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증책임 부여로 회계법인의 소송패소율 높아질 가능성
140개 법인 중 28개만 손해배상보험 가입…위험에 취약
금융당국이 회계감사에 실패한 회계법인의 대표를 제재할 경우 소송에서 현저하게 불리한 위치에 놓여 각종 소송이 악용되거나 남발될 수 있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회계업계는 소송에 대비하지 못한 일부 중소·중견회계법인의 경우 소송에 휘말릴 경우 존폐의 위기에 몰릴 수 있다며 걱정하고 있다.
회계업계 관계자는 "감사실패로 인해 회계법인의 대표가 제재를 받게 되면 가장 두려운 것은 각종 소송이 난무할 수 있다는 점"이라며 "회계법인의 대표가 징계를 받은 사실 그 자체만으로 소송에서 불리해 질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회계법인 대표가 징계받은 사실은 소송을 부추기는 요인이 되고 소송에서도 불리한 요소로 작용해 패소율은 당연히 높아질 것"이라며 "패소로 인한 비용을 부담할 수 없는 법인들의 경우 존폐의 위기에 몰릴 수도 있다"고 덧붙였다.
금감원에 따르면 지난 3년간 소액주주, 채권자 등이 감사업무 부실 등을 사유로 제기한 소송은 총 36건이며 이 중 12건이 회계법인 일부패소 등의 손해배상책임 판결을 받았다.
최근 들어 집단소송에 대한 인식이 높아져 소송건수가 늘고있는 가운데 회계법인 대표가 금융당국으로부터 징계를 받으면 34% 수준인 회계법인 소송패소율은 더 높아질 수 있다는 전망이 우세하다.
대형법무법인 소속의 한 변호사는 "회계법인의 대표가 금융당국으로부터 징계를 받았다는 사실만으로 패소율이 올라갈 법적근거는 없다"면서도 "회계법인 대표에 대한 징계사실이 상징적 의미로 받아들여져, 재판부 입장에선 당해 회계법인이 고의로 감사기업의 분식회계 행위에 가담한 것으로 볼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그는 "이 경우 회계법인의 고의가 아니라는 사실을 회계법인 스스로 입증해야 할 것"이라며 "고의가 아님을 입증해내기 쉽지 않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는 대표가 제재받은 회계법인이 패소할 확률이 높아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한 가운데 빅4를 포함한 총 140여개의 회계법인 중 28군데만이 손해배상책임보험에 가입돼 있어 업계가 손해배상 위험에 취약하다는 사실도 문제이다.
각종 소송에 대비한 손해배상책임 준비재원은 손해배상준비금, 손해배상공동기금, 손해배상책임보험으로 이뤄진다. 회계법인 대부분 사내에 각자 유보하는 손해배상준비금과 한국공인회계사회가 운영하는 손해배상공동기금에 의존하고 있다.
외감법에 따르면 회계법인은 회계사회가 운영하는 손해배상공동기금을 통해 손해배상책임 재원을 준비해야 한다. 다만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배상책임보험에 가입한 경우에는 손해배상공동기금에 비용을 쏟지 않아도 된다.
이에 빅4를 비롯한 일정규모 이상의 법인들은 손해배상공동기금 대신 손해배상책임보험으로 돌아서는 추세다. 손해배상공동기금은 연대책임제이기 때문에 자신이 돈을 내더라도 공동기금에 가입된 타 법인이 손해를 입을시 돈을 타갈 수 있기 때문이다.
회계업계 관계자는 "손해배상공동기금은 손해배상 위험에 취약한 법인들에겐 동아줄과도 같다"며 "최근 들어 일정규모 이상의 법인들이 손해배상공동기금에서 손을 떼면서 기금의 규모가 좀체 늘지 않고 있다"고 걱정했다.
한국공인회계사회에 따르면 손해배상공동기금은 지난 2012년 385억원에서 3년간 31억원 늘어 416억원에 머물고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