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어갈때는 자유, 인용받아 나올 때는? = 조세심판원이 조세불복에서 납세자의 손을 들어줘도(인용) 국세청이 재심을 요구할 수 있도록 허용하는 법안이 국회에 제출됐다. 법안을 발의한 새누리당 추경호 의원은 청구세액이 큰 사건의 경우 한 번 더 심사숙고하자는 취지에서 법안을 제출했다고 밝혔지만 일각에선 조세심판원의 심판결정 독립성을 해치는 것은 물론, 납세자의 부담을 가중시키는 법이라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는 상황이다.
새누리당 추경호 의원이 최근 대표발의한 국세기본법 개정안을 둘러싼 '후폭풍'이 만만치 않다.
법안이 담고 있는 내용의 실효성도 실효성이지만 법안 발의 배경에 대한 의심의 목소리까지 나오는 등 과장 조금 보태, 그야말로 온통 '벌집'이 됐다.
법안이야 별 타당성이 없으면 국회 논의 과정에서 묻어버리면 그만이다.
하지만 이 법안은 그동안 국세청과 조세심판원 사이에서 조금씩 곪아왔던 부분을 한 방에 터뜨리는 '기폭제'가 된 모양새다. 일각에서는 두 기관이 자신들의 '권한'을 지키기 위해 납세자들을 볼모로 쓸데없는 다툼을 벌이는 것 아니겠냐는 엄혹한 평가까지 흘러나오고 있다.
추경호發 국세기본법 개정안, 내용이 뭐길래?
추 의원이 제출한 국세기본법 개정안의 주요 골자는 조세심판원이 조세심판관회의를 통해 인용(납세자 승소) 결정한 조세불복사건에 대해 과세관청이 재심을 요구할 수 있도록 한다는 것이다.
구체적으로 인용 결정된 사안에 대해 과세관청이 일정기간내에(심판결정서를 송달받은 날부터 2주 이내) 재의를 요구하면 조세심판원은 30일 내에 '조세심판관합동회의'를 열어 사건을 재심의 해야 한다는 것이다.
다만 재의 요구가 가능한 사건에 대한 몇가지 '조건'이 붙었다.
구체적으로 ▲법원판결, 기재부 예규와 배치되는 경우 ▲새로운 법령해석에 대한 내용으로 법원판결을 받아 볼 필요가 있는 경우 ▲일정금액 이상의 사건으로 국세행정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는 경우 등으로 규정했다.
현재 조세심판원이 조세불복사건에 대해 청구인(납세자) 의견을 받아들여 인용 결정(과세관청 패소)을 내리면 법원 등 사법심으로 가지 않고 그대로 종결된다. 국세청은 조세심판결정에 따라 납세자에 부과했던 세금을 전액 환급해야 한다.
행정심판전치주의에 의해 사법심으로 가기 위해서는 반드시 조세심판원 심판청구(또는 감사원, 국세청 심사청구)를 거쳐야 하는 현행 구조상, 심판청구 및 심사청구 단계에서 과세당국의 과세가 잘못됐다 판단될 경우 곧바로 납세자의 권리를 회복시켜줄 수 있도록 조세심판원 심판결정의 독립성을 법적으로 보장해 주고 있는 것이다.
문제는 이 법안이 재의권을 부여하는 심판결정의 범위다.
현행 법상 납세자가 부당한 과세를 당했을 경우 국세청(심사청구) 또는 감사원(심사청구), 조세심판원(심판청구) 등 3가지 루트 중 1가지 루트를 선택해 억울함을 다투어볼 수 있다.
상대적으로 '인기'가 있는, 대부분의 조세불복은 조세심판원으로 향한다. 그런데 해당 법안은 감사원 심사청구 인용시 재의권한 등은 '쏙' 빼고, 조세심판원 심판결정만을 거부권 부여 대상으로 삼는다는 내용을 담았다.
논란이 생기지 않을래야 안 생길 수 없는 대목이다.
◆…'논란의 입법안' = 지난달 28일 새누리당 추경호 의원은 과세관청의 재의요구권 신설하는 내용의 국세기본법 개정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현재 이 법안은 세법을 심의하는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조세소위원회에 상정되어 있다.
국세청-조세심판원 '알력다툼' 표면화?
