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도 먼 데를 구경했다 자랑하리라”
면암 최익현과 동행하는 아름다운 유배길
억겁의 시간을 지나도 같은 자리에 설 수 있는 인연은 과연 얼마나 될 것인가? 한 시대를 살다간 많은 사람들 그들 중에 꼭 한 번 그 사람을 만나고 싶고 느끼고 싶다면 그가 사색하며 걷던 길을 따라 걸어 보라고 말하고 싶다.
아무도 가지 않은 길을 가는 것은 자신과 또 외로움과의 싸움이다. 하지만 누군가는 그 길을 가야 했고 그 누군가에 의해 우리는 아름다운 길을 따라 갈 수 있는 선물을 받았다. 그 중 제주의 유배길은 나라를 위해 걱정하던 많은 공신들과 유학자들이 걸었던 길이다.
지금 만들어진 제주도의 유배길은 대부분 먼저 유배 온 선현들을 기리기 위해 적거지를 찾아 나섰던 길이거나 유배생활에서 외로움을 달래거나 멀리 있는 가족들을 그리워하면서 사색하던 길을 따라 걷게 만든 곳이기에 걷기도 쉬울 뿐더러 아름다운 이야기가 있는 비경이 곳곳에 숨어 있다.
조선의 마지막 자존심이라고 불리는 학자 면암 최익현. 그가 제주 유배생활 동안 걸었던 발자취를 따라 걸어 보자. 지금의 KBS방송국 건너 안쪽 마을에 있는 연미마을 회관은 최익현과 많은 교류를 했던 이기온이 칠봉서당을 세웠고 최익현과 함께 많은 제자들을 길렀으며 나중에 불타 없어진 후 이기온의 아들 이응호가 문연서당을 세워 그 뜻을 이어갔던 곳이다. 이를 기리기 위해 세웠던 문연사는 사라지고 연미마을 회관에서 마주보이는 작은 골목 안쪽 조설대에 옮겨졌다.
◆…조설대
조설대는 1905년 을사조약 이후 고종황제가 강제로 물러난 것에 항의하던 최익현이 의병장이 되어 싸우다 쓰시마 섬에 유배돼 죽은 후 '조선의 치욕을 설욕한다'는 뜻으로 세워졌다. 1910년 한일 합방 후 제주도 사람들은 비밀 결사조직을 만들어 이곳에 모여 곡을 하고 바위에 조설대라 새겼다고 한다.
숨은 비경 방선문, 4~5월 철쭉은 명품 중 명품
조설대를 지나 걷는 길은 시내 중심에서 멀지 않은 곳이나 아직 나지막한 돌담길에 귤밭도 보인다. 이 길을 빠져 나가면 큰 도로가 보이고 아래 건널목을 건너 바로 골목 뒤편에 민오름길이 나온다. 이곳에 사는 사람들이 즐겨 걷는 산책로이기도 한 민오름은 바로 정상으로 오를 수도 있지만 둘레로 한 바퀴 돌아 걸을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둘레길을 따라 걷다 보면 유배길 표지판이 나온다.
◆…민오름 둘레길
◆…민오름
◆…월정사
표지판을 따라 걷다보면 정실마을 월정사가 보인다. 다시 방선문 가는 길을 찾아 오른 쪽 길로 들어서면 길 건너로 오라 골프장 가는 길이 눈에 들어온다. 제주도에서 두 번째 만들어진 이 골프장은 한라산에서 가장 낮은 곳에 위치해 있다.
골프장을 향해 걷다 보면 좌측으로 방선문 가는 길이 나타난다. 제주도의 숨은 비경이자 최고의 명승지 방선문은 매년 사오월이면 계곡 양쪽에 피는 철쭉꽃이 명품 중에 명품이다. 영구춘화(瀛丘春花)는 제주 12경, 영주10경에 든다.
한라산에서 내려오는 하천의 줄기 중 가장 긴 한천은 아름다운 계곡들이 이어져 있다. 그 중 하나인 방선문은 '신선이 방문하는 문'이라는 뜻으로 지어졌으며 계곡에 큰 바위가 물길을 열고 마치 문을 만들어 놓은 듯하다.
◆…방선문
◆…방선문 계곡
◆…철쭉꽃이 핀 방선문
최익현은 유배 생활에서 풀려나던 날 제일 먼저 한라산을 오르기 위해 방선문을 찾았고 열리지오름을 지나 관음사를 통해 한라산에 올랐다는 기록이 전해져 온다. 바위들로 둘러싼 계곡옆으로 꽃봉오리가 탐스럽게 피어나고 있는 기이한 풍경이라 경치에 흠뻑 취해 조금도 돌아갈 뜻이 없었다고 한다.
