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축성보험 이자 차익에 대한 비과세 혜택 축소를 두고 보험업계의 반발이 거세다.
최근 정치권이 저축성보험에 대해 비과세 한도를 줄이는 소득세법 개정안을 통과시켰는데, 차후 정부 주도하에 개정될 시행령에서 '월 적립식 보험'에 대한 한도를 1억원으로 묶겠다는 합의가 이루어지면서부터 논란이 불거졌다.
그러나 월 적립식 보험이 전체 저축성 보험의 80% 이상을 차지하고 있는데도 불구, 세법을 심의하는 과정에서 적절한 합의절차가 거쳐지지 않은 채 '졸속'으로 처리됐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합의도 안 됐는데, 어떻게 통과가 된 거죠? = 지난달 30일 조세소위 마지막 회의날까지 월 적립식 보험의 비과세 문제에 대해서 정치권과 정부는 합의를 이끌어내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사진은 당시 회의록 캡쳐.
합의 없이 처리된 '졸속 세법'
지난 2일 국회의 벽을 넘은 소득세법 개정안은 현재 시행령 상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저축성보험의 보험차익'에 대해 법률로 규정하는 것이 주요 골자.
당시 정치권과 국회는 이 개정안을 통과시키면서 차후 소득세법 시행령을 개정해 내년부터 '일시납' 보험은 비과세 한도를 2억에서 1억원으로 줄이고, 월 적립식 보험은 총 납입액의 1억원(만기 10년 이상)까지만 비과세 혜택을 주도록 합의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금융상품 비과세 혜택이 주로 고소득층에 몰려있다는 지적이 있어왔다. 이 때문인지 한 번(일시납)에 보험료를 2억원까지 낼 수 있는 고소득층에 대해 비과세 혜택을 주는 것이 조세형평성에 맞지 않다는데 정치권과 정부 간 이견은 없었다.
그러나 생명보험협회와 보험대리점협회 등에 따르면 월 적립식 보험의 비과세 축소와 관련해 국회 조세소위원회가 10차례 회의를 진행하는 동안 이 방안이 합의된 적이 없었다는 의문을 제기했다.
사실 저축성보험 비과세 축소는 부유층에 대한 증세라는 측면에서 볼 때, 10년 이상 1억원 이상의 돈을 묻어둘 수 있는 사람을 고소득층으로 보기 어렵지 않냐는 논란이 있을 수밖에 없었다.
지난 11월30일 진행된 제346회 정기회 10차 조세소위 속기록에는 월 적립식 보험의 비과세 문제에 대한 언급이 있었다. 조세소위 마지막 공식 회의날(지난달 30일)이 되어서야 단 한 차례가 논의가 진행됐는데, 이 과정에선 어떠한 합의점을 찾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오히려 정치권과 정부가 이견을 보이며 대립한 흔적이 남아 있다.
이 자리에서 법안발의 당사자인 국민의당 박주현 의원은 "장기저축성 보험의 보험 차익 비과세 폐지하는 것에 대해 세제실하고 계속 연락을 해서 일시납 방식뿐만 아니라 월 납입 방식도 여기에 포함하는 것으로 얘기가 됐다"고 말했다.
박 의원은 자료를 들어보이며 정부의 대안에 대해 언급했다.
정부안은 일시납 보험의 비과세 납입 한도 1억원으로 줄이는 내용으로, 금액은 시행령에서 줄이도록 했다. 월 적립식은 포함되지 않았다. 이에 박 의원은 "(월 적립식)포함을 시키겠다고 그렇게 얘기를 들었다"고 반문하자, 임재현 기재부 소득·법인세정책관은 "월납은 어떻게 되는지 명확치 않아서 그것을 분명히 해야 한다"고 말했다.
월 적립식 보험은 전체 저축성보험 중 84%를 차지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월 적립식 보험의 비과세 혜택 축소는 파급효과가 큰데도 충분한 검토가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점에서 논란의 여지는 남아있다는 지적이다.
◆…"저축성보험 비과세 폐지는 반대합니다" = 지난달 23일 제6차 조세소위에서 저축성보험 비과세 폐지를 두고 정치권과 정부 간 이견을 보였다. 사진은 당시 회의록 캡쳐.
저축성보험 생존 위협받나
급기야 보험업계는 국회를 비롯해 기획재정부 앞에서 "장기 저축성보험(월 적립식) 비과세 축소를 철회하라"는 집회를 열며 정치권과 정부를 압박하고 나섰다.
앞서 지난 13일 한국보험대리점협회는 국민의당 당사(서울 마포구)와 기획재정부(세종시) 등에서 궐기대회를 열고 보험차익 비과세 축소 철회를 요구했다.
부자증세라는 법 취지의 효과가 월 적립식 보험엔 크지 않다는 지적도 크다. 월 적립식 보험의 경우 10년 이상을 유지하고 그 이후 이자차익에 대해 비과세가 되므로 실질 세수 효과는 10년 후에나 발생하기 때문에서다.
특히 기존에 없던 비과세 한도가 1억원으로 매겨지면서 '국민 노후생활 보장'이라는 측면에서 과도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가령, 월 적립식 한도를 총 납입액 1억원으로 설정하고 30세부터 20년 간 매월 균등 납입한다고 가정해보자. 이 경우 55세 이후부터 20년간 월 48만원을 받게 된다.
최근 국민연금공단이 발표한 부부기준 적정 노후생활비인 217만원에 비해 턱 없이 부족하다.
보험업계 한 관계자는 "개인이 자발적으로 노후생활을 준비하려고 하는데, 세제혜택이라는 인센티브를 없애고 있다"며 "노후보장을 역행하는 정책"이라고 지적했다.
기재부는 이달 말 세법시행령 개정 발표 전까지 각계 의견을 수렴하겠다는 방침이다. 국회 논의과정(속기록 상)에서 월 적립식 보험의 비과세 한도를 규정하는 것에 기재부가 긍정적인 입장을 보이지 않았다는 점에서 시행령 개정 과정에서 방향이 바뀔 수도 있다는 시각도 나온다.
하지만 이미 국회에서 논의 된 사안에 대해 정부 스스로 변화를 주기는 애매한 형편이다. 정부 일각에서는 비과세 한도 추진에 따른 금융시장의 상황을 지켜본 뒤, 시장여건 변화에 따라 운용하겠다는 다소 유보적 입장도 나오고 있는 모습이다.
기재부 관계자는 "개정안에서 크게 변화지는 않겠지만 업계의 상황을 지켜보고 있다"라며 "경제상황에 따라 탄력적으로도 운용할 수 있다"고 밝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