사실 꽤 오래전부터 국세청과 조세심판원 사이에 보이지 않는 '알력다툼'이 있어왔다. 표면적으로 두 기관이 국장 또는 과장급 인사교류도 하는 등 소통하는 듯한 인상을 보여왔지만 속살을 한 꺼풀 벗겨내보면 상황이 영 딴판이다.
특히 최근 들어 두 기관 사이를 오고가는 세무대리인들 주위에선 "국세청이 너무 막나간다"는 괴담(怪談)이 나돌았다.
특정 사안(세액규모가 상당한)에 대해 사건 담당 심판부가 인용결정을 내릴 기미를 보이면, 국세청 관계자들이 여러 경로를 통해 '기각결정을 내려달라, 법원으로 가서 다툴 수 있도록 도와달라'는 취지의 압박을 가해온다는 것이다.
실제로 심판원 근무 경험을 가진 전직 공직자는 "그 사건(자신이 담당했던)에 대해 왜 인용을 하려 하냐는 식의 전화가 많이 걸려왔다. 솔직히 말해 압박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고 전했다. 세무대리시장 안팎에서는 '그런 경우가 한 두 건이 아니다'라고 조심스럽게 입을 모으고 있다.
국세청 안팎에서도 과세관청과 납세자간 법령해석에 있어서 첨예하게 대립하는 경우라면 조세심판 단계에서 결론을 내리지 말고 대법원까지 끌고 가, 결론을 내릴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의견이 높게 형성되어 왔다.
국세청 관계자는 "법령해석 차이로 발생한 문제라면 더 전문적이고 여러 차례(3심)에 걸쳐 심의해 잘잘못을 가려야 하는 것 아니냐"며 "지금 현재 구조라면 심판원에서 딸랑 인용결정을 내려버리면 국세청 입장에서는 '닭쫓던 개 지붕쳐다보는 격'이 된다"고 말했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국세청에서 심판원으로 교류되어 온 인사를 농담 반 섞어, 국세청 입장만 대변하는 '첩자'라고 부르는(?) 웃지 못할 일도 벌어지고 있다.
이 개정안이 국회에 제출된 이후 세무대리인들 사이에서 "두 기관 사이에 알력다툼이 엉뚱한 방향에서 표면화 된 것"이라며 "해당 법안의 국회 통과 여부와 별개로 현 시스템과 관행을 뜯어고쳐 그동안 세무대리시장에서 우려했던 일들이 척결되는 계기가 됐으면 좋겠다"고 촌평했다.
법안발의 배경도 '의구심' 뭉게뭉게
추 의원의 개정안이 국회에 제출된 과정과 배경에 대한 의구심까지 생겨나고 있다.
지난 4월, 국세청은 기획재정부에 '2016년 세법령 개정건의서'를 제출했다. 이 건의서에는 추 의원이 제출한 국세기본법 개정안과 매우 유사한 내용이 담겨 있었다.
국세청의 건의서와 추 의원이 제출한 개정안의 차이점은 '청구세액' 기준이 있느냐의 여부였다. 추 의원 법안은 '대통령령(시행령)으로 정하는 일정 금액 이상'이라고 명시되어 있으나, 국세청 건의안에는 금액 기준이 없었다.
추 의원실측은 보다 구체적으로 금액 범위를 약 200억원 이상으로 설정해야지 않겠냐는 시각이다.
오히려 국세청 건의서에는 '국세행정에 혼란을 초래하는 심판결정'이라는 무지막지한(?) 내용이 적혀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기재부는 국세청의 건의에 대해 '중장기적으로 검토해야 할 사안'이라며 이를 덮어둔 것으로 전해졌다. 그런데 정기국회 세법심의를 불과 얼마 남겨놓지 않은 시점(10월28일) 갑작스럽게 국세청 건의서에 담겼던 내용과 상당한 '닮은꼴'인 의원입법안이 제출된 것이다.
이로 인해 추 의원실의 순수한 법률 개정의도와 달리 일각에서는 국세청이 입법안 발의권한을 가진 국회의원을 상대로 '입법로비'를 한 것 아니냐는 의심의 눈초리들이 새어나오고 있다.
추 의원실 관계자는 입법취지와 관련해 "조세심판원의 심판결정이 인용으로 나오면 국세청은 항의할 수 없고 끝이 난다. 이런 이유로 대기업이 행정심판 제도를 악용하고 있다"며 "청구세액이 큰 쟁점 있는 사건의 경우 한 번 더 심사숙고하자는 의미가 있다"고 밝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