떠나 관세청 감사관(개방형 고위공무원 직위)으로 자리를 옮겼던 그는 현행 국세기본법이 정하고 있는 심판원 상임심판관 자격기준(4급 이상으로 조세관련 사무에 3년 이상 근무한 자)을 채우자마자 국무총리실로 돌아와 심판원 상임심판관에 인선됐다.
당시 전문성 시비는 물론 국무총리실이 전형적인 '낙하산 인사'를 했다는 지적이 쏟아졌다.
일각에서는 지난 2008년 조세심판원을 흡수 통합한(2008년 이전 조세심판원은 '국세심판원' 기관명으로 기획재정부(당시 재정경제부) 산하 기관이었다) 국무총리실이 그린 거대한 '심판원 인사 장악 시나리오'의 시발점이라는 괴담(怪談)까지 나왔다.
상황이 오죽했으면 국무총리실이 '심판관 인선의 결격사유가 없다'는 유권해석까지 받아와 논란을 진화하기도 했다. 그런 그가 고작 2년만에 심판원장으로 올라 앉았으니 논란이 불거지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라는 지적이다.
정부 관계자는 "지난 2년 동안 상임심판관으로 일했다는 것이 명분이 될 수는 없다. 국무총리실이 '자기 사람'을 앉히기 위해 두터운 경험을 지니고 있는 인물을 고의적으로 제친 것이나 다름없다. 조세경력이 부족한 사람이 수장이 됐으니 기관의 전문성에도 흠집이 날 수밖에 없다"고 꼬집었다.
건수 기준 1만건(이월사건), 액수 기준 수 조원에 육박하는 납세자들의 조세저항(조세불복)을 처리해 내야 하는 심판원의 업무 특성상 전문성은 두 번 세 번 강조해도 부족함이 없는 것이 사실.
국세기본법이 3년이라는 경력기준을 상징적으로 적용하고 있지만 그동안 심판원을 거쳐간 상임심판관은 물론 조세심판원장들은 적어도 10년 이상의 조세경력을 쌓은 인물로 충당됐다는 사실만 봐도 왜 전문성이 강조되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특히 심판원장의 경우 다른 정부 기관의 기관장들처럼 인사 등 일반적인 운영행정 보다는 각종 심판사건들에 대한 전반적인 파악 및 중대사안에 대한 심판관합동회의 회부여부 결정 등 보다 실무적인 역할을 해야하는 측면이 강하다.
이 때문에 잘못된 심판 결정을 최소화하고 원활한 심판원 운영을 담보하기 위해서는 보다 심판원장에 대한 보다 냉정한 전문성 잣대를 들이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정부 관계자는 "심 심판원장이 행정고시 33회 출신으로 나이도 무척 젊다(1966년 출생). 타 부처에 비해 승진이 빠른 국무총리실의 특성이 그대로 반영된 인사나 다름없다"며 "더 풍부한 경력을 보유하고 있는 내부승진 후보자를 제쳐두고 국무총리실 '성골' 출신인 그를 앉힌 것은 두고 두고 뒷말이 나올 수밖에 없는 대목"이라고 촌평했다.
외부 조세전문가들 사이에서도 이번 인사를 둘러싼 혹평이 쏟아지고 있다.
세무대리 업계의 한 관계자는 "심판원 조직의 특성상 원장은 조직운영자가 아닌 심판결정자 역할이 더 중요하다"며 "심판원장이 전문성이 없으면 심판부 등의 결정에 잘잘못이 있는지를 가려내기 힘들 수밖에 없다. 이렇게 되면 부실심판이 양산될 수도 있다"고 말했다.
홍기용 인천대 교수는 "조세경력자들이 기재부 세제실과 국세청 등에 포진하고 있는 상황에서 이들의 정책이나 과세행정에 반하는 결정을 내릴 때가 많은 심판원에 조세경력이 많지 않은 사람들이 자리잡는 것은 모양새가 좋지 않다"고 말했다.
홍 교수는 이어 "국무총리실이 심판원을 제대로 운영하기 위해서는 인력들의 조세경력 관리를 중간 간부시절부터 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며 "심판관도 조세 경력이 3년이 필요한만큼, 심판원장 경력은 5년 이상으로 상향조정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