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 클립아트코리아.
연간 2000만원 이하의 주택임대수익을 벌어들이고 있는 집주인들의 소득에 대한 과세가 '성역(聖域)화' 되어가고 있는 모습이다. 변죽만 잔뜩 울리고, 실제로는 아무런 행동도 하지 않는 정부의 이중적 태도에 대한 비난 여론이 높게 형성되고 있다.
정부는 지난 2014년 소액 주택 임대소득에 대한 과세제도를 도입한 후 3년 유예기간을 설정했다. 내년부터 유예기간이 종료, 과세제도가 작동을 앞두고 있는 상황에서 또 다시 2년 유예(2018년 시행) 방안을 꺼내놓았다.
이처럼 정부가 소액 임대소득자들에 대한 과세권 행사에 소극적인 태도로 돌변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세금 보다 무서운 '건강보험료' 문제가 도사리고 있기 때문이라는 설명.
사실 임대소득에 대한 과세권이 발동되더라도 집주인들의 세부담은 크지 않다는 것이 중론.
누진종합과세가 아닌 분리과세가 적용, 단일세율(14%)로 과세되기 때문이다. 분리과세를 했을 땐 임대소득의 60%는 집수리·유지에 따른 '필요경비'로 과세금액에서 제외하고, 추가로 기본공제에 따른 400만원이 추가로 과세 대상에서 빠져 사실상 부담할 세액은 미미하다는 것이다.
정부, 3년 동안 대체 뭐했나
문제는 '건강보험료'.
그동안 소액 임대소득을 올리는 집주인들은 신고 소득이 없기 때문에 직장에 다니는 자녀 등의 건강보험에 피부양자로 등재, 건보료를 한 푼도 내지 않았다. 그러나 과세권이 발동되면 지역가입자(직장근로자 이외의 자)로 분류되어 건보료를 부담하게 된다.
총급여 기준으로 건보료가 부과되는 직장가입자(직장근로자)와 달리 지역가입자의 경우 소득, 재산, 자동차 등의 등급별 점수를 합산해 부과되므로 건보료 부담이 늘어나게 되는 것이다. 정부는 이를 고려해 과세권 발동 시한을 뒤로 미루고 해결책을 찾겠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정부의 말을 믿는 이들은 극히 드물다.
3년 유예 결정 당시에도 건보료 부과체계 정비를 통한 해결책을 마련하겠다는 방침을 밝혔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지난 3년 동안 정부는 아무것도 안 했다는 인식만 심어준 채 임대소득을 과세사각지대에 남겨두는 빌미를 스스로 제공한 셈이다.
정부 관계자는 "임대소득 비과세 적용기한을 연장하는 부분에서 건보료 부과체계가 차지하는 비중이 매우 컸다"며 "건보료 부과체계가 개선되지 않은 이상 집주인들의 반발 때문에 과세권 행사를 하겠다고 나서기 힘든 상황"이라고 말했다.
이에 일각에서는 연 2000만원 이하의 임대소득에 대해서는 건보료를 물리지 않도록 해야 한다며 목소리를 내고 있다. 하지만 영세 자영업자는 소득이 달랑 1만원만 있어도 건보료를 내는데, 연 2000만원의 임대소득에 건보료를 물리지 않는 것은 형평에 맞지 않다는 지적도 적지 않다.
◆…더불어민주당은 지난 2일 소액 임대소득에 대해 과세하는 내용을 담은 세법개정안을 발표했다. 사진 왼쪽부터 박광온 기획재정위 더민주 간사, 변재일 정책위의장, 최운열 정책위 부의장.
형평성 논란 여전히 '불쏘시개'
정치권을 중심으로 소액 임대소득자들에게 세금을 내년부터 물리도록 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현재 높게 형성되어 있다. 주택 임대소득이 지하경제의 상당분을 차지하고 있다는 이유가 배경에 깔려 있는 모습이다.
더불어민주당은 지난 2일 자체 세법개정안을 발표, 2주택 이상 2000만원 이상의 임대소득에 대해 14%의 분리세율(기초공제 400만원, 필요경비율 60%)로 2017년부터 세금을 부과하도록 했다. 이는 2014년 정부와 여·야간 합의한 내용이다. 더민주는 이 개정안을 통해 "주택 임대소득 과세제도 유예는 제도 도입의 본래 취지에 어긋남에 따라 원칙대로 시행해야 한다"고 밝혔다.
문제는 소액 임대소득자들에게 세금을 물린다고 해도 과세 형평성 논란은 식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국회 입법조사처는 최근 발표한 '주택임대소득 과세제도에 대한 쟁점과 향후과제'라는 보고서를 통해 "연 2000만원 이하의 소규모 주택임대소득에 분리과세를 적용해 세부담을 줄여준 것은 소득세의 과세체계를 복잡하게 만들고 있다"고 지적했다.
특히 종합소득이 있는 주택임대소득자의 경우 세부담이 크게 감소함에 따라 소규모 주택임대사업자와 조세형평성이 균형을 잃을 수 있다.
가령, 8000만원의 근로소득이나 다른 사업소득이 있는 거주자(적용 세율 24% 가정)가 2000만원의 주택임대소득이 있다고 치자. 이 경우 종합과세를 적용하면 264만원의 소득세를 추가로 부담해야 한다. 그러나 분리과세를 적용하면 납부할 소득세액이 112만원으로 절반 이상 줄어들게 된다.
전문가들도 소액 임대소득에 대한 과세를 유예한 조치는 공평과세를 훼손시킨다는 비판을 하고 있다. 더욱이 집주인들의 소득에 대한 과세가 세입자들에게 전가될 수 있다는 정부의 주장도 틀렸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김유찬 홍익대 교수는 "임대소득에 대한 비과세를 연장하는 내용(세법개정안)은 매우 심각한 공평과세의 문제를 내포한다"고 꼬집었다.
김 교수는 이어 "정부는 임대소득의 과세가 임차인의 월세인상으로 전가될 수 있다는 잘못된 판단에 근거해 과세를 또 다시 미루고 있다"며 "그러나 임대주택 공급은 단기적으로 고정되어 있기 때문에 월세에 대한 과세가 임차인에게 전가될 가능성은 없다고 보는 것이 맞다"고 밝혔다.
반면 2000만원 이하 근로소득자의 대부분 '면세근로자'라는 이유로 과세형평성에 크게 문제되지 않는다는 주장도 나온다.
정지선 서울시립대 교수는 "2000만원 이하의 임대소득자에게 소득세 과세를 유예하게 되면 근로소득자와의 과세형평을 침해한다는 의견이 있는데, 급여 2000만원 이하 근로소득자들은 실질적으로는 소득세를 내지 않기 때문에 과세형평을 침해하지는 않을 것으로 생각된다"고 밝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