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모님을 제일 마지막으로
친가 쪽의 내 위 세대는 모두 저승으로 가셨다.
올해 고모님 춘추 일흔 일곱.
일제의 강점기와 동족상잔의 육이오,
그리고 파란만장한 현대사를 살아오시면서
잊어버려야 할 것이 그리도 많으셨던지
치매로 5년여나 투병하시다 가셨다.
영정에 절을 하면서
나는 한참동안 일어나고 싶지 않았다.
내 부모님 가까이로 오르시는 고모님께
이 곳 안부편지를 전해드릴 걸 하는 엉뚱한 생각과 함께,
그러나 영정 속 생전 고모님의 따뜻한 눈빛을 보는 순간,
왈칵 눈물이 솟구쳤다.
어렸을 적에 어머님한테 들은 이야기지만
고모님은 고종사촌 명곤이를 낳기 전에
나를 먼저 받아내셨다.
충남 금산군 금성면 상가리 금성초등학교 교장 사택에서,
양력으로 12월 17일, 바깥은 눈이 많이 쌓여 있었고 바람은 세찼다.
고모는 자기 오빠의 다섯 번째 아이와 산모를 위해 배부른 몸으로 미역국을 끓였을 것이다.
그 때 나이 30세,
손을 호호 불어가며 얼음을 깨고 광목 기저귀를 빨던 새댁의 이쁜 손이 얼마나 시렸을까.
다음 해 1월 고모님께서 명곤이를 해산하실 땐
어머님께서 뒷바라지를 해 주셨다 한다.
늘 인자하신 웃음과 가냘픈 몸매,
고모님은 세상을 조용히 관조하시면서 사셨던 것 같다.
나지막한 목소리, 조신하며 내딛는 발걸음, 언제나 한복차림인 고모님은
올케와는 친형제처럼 지내셨다.
또한 사는 곳이 지척인 터에
고모부와 아버지는 장기나 바둑을 밤늦도록 두셨고,
그럴 때마다 어머님은
부침개나 묵무침 같은 밤참을 해내셨다.
모두 초등학교 교장선생님이셨던 까닭에
두 분의 우정은 더 각별했으리라.
이젠 빛 바랜 앨범 속에서만이
아버지 세대들을 보게 될 것이다.
그 어느 세대보다도 격랑의 세월을 보낼 수밖에 없었던
시대적 상황을 몸소 체험하신 분들,
그들이 있었기 때문에 한 세대 건너의 자식들이
우리 옆에 햇살처럼 떡 버티고 있는데
아, 내가 아버님 세대의 품에 어리광부리며 돌아갈 때
내 자식들은 내 영정 앞에서
나처럼 지난 세월을 그리워할까.
서울로 돌아오는 룸미러 안에
잠시 밝아졌다가 다시 어둠으로 돌아간 어둠이
새까매진 산등성이 몇 무더기를 들여놓고
자꾸 눈물을 훔치게 만들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