오라동 연미마을에서부터 시작해 정실을 지나 방선문까지 걷는 최익현의 유배길은 약 5.5Km정도다. 왕복으로 걸어서 두 시간 정도 소요된다. 시간의 여유가 있다면 방선문을 넘어 오라골프장을 돌아서 열안지 오름까지 걸어봐도 좋다. 걷는 길은 약 6Km, 두 시간이 더 소요된다. 열안지 오름길은 오라골프장에서 운동하는 사람들도 만나게 되고 한라산을 보면서 걷는 길이라 시멘트로 포장이 되어 있어 산길이 아닌 시골 길 같은 느낌이 든다.
◆…거북바위
◆…오라숲길
돌아오는 길은 오라 숲길 추천할 만
다시 돌아오는 길은 방선문에서 오라 숲길을 걸어보라 추천하고 싶다. 방선문 계곡을 따라 걷는 길은 오롯이 숲과 계곡의 속삭임이 함께 한다. 숲의 향기와 물소리를 들으며 걷는 길은 그야말로 힐링이다. 도심에서 받았던 스트레스가 한번에 날아가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중간중간 만나는 기이한 바위들을 작품 보듯 한 번씩 감상하며 걸으면 피곤함이 느껴지지 않는다. 하지만 늦은 시간 여자 혼자 걷는 것은 권하고 싶지 않다.
계곡을 따라 계속 걷다보면 제주아트센터와 한라도서관이 보인다. 그길로 올라와 숲에서 차를 한잔 마시고 잠시 쉬었다 걷는 것도 좋다.
열안지 오름까지 오른다고 생각하면 배낭에 먹을 것과 마실 것을 넉넉히 챙겨야 한다. 중간에 점심을 먹고 오른다고 해도 세 시간은 족히 더 걸어야하기에 간식거리가 충분히 있어야 할 것이다.
◆…한라도서관
◆…보리밭 언덕
한라도서관에서 다시 숲길로 들어서면 언덕위에 초록빛이 바람에 나부끼는 보리밭도 보이고 골짜기마다 큰 바위들로 이루어 진 건천을 따라 고지교까지 걸어 나올 수 있다.
면암 최익현의 유배길을 시작으로 오라 숲길로 이어지는 하루의 여행길은 자신을 돌아보고 또 자연의 위대함에 감사할 수 있으며 나라를 잃어버린 아픈 과거를 다시 한 번 들여다 볼 수 있어 좀 더 성숙해지고 가슴이 따뜻해진다.
공항에서 가까운 한라수목원도 한 번쯤 구경할 만하다. 입장료는 무료. 수목원에서 조금만 더 한라산 쪽으로 가면 도립미술관이 있다. 햇살이 좋은 날 물위에 띄운 듯 설계된 건축물과 야외조각품을 감상하다보면 저절로 기분이 좋아진다. 입장료는 특별전이 아니면 1000원이다.
◆…한라수목원을 찾아온 노루
도립미술관 앞길은 신비의 도로로 잘 알려져 있는 구간이 있다. 한라산 때문에 일어나는 착시현상으로 기어를 중립으로 놓은 자동차가 언덕을 올라가는 듯 느껴진다. 제주도는 이런 곳이 여러 군데 있다. 특히 곳곳의 그린에서 이러한 착시현상이 발생해 골퍼들을 놀라게 한다. 하지만 제주도의 지형은 한라산을 중심으로 모두 바다로 향한 내리막이다. 그래서인지 제주도에서는 고산일대를 제외하고는 넓은 평지를 찾기가 어렵다.
발전도 좋지만… 에메랄드 바다와 곶자왈을 지키자
제주도에는 기차가 없다. 다만 연동 한복판에 위치한 삼무공원에 가면 몇 량의 기차를 구경할 수 있다. 언덕 위에 만들어진 삼무공원은 제주의 3무(도둑, 거지, 대문이 없다)를 만끽할 수 있는 정겨운 곳이다.
하지만 현재 요우커들의 쇼핑 천국으로 변해버린 연동 바오젠 거리는 제주도 속 작은 중국과 같은 느낌이어서 도민으로서 그리 달갑지만은 않은 것이 솔직한 심정이다. 밤 문화가 없던 제주도에 새벽까지 영업을 하는 곳이 생겨났으니 말이다.
