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일 열린 한국관세사회 창립 40주년 기념식에 참석한 관세사들. 이날 안치성 관세사회장은 회원간 갈등 해소를 산적한 과제 중 하나로 꼽으며 가격경쟁에 대한 관세사들의 자발적인 인식 변화를 촉구했다.
기업들의 과도한 가격경쟁 유도로 인해 관세사들의 시름이 날로 깊어지고 있다.
관세사들의 주수입원인 통관수수료, 컨설팅 비용 등이 사실상 '최저가격입찰' 방식으로 정해지는 패턴이 시장에 주류로 자리잡아가면서 관세사들 스스로 '제살깎아 먹기' 경쟁을 할 수 밖에 없는 처지에 내몰리고 있다.
기왕이면 낮은 가격으로 서비스를 이용하고 싶어하는 것은 당연한 시장 논리지만, 가격경쟁으로 인해 서비스의 질이 낮아지고 결과적으로 관세사의 존재 이유인 통관 질서 유지도 삐걱댈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 관세사 업계 곳곳에서 제기되고 있는 상황이다.
관세사업계에 따르면 입찰(비딩) 방식으로 통관 및 컨설팅 관세업체를 정하는 경우가 최근 들어 급격하게 증가하는 추세다. 통상 입찰제안은 서비스제안과 가격제안으로 나뉘어 진행되는데, 가격제안 점수가 서비스제안 점수보다 높은 경우가 대부분이다.
엄밀히 따지면 최저 가격을 적어 낸다고 해서 입찰에 반드시 성공하는 최저가격입찰 방식은 아니다. 하지만 60~80% 정도를 가격제안 점수가 차지하고 있는 만큼 입찰 결과는 사실상 가격에 좌지우지 되고 있다는 것이 관세사들의 입장이다.
이름만 들으면 누구나 알만한 국내 굴지의 대기업은 물론, 외국계 기업도 일정 규모 이상인 경우 이 같은 입찰 방식으로 일을 맡길 관세사들을 택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가격경쟁이 계속되면 전체적인 관세 서비스의 수수료가 하락하는 것은 불보듯 뻔한 일.
관세사들은 입찰 방식에 불만을 품고 있지만 거래처를 확보하기 위해 '울며 겨자먹기'식으로 가격경쟁을 할 수 밖에 없다고 토로한다. 더욱이 전반적인 관세사 시장이 위축된 최근의 상황에선 당장 눈앞의 이익을 쫓을 수 밖에 없다는 것이 관세사들의 입장이다.
또한 입찰에 참여하면 보통 기업들은 기존 관세사를 선택해 유지하는 경우가 대부분인데, 이후 기업에서 "입찰 과정에서 다른 관세사는 이 가격을 제시했다"며 기존 관세사를 압박, 결국 수수료율을 깎는 결과를 만들어 내기도 한다는 전언이다.
여기에 더해 '관세사 상시 파견'까지 계약 내용에 넣는 등 기업들의 무리한 요구도 관세사 업계의 부담을 가중시킨다는 것이 관세사들의 주장이다.
한 관세사는 "시장경제 원리에 비춘다면 당연한 결과지만 가격이 낮아지면 서비스 또한 당연히 부실해 질 수 밖에 없다"며 "기업 입장에서도 질 좋은 서비스를 받을 수 없게되고, 이로 인해 또 다른 서비스를 찾게되고, 이 과정에서 다른 관세사는 더 낮은 가격을 제안하는 악순환이 계속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이런 식이면 시장 자체가 불안정 해질 수 있다"며 "전문직의 전문성이 가격으로만 평가되는 원리는 전문직 시장에 맞지 않는 시스템이며 급기야 전문직을 사장시킬 것"이라고 덧붙였다.
다른 관세사는 "기업의 고위 관계자는 정당하게 수수료율을 책정해 좋은 품질의 서비스를 받기 원하지만 실무자들이 가격을 낮추는 등 소위 '장난'을 친다"며 "아무리 자신의 실적을 위해서라지만 도가 지나친 것 아니냐"고 불만을 토로하기도 했다.
더 큰 문제는 관세사 업계의 이 같은 병폐 해소를 위한 대책이 딱히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한국관세사회에서 합리적 통관보수료를 책자로 만들어 배포하는 등 관세사 업계의 상생협력 방안을 추진하고 있지만 이는 단순한 권고사항일 뿐, 기업과 관세사의 인식 변화가 이루어지지 않으면 그 어떤 대책도 '무용지물'이라는 것이 관세사 업계의 설명이다.
한 관세사는 "정책적인 대안을 마련해 해결하기는 어려운 부분이라 생각한다"며 "기업과 관세사의 인식변화를 통한 방법 밖에 없다. 기업은 정당한 서비스를 정당한 대가지불을 통해 받고 관세사는 출혈경쟁을 자제하고 실력으로 경쟁하는 분위기가 만들어 져야 한다"고 말했다.
또 다른 관세사 역시 "사실상 법이나 제도로는 대안이 없다"고 언급한 뒤 "외국계 회사는 최저가격을 제시한 관세사를 입찰에서 아웃을 시키거나, 덤핑방지 협약을 할 때 확실한 근거가 없으면 사실상 입찰을 못하게 하는 조항을 내걸기도 한다. 앞으로 그런 문화들이 기업 전반에 확산될 수 있도록 협회차원에서 작업을 진행해야하지 않을까 싶다"고 말했다.
일각에선 입찰에 대한 가이드라인을 만들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한 관세사는 "서비스제안 점수와 가격제안 점수의 평가 비율이 7:3정도로 지정되는 입찰 가이드라인이 있어야 한다"며 "공정거래위원회에서 입찰 가이드라인을 만들어 대형 수출입업체가 가격경쟁입찰이라는 '갑의 횡포'를 부리지 못하도록 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