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적 관심이 가장 높은 분야 중 하나인 교육과 관련해 각 대선 주자들의 정책공약이 하나, 둘 발표되고 있다.
어린 시절부터 치열한 생존경쟁에 내몰리는 한국의 교육 현실을 바로잡기 위해 역대 정부에서는 크고 작은 개혁책을 내놓았지만, 효험이 그닥 크지 않았다. 가뜩이나 '지옥'과도 같은 입시경쟁을 더욱 부추겨 '불지옥'으로 만들어 버린 정책들도 있었다.
대표적인 사례가 노무현 정부의 '3불 정책(기여입학제, 본고사, 고교등급제 금지)'이다. 교육 불균형을 해소하는 마지노선이라는 긍정적 평가도 받았지만 창의력을 키운다는 명분으로 도입된 대입 논술로 인해 입시부담만 가중시켰다는 지적을 받았다.
이명박 정부의 고교선택제, 자율형-자립형 사립고 및 국제중학교 확대, 대입 자율화, 입학사정관제 도입도 마찬가지. 아예 학교를 '입시 전문학원'처럼 변질시켰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등록금 부담이 올라가기 시작한 것도 이명박 정부 시절이다.
지금 대한민국은 어엿한(?) '등록금 1000만원 시대'를 살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도 교육 공약으로 선행학습 금지, 고교무상교육 등을 내놓았지만 뭐 하나 제대로 실현한 것이 없다. 지켜야할 약속은 지키기도 바쁠텐데 엉뚱한 국정교과서 문제를 띄워 국론을 분열시키는 등 국민의 기대와는 전혀 다른 행보를 보였다.
□ 학벌체제 공감…특목고 폐지-국공립 대학 정상화 한 목소리 = 지금까지 주요 대선 주자들이 내놓은 교육 공약들을 살펴보면 학벌체제 문제에 대해서는 기본적으로 공감대를 이룬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이명박 정부가 확대한 자사고-외고 등 특목고 정책이 '일반고 슬럼화'를 만들어내면서 다수 주자들이 폐지를 공약했다. 또한 국공립 대학의 정상화 및 특성화에 대해서도 한목소리를 냈다.
교육부 폐지 및 국가교육위 재편에 대해서도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와 안철수 국민의당 전 대표가 같은 입장을 나타냈다.
다만 사교육 문제와 학벌 문제 등을 해소하는 등 각론에는 차이를 보인다. 사교육 폐지(남경필), 중등교육부터 근로기준법 교육(이재명), 학제개편(안철수) 등 각기 다른 해법을 내놓았다.
□ 문재인, 국공립 공동학위제…이재명, 청소년 근로기준법 교육 = 문 전 대표는 지난 18대 대선에 이어 고교 및 대학 서열화 철폐, 특목고 폐지 등을 주장했다. 대학 서열화 폐지를 위해서는 명문대 입시 기관으로 전락한 특목고가 없어져야 한다는 것이 문 전 대표의 논리다.
또 서울대를 비롯한 국공립대가 하나의 대학처럼 강의를 교류하고 같은 학위를 부여하는 '국공립대학 공동입학·공동학위제'를 제시했다.
특히 문 전 대표는 전국 시도교육감협의회가 내놓은 교육정책 요구안에 대해서도 수용하겠다는 의지를 나타냈다. 요구안은 국가교육위원회 설치를 비롯해 ▲국정교과서 자유발행제 ▲무상교육·보육 확대 ▲지방교육재정교부금 인상 ▲교사 수업권·평가권 보장 ▲영유아 교육·보육비 제정 등이다.
나아가 중등교육까지 지방교육청에서 관장하고, 교육부는 대학 교육만 담당하도록 기능을 축소시키겠다는 구상이다.
다만 국가교육위원회를 설치해 교육 정책 전반을 맡기겠다고 밝혔다.
이재명 성남시장도 대학서열 체제에서 벗어나 '국공립대 네트워크'를 구축하자는 입장이다. 교육양극화가 소득양극화로 연결되지 않도록 체제 개편에 나서야 한다는 것이 핵심.
이 시장은 "우리 교육은 입시지옥, 대학서열 체제, 공교육 황폐화라는 문제에 빠져 있다"면서 "국공립대 네트워크를 구축하고, 공영형 사립대학체제를 구축해 교육의 상향평준화를 기하고, 대학등록금을 현재의 절반 수준으로 낮춰야 한다"고 말했다.
또 이 시장은 자신의 페이스북에 청소년 '알바' 문제를 지적하며 중학교 교과과정에 근로기준법 교육을 신설하겠다는 공약을 밝혔다.
소년공 출신다운 공약이라는 평가다.
□ 안희정, 교육공약 준비 중 "반값 등록금, 어렵다" = 안희정 충남도지사는 아직까지 뚜렷한 교육 공약을 내놓지 않은 상태다.
안 후보 캠프 측 관계자는 조세일보(www.joseilbo.com)와의 통화에서 "비전과 방향은 이미 정해져있고 일부 보완할 내용들이 가다듬어 지고 있는 상황"이라며 내주 발표를 예고했다.
