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일 170만여명이 서울 광화문 광장에 모여 촛불을 들었다. 저녁 6시 본행사 전 한영애의 '조율'이 흘러나오자 시민들이 한 목소리로 노래를 따라 불렀고 일부는 눈물을 글썽거리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지금 벌어진 여러 문제들 역시 저로서는 국가를 위한 공적인 사업이라고 믿고 추진했던 일들이였고, 그 과정에서 어떠한 개인적인 이익도 취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주변을 제대로 관리하지 못한 것은 결국 저의 큰 잘못입니다."
박근혜 대통령이 3차 담화문에 대한 민심은 어느 방향으로 흘렀고 그 방향이 '탄핵안' 표결을 앞두고 있는 정치권에 어떤 영향을 미치게 될까. 그 해답을 찾기 위해 지난 3일 제6차 촛불집회가 열리는 서울 광화문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촛불집회 장소인 지하철 5호선 광화문역.
아직 이른 시간임에도 불구하고 촛불집회에 참석하려는 시민들이 역사 주변에 깔렸다.
"왜 이곳에 왔느냐"라는 너무도 뻔한(?) 물음에 한 아주머니는 "분하니까. (박근혜 대통령이)사람을 무서워할 줄 알아야지"라는 답이 돌아왔다.
◆…광화문역 9번 출구 방향의 역사 중간에 자리잡은 기둥에는 '박근혜 퇴진역'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광화문역 9번 출구 방향에는 '박근혜 퇴진역'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박근혜 퇴진역이라고 써진 기둥을 중심으로 주변에는 '박근혜 퇴진이 복지다', '박근혜는 당장 물러나라' 등 각양각새의 플랜카드를 내건 노동단체가 자리를 잡고 있었다.
지하철 5호선 광화문역의 새 이름(?) 박근혜 퇴진역, 이처럼 역사에 기록되지 않을 시민들의 분노가 광화문 곳곳에 표출되어 있었다.
집회(저녁 6시)가 시작되기도 전 광화문 광장은 한치 앞을 보기 힘들 정도로 사람들이 넘쳐났다.
어린 아이들도 '역사의 현장'에 함께 했다. 아버지들은 아내의 손을 붙잡고 어깨 위에 아이를 앉히곤 광화문의 인파 속을 헤집고 다녔다.
광화문의 한 식당. 가족과 함께 하지 못한 사람들은 식당이나 길가 포장마차에 삼삼오오 모여 따뜻한 음식으로 몸을 녹이며 저마다 가슴 속 응어리를 풀어내는 말들을 내뱉었다.
지난 대선 때 박 대통령을 찍었다는 박모씨(44)는 "박 대통령의 3차 담화문은 꼼수다. 임기를 끝까지 마치겠다는 의도"라고 목소리를 높이다가 소주 한 잔을 벌컥 들이킨 후 "질서있는 퇴진 등 정치권에서 그럴 싸하게 포장하는데, 그건 아니다"고 말했다.
촛불집회가 이어지는 동안 평화시위가 잘 유지되어서 인지 이날 현장에는 앞선 집회와 마찬가지로 유모차에 아기를 싣고 나온 엄마들, 수능시험을 마친 학생들이 많이 눈에 띄었다.
대통령의 정치적 고향 대구에서 세살배기 딸을 데리고 상경했다는 박모씨(34·여)는 "아기가 어려서 먼 길을 와야 하나 고민했지만 평화적 집회가 될 것이고, 아기와 함께 역사의 현장에 있고 싶다는 마음이 굳어져 오게 됐다"고 전했다.
냉기 서린 계단에 앉아 책을 펼쳐 들고 있었던 김모씨(23·경희대)씨는 "주말 동안 과제를 해야 하지만 집회엔 꼭 참석하고 싶었다"며 "국민들이 준 권한을 자신의 소유물로 착각하고 사적으로 유용한 대통령에게 촛불을 힘을 보여주고 싶어서 왔다"고 말했다.
이렇듯 광화문에 모여든 인원이 서울 170만명, 지역 62만1000명 등 전국 232만1000명(촛불집회 주최측 추산치)에 달했다.
촛불 시위가 벌어지고 있는 현장에서는 "박근혜 퇴진" 목소리가 끊임없이 나왔다.