제주의 최고 번화가인 연동은 하루가 다르게 변화하는 모습이지만 향토 문화 유산의 가치를 깨달은 도민들은 급속한 외형 성장보다는 고유의 보물을 보존하기를 희망하고 있다. 뒤늦게나마 제주의 자연을 지키고 지난 문화 역사를 복원하는 일에 많은 사람들이 함께 하고 있다. 이는 제주로 이주한 많은 문화예술인들의 영향이 컸다고 말할 수 있다.
제주도의 에메랄드 빛 바다와 사람의 숨결이 닿지 않은 곶자왈(열대 북방한계 식물과 한대 남방한계 식물을 품고 있는 세계 유일의 숲)은 세상 어디에도 없는 귀한 보물이다. 이 길을 따라 함께 여행 길에 오른 그대들처럼….
'배지근한 국물 맛' 옥돔지리 드셔 보셨수꽈?
제주 향토음식 중 찌개류는 거의 없다. 밥과 국이 정통 제주 음식문화다, 그래서 바다에서 나는 모든 생선에 된장을 넣어 끓여내는 국과 밭에서 나는 배추와 유채 등 야채에 된장을 끓여 만드는 국, 바다에서 나는 몸과 톳 등 해초류에 돼지 뼈와 살을 우려내 만든 국, 해산물을 된장에 끓여내는 국 등 대부분 된장과 함께 끓여내는 국물이 밥상에 오른다.
그런데 옥돔지리는 제 맛을 내려면 굵게 썬 무에 옥돔 한 마리를 넣고 소금간과 마늘만 넣어 비리지 않게 끓여내야 한다.
1. 옥돔지리가 맛있다고 소문난 어미도식당은 여름 한철음식인 자리물회로도 유명한 집이다.
◆…어미도식당의 옥돔지리
2. 같은 체인점이라도 맛이 다른 이유는 주방을 책임지고 있는 사람의 손맛 차이라고 한다. 연동의 김명자굴국밥집은 점심 시간이면 자리가 없을 정도로 복잡하다. 직장인들과 등산객들이 자주 찾는 집이다. 굴이 탱글탱글 살아있고 제주 무의 깍두기 맛이 절묘하게 어울리는 굴국밥을 일년 내내 먹을 수 있다.
◆…김명자 굴국밥
3. 천연양념의 제주 흙돼지갈비를 숯불에 구워 비빔냉면과 함께 먹는 맛은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누구나 좋아한다. 포도원흑돼지식당은 가족 단위로 많이 가는 곳이라 저녁 시간이면 예약을 하지 않고 먹을 수가 없다. 양념 갈비가 먹고 싶은 날은 이곳으로 발길을 옮긴다.
4. 제주향토음식점 중 시골 할머니가 해주시는 밥상 같다고 말하는 두루두루식당은 객주리조림과 제철 자연산 회를 함께 맛볼 수 있는 곳이다. 함께 나오는 밑반찬이 제주도 식이라는 것, 계란 부침, 제철 나물무침, 콩국 등 제주의 음식 맛을 제대로 맛볼 수 있다. 저녁 5시부터 영업한다.
5. 제주에서만 맛볼 수 있는 요리 중 하나가 돼지고기 샤브샤브다. 돈가식당은 제주도식의 배추와 부추 그리고 숙주나물과 돼지고기를 함께 즉석에서 끓여 양념장에 찍어 먹는다. 담백한 돼지고기 맛을 느낄 수 있다.
6. 제주에서 맛볼 수 있는 사찰 음식점은 많지가 않다. 한천 하류에 제주의 고목으로 지은 아담한 식당 다소니는 김치도 소금만을 넣어 간을 한다. 제주에서 재배한 메밀로 만든 메밀국수와 메밀수제비 연잎밥 등 많지 않은 메뉴지만 정성들여 차려온 밥상과 실내 분위기에 기분이 좋아지는 곳이다. 식사 후 나오는 메밀 차는 제주의 구수한 맛이다.
◆…다소니의 음식들
7. 고등어 해장국으로 유명한 성미식당은 간장게장이 밑반찬으로 나와 더욱 유명하다. 고등어살을 발려내서 추어탕 같이 끓여 나오는 맛이 일품이다. 이곳에서는 김치찌개 맛으로도 유명하다. 소박한 메뉴지만 결코 범상치 않게 차려나오는 전라도 식 식단으로 유명하다.
◆…성미식당 고등어 해장국
이경화 칼럼니스트(제주시대 발행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