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이 29일 국정농단 사태와 관련 3차 대국민 담화를 발표했다. (사진 청와대)
탄핵 급물살 타자 '퇴진 논의'로 입장 변화
국회로 공 넘겨 '시간 벌기', 與주장 개헌 논의 꼼수
박근혜 대통령이 결국 스스로 '퇴진'을 입에 올렸다.
하지만 전국에서 한 달 넘게 수십만에서 수백만의 국민들이 모여 '즉각 퇴진'을 외쳤던 '촛불 민심'은 제대로 듣지 못한 모양새다.
특히 박 대통령은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 과정에서도 보여주듯 자신의 퇴진마저 스스로 결정하지 못했다. 자신의 거취 결정을 국회로 넘기면서 결국 야3당과 새누리당 비박계가 움직이고 있는 대통령 탄핵안을 무력화시키기 위한 꼼수 아니냐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 꼭두각시 조롱받던 대통령, 퇴진도 "국회 뜻 따르겠다" = 박 대통령은 29일 3차 대국민 담화문을 통해 "제 대통령직 임기 단축을 포함한 진퇴 문제를 국회의 결정에 맡기겠다"고 밝혔다.
이어 "여야 정치권이 논의하여 국정의 혼란과 공백을 최소화하고, 안정되게 정권을 이양할 수 있는 방안을 만들어 주시면, 그 일정과 법 절차에 따라 대통령직에서 물러나겠다"고 말했다.
박 대통령은 "저는 이제 모든 것을 내려놓았다"고 말했지만 자신의 퇴진을 결정하지 못한 채, 국회로 공을 넘긴 것은 야당이 오는 2일 처리를 목표로 하고 있는 탄핵안에 힘을 빼겠다는 전략으로 분석된다.
박 대통령의 '임기 연장술'이라는 지적이 나오는 것은 박 대통령에 대한 퇴진이 공론화된 것이 어제 오늘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오히려 국민의 비난 여론에 찔끔찔끔 인정하고 다시 거짓말을 반복하며 분노한 민심에 기름 부어왔다.
그런데 이제 와서 퇴진을 언급한 것 자체가 순수하지 못한 의도가 깔린 행보라는 지적이다.
□ 국민 분노 외면하는 대통령, 이번에도 '임기 연장술' = 최순실씨의 개인 일탈이 빚은 국정농단으로만 알았던 국민들은 지난 10월 말 연설문 작성까지 최씨의 손을 거쳤다는 언론보도를 통해 즉각적으로 퇴진을 요구하기 시작했다.
박 대통령이 지난달 25일 1차 대국민 담화문을 통해 연설문 유출을 인정하자, 야당은 공식적으로 '질서 있는 퇴진'을 압박했다. 더욱이 검찰 수사를 통해 드러난 최씨와 안종범 전 정책조정수석 등의 진술에서 국정농단 사태 '몸통'이 박 대통령이라는 사실이 드러났음에도 박 대통령은 책임 국무총리를 내세우며 '김병준 카드'로 국면전환을 시도했다.
이 마저도 여론의 역풍을 맞았고 이후 지난 4일 2차 담화문에서도 검찰 수사와 특검 수사를 성실히 받을 것을 약속했지만 검찰 조사를 거부하면서 이 역시 거짓말로 드러났다. 검찰이 박 대통령을 '피의자', '공범'으로 지목하자, 검찰 수사를 몽땅 부정하기까지 했다.
민심은 더욱 들끓자, 결국 야당은 분노하는 민심을 수용해 '즉각 퇴진'을 요구하면서 동시에 탄핵 준비에 들어갔고 비박계를 설득해 탄핵안 초안과 최종안에 거의 합의한 상태다. 이에 따라 야당은 오는 2일 탄핵안을 가결시키겠다고 압박하면서 거듭 즉각 퇴진을 촉구했다.
이런 상황에서 박 대통령은 즉각 퇴진 요구에 응하는 것이 아닌, 자신의 퇴진 로드맵을 국회로 넘겨버렸다. 즉 국회가 거취 문제를 둘러싸고 갈피를 잡는데 소요되는 시간 동안 여당 뒤에 숨어 권좌를 유지하는, 전형적인 '시간 벌기'에 불과하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 탄핵 가결 가능성 높아지자, 입장 돌변 = 정치권 한 관계자는 조세일보(www.joseilbo.com)와의 통화에서 "국회에서 논의하는 질서 있는 퇴진은 이미 물 건너 간지 오래"라며 "그 이야기는 이미 한 달 전 상황인데 이제 와서 국회로 공을 넘기는 것은 당장 탄핵될 것 같으니 그 마저도 어떻게 연장해보겠다는 의도에 불과하다"고 일침을 가했다.
그는 "처음에 질서 있는 퇴진 목소리가 나올 때 박 대통령과 청와대가 어떤 반응을 보였나. 친박도 마찬가지로 '탄핵하려면 해라'라고 하지 않았느냐"며 "분노한 민심을 외면하고 계속 버티다가 비박계마저 돌아서 탄핵하려고 하니 이제야 질서 있는 퇴진 이야기를 하는 것은 결국 여당 뒤에 숨어 자신의 임기를 하루라도 버티겠다는 술책에 불과하다"고 비난했다.
또한 앞서 '탄핵하려면 탄핵하라'고 외쳤던 청와대가 들끓는 민심이 식을 줄 모르고 탄핵안 가결이 기정사실화 되는데다 헌법재판소 역시 도도한 민심을 거스를 수 없을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해지자, '질서 있는 퇴진'쪽으로 입장이 변한 것으로 보인다.