박 대통령에 대한 비판의 강도가 대체로 더 쎘다. 정치권, 특히 탄핵에 굼뜬 모습을 보이고 있는 새누리당에 손가락질하는 사람들도 많았다. 촛불의 힘을 현장에서 체득한 야3당에서는 여세를 몰아, 대통령 탄핵안 가결에 힘을 실으려 하고 있다.
이날 저녁 6시 시작된 행사에 앞서 더불어민주당, 국민의당, 정의당 등 야3당은 일제히 박근혜 탄핵을 외쳤다. 정의당 이정미 수석부대표는 "박근혜를 하옥시켜라~ 박근혜는 당장 하야 하여라"는 노래를 전주삼아 탄핵소추 경과보고를 시민들에게 했다.
이 수석부대표는 "오늘 새벽 4시10분, 전체 300명 국회의원 중 171명의 발의로 박근혜 대통령 탄핵소추안을 발의했다는 것을 보고드린다"며 "박 대통령 탄핵소추안에는 지난 4년 동안 박 대통령이 이 나라 대한민국 헌법을 어떻게 유린했는데 그 죄상을 조목조목 담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3일 오후 4시30분 정의당 심상정 대표가 광화문 광장에서 연설을 했다. 집회 참석자들이 심 대표를 둘러싸고 연설을 듣고 있다.
심상정 정의당 대표는 "우리는 박 대통령 퇴진을 요구하고 있다. 잘못을 정확하게 국민들에게 보고하고 무엇을 잘못했는지 시인하고 그 잘못이 대한민국의 헌정질서를 유린하고 국정을 농락한 어마무시한 범죄행위라는 것을 인정하고 더 이상 나 박근혜는 대한민국의 대통령으로써의 자격이 없다 용서해 달라 이렇게 얘기하고 내려가야 되는 것 아닙니까"이라고 소리쳤다.
이 날 국민의당은 '박근혜 대통령 탄핵, 새로운 대한민국'이란 문구가 적힌 플랜카드를 광화문 광장 곳곳에 걸고 민심결집에 나섰다.
더불어민주당 추미애 대표는 이날 배포한 '취임 100일 메시지'를 통해 "지나온 100일보다 앞으로 남은 5일이 더욱 중요하다"며 "민주당은 흔들림 없이 국민만 믿고 국민과 함께 '즉각 퇴진', '즉각 탄핵'의 역사적 대장정을 시작하겠다"고 강조했다.
한창 달궈진 촛불 집회현장에 한 가락 노래 소리가 흘러나왔다.
"무엇이 문제인가. 가는 곳 모르면서 그저 달리고만 있었던 거야. 지고 지순했던 우리네 마음이 언제부터 진실을 외면해 왔었는지. 잠자는 하늘님이여 이제 그만 일어나요. 그 옛날 하늘빛처럼 조율 한번 해주세요."
◆…한영애의 '조율'이 흘러나오자 광화문 광장에 촘촘히 들어선 촛불들이 일렁이기 시작했다.
어스름이 내리고 노래 첫머리가 흘러나오자 광화문 광장에 결집한 촛불들이 일렁이기 시작했다.
이날 집회는 6시부터 7시까지 법원의 허가로 청와대 앞 100ｍ까지 행진이 이어졌다. 일부 시민이 제한시간 이후에도 남았지만 경찰은 안전관리를 최우선으로 두고 안내방송을 하며 설득에 주력했다.
광장 구석구석까지 인파가 밀려들었지만 큰 충돌·사고는 없었고 연행자도 나오지 않았다. 광화문·시청 광장부터 경복궁역까지 발 디딜 틈이 없었지만 시민들은 집회가 끝나도록 평화롭게 집회를 마쳤다.
집회 도중 집으로 돌아가는 시민들을 위해 자연스레 사람과 사람 사이 작은 샛길도 생겼다. 작은 성숙한 시민의식은 이렇듯 작은 배려로 표출됐다.
그날, 촛불의 울림은 평화로운 가운데 끝났다. 나이와 출신지역, 학력 모든 것을 초월한 '하나된 국민'들은 겨울밤의 추위 속에서 뚜렷한 불자국을 남겼다.
'민주주의란 무엇인가, 촛불이 곧 민주주의다' 라는 지워지지 않을 불자국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