다만 안 지사는 이미 몇몇 지자체 등에서 시행되고 있는 교육복지 차원의 '반값등록금' 정책을 반대해 논란이 되기도 했다.
안 지사는 지난 3일 한 언론인터뷰에서 "아이들아 정말 미안하다. 더 좋은 대학과 대학 정책을 만들고 싶지만, 현재 국가재정의 우선순위를 봤을 때는 당장 너희들한테 이 약속을 못하는 걸 이해해다오"라고 말한 바 있다.
대학생들의 항의가 쏟아지고 논란이 되자, 지난 19일 "'무조건 참아라'는 말이 아니었다. 국가재정을 짠다면 급한 순서가 있어 반값등록금을 상위 순서에 둘 자신이 없다는 취지"라고 해명하며 다양한 장학제도와 국·공립대 발전지원책 등을 강조했다.
한편 민주당의 대학등록금 관련 총선 공약은 저소득층 대상 최대 200만원 세액공제 및 환급과 소득연계형 등록금 제도 도입 등이어서 대선 후보가 누가 되더라도 고려 대상이 될 전망이다.
□ 남경필 "과외 전면 금지한 전두환 될 것"…유승민 "대학입시 법제화" = 바른정당 대선후보인 남경필 경기도지시는 '사교육 폐지'를 전면에 내세우며 국민투표를 제안, 눈길을 끌었다.
남 지사는 "사교육 폐지에 대한 국민투표를 실시해 국민의 뜻을 묻고, 동의해 주신다면 사교육 전면 폐지를 위한 '교육 김영란법'을 제정하겠다"고 말했다.
이외에도 ▲특목고·자사고 대부분 폐지 ▲예체능·어학·코딩 및 프로그램 교육을 위한 초중등 교사 채용 대폭 확대 ▲고소득층에 유리한 입시제도 간소화 ▲학력차별금지 및 직무능력 중심 고용촉진에 관한 법률 제정 ▲지방거점 국립대 특성화 등 자신의 교육정책을 강조했다.
하지만 사교육 폐지는 공고한 학벌체제와 승자독식 경쟁 구조가 버티는 한 실현 불가능한 정책이라는 지적이 대부분이다. 사교육 시장이 사라질 경우 경제에도 큰 타격이 불가피하다.
배상훈 성균관대 교육학과 교수는 "우리나라 사교육은 대학서열화로 비롯된 직업 세계에서 갖는 프리미엄 문제가 소득재분배까지 이어질 수 있는 우려가 크다"면서 "대선 후보들의 교육 공약을 보면 이러한 원인 진단은 깊게 하지 못한 것 같아 아쉽다"고 꼬집었다.
유승민 의원은 정권과 상관없이 지속가능하도록 대학 입시제도를 법제화하고 자사고, 외국어고 등 특목고는 폐지하고 공교육 정상화를 강조하고 있다.
□ 안철수, '학제 개편' 공약 = 국민의당 안철수 전 대표는 교육 정책을 '교육혁명'으로 내세우며 학제개편을 유일하게 내걸었다.
그는 지난 6일 국회 교섭단체대표 연설에서 유치원 2년과 초등 5년, 중등 5년, 진로탐색학교 또는 직업학교 2년(2-5-5-2), 대학 4년 또는 직장으로 이어지는 혁신 학제개편안을 제시했다. 만 15세까지 보통교육을, 이후에는 대학-직장으로의 진로 교육으로 나누는 방안이다.
이 밖에 교육부를 폐지하고 국가교육위·교육지원처로 재편하는 방안과 창의교육·평생교육 강화 등도 거론했다.
정치권은 안 전 대표의 '학제개편'에 대해 일단 긍정적인 반응이다.
민주당 우상호 원내대표는 "상당히 의미가 있고 여러 교육전문가가 주장해 온 안"이라고 말했다. 그는 "사실 지금의 학제는 일제 시대에 만들어져 지금까지 이어져 왔지만, 시대변화에 못 미치는 측면이 있다. 초등학교 이전의 유치원, 어린이집 체제부터 소위 '6-3-3 체제'가 계속 가야하느냐, 하는 측면이 있다"고 지적했다.
야권 관계자는 "지금 학제가 너무 오래됐고, 아이들 성장을 고려하면 개편하는 방향이 맞다"며 "또 18세 선거권 문제와 맞물려서 생각해보면 여야가 진지하게 고민할 때"라고 강조했다.
교육계 일각에서는 안 전 대표의 학제개편이 세계적 흐름과 맞지 않다는 지적도 나온다.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 관계자는 "안 전 대표의 학제개편은 만6세 이상의 아이들을 학교에 입학시키는 세계적인 추세에 어긋나는 공약"이라고 지적했다.
또 직업학교 등에 대해서는 "다양한 교육 커리큘럼을 받고 종합적인 사항들을 고려해 선택해야 하는 학생들에게 직업진로 및 탐색 학교는 한 쪽으로 편향된 것으로 교육의 본질까지 훼손시킬 수 있다"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