친박계 중진들의 '명예퇴진 건의' 역시 같은 맥락이다.
◆…박근혜 대통령이 29일 3차 대국민 담화를 발표했다 (사진 YTN화면 캡쳐)
□ 시간 끌며 與개헌 주장, 새누리당 '정권연장의 꿈' = 이는 결국 국회가 퇴진 논의를 하는 동안 차기 정부를 최대한 자신들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이끌겠다는 의도 역시 숨어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새누리당의 생존과도 직결된다.
탄핵이 되고 차기 정부가 야당으로 넘어갈 경우, 박 대통령의 안위는 보장받을 수 없다.
이미 드러난 국정농단 사태의 '피의자'로서 범죄 형량이 최대 무기징역까지 나오는 상황인 만큼 최대한 후일을 걱정하지 않을 수 없는 형편이다. 때문에 탄핵보다 시간을 끌 수 있는 것이 국회 논의에 의한 퇴진이라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면서 새누리당이 주장하는 의원내각제 혹은 이원집정부제 개헌주장의 물꼬를 트게 하려는 의도 역시 엿보인다.
당장 정의당 노회찬 원내대표는 자신의 페이스북에 "새누리당 탄핵대오를 교란하고 개헌 논란으로 야권을 분열시키려는 술책"이라고 비난했다.
새누리당은 제왕적 대통령제를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의 원인으로 지목하면서 개헌을 주장해오고 있다. 집권여당으로서 박근혜정부와 운명공동체적임에도 이에 대한 통렬한 반성과 성찰은 뒤로 한 채 개헌만이 모든 것을 해결해 줄 것처럼 주장하고 있다.
박 대통령이 당장 퇴진하거나 하야, 혹은 탄핵을 당할 경우 조기대선을 치를 수밖에 없는 상황은 뚜렷한 대선주자가 없는 새누리당 입장에선 가장 최악의 시나리오가 된다.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에 한 때 기대를 가졌지만 반 총장의 유엔 사무총장으로서의 세계적 평가가 최악이고 박 대통령이 밀고 있는 대선 후보라는 말들이 퍼지면서 주가가 떨어진지 오래다.
때문에 새누리당 입장에서는 의원내각제 개헌으로 정권을 연장해야 한다는 기류가 강하다.
의석수가 많은 정당에서 총리를 뽑는 의원내각제는 일본 자민당이 50년 이상 장기집권을 할 수 있게 해주는 정치체제다. 김무성 전 대표가 "정권 넘어가는 것은 못 본다"며 친박과 친문을 제외한 이들과의 연대를 밝힌 것도 의원내각제 개헌을 통한 정권연장의 꿈을 드러낸 것이라는 지적이다.
□ 대통령 퇴진논의 보다 '개헌블랙홀' 가능성…본질 왜곡 = 현재로서는 박 대통령은 자신의 퇴진논의를 국회에 넘겨 그동안 시간을 벌고, 새누리당은 퇴진논의와 함께 개헌논의도 동시에 할 것을 주장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
이미 정진석 원내대표는 이날 원내대책회의에서 야당의 '선(先) 탄핵, 후(後) 개헌'주장에 대해 "현실적으로 성립할 수 없다"며 "탄핵과 개헌, 탄핵과 거국중립내각은 동시에 논의할 수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이에 따라 국회가 박 대통령의 퇴진 논의에 들어가는 순간 본질인 박 대통령의 퇴진 보다 '개헌블랙홀'로 빨려 들어갈 수 있다.
또 다른 관계자는 "어제 친박계가 '명예퇴진'을 언급하자 비박계가 그럼 탄핵까지 할 필요가 없다는 기류가 생겼는데 이를 이용해 탄핵흐름을 막고 새누리당은 정권연장을 위해 의원내각제 개헌을 거듭 주장할 것"이라며 "여전히 '즉각 하야'를 요구하는 국민을 무시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 "사심 없으면서 태반주사 사나"…"野, 무조건 2일 탄핵" = 아울러 3차 담화에선 박 대통령 특유의 '유체이탈' 화법을 어김없이 선보였다.
박 대통령은 "저는 1998년 처음 정치를 시작했을 때부터 대통령에 취임하여 오늘 이 순간에 이르기까지 오로지 국가와 국민을 위하는 마음으로 모든 노력을 다해왔다"며 "단 한순간도 저의 사익을 추구하지 않았고, 작은 사심도 품지 않고 살아왔다"고 거듭 '사심(私心)' 없는 삶을 강조했다.
이어 "지금 벌어진 여러 문제들 역시 저로서는 국가를 위한 공적인 사업이라고 믿고, 추진했던 일들이었고 그 과정에서 어떠한 개인적인 이익도 취하지 않았다"고 항변했다.
이에 정의당 노 원내대표는 "한 줄로 해석하면 '나는 여전히 대통령이며 국회에서 합의를 못하면 임기를 다 채울 것이다'라는 것"이라고 일갈했다.
한 야권 인사는 "대통령으로서 일말의 양심도 없다. 끝까지 사심을 품지 않았다고 하지만 태반주사가 공익 목적이냐"라며 "야당은 2일 무조건 탄핵안을 가결시켜야 한다. 비박계가 흔들리고 찬성에 나서지 않는다면 역사가, 국민이 심판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