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정부 조세개혁의 '밑그림'이 나왔다.
개혁의 기준은 단순 명료하다.
조세의 '소득재분배' 기능을 높이는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쉽게 말하면 증세를 하겠다는 것이다.
납세여력이 있는 개인·기업에게 세금을 더 거두거나 그동안 부자감세 정책으로 왜곡된 세제를 정상화 궤도에 올려놓겠다는 것이다. 서민·중산층에겐 세금공제 혜택을 늘려 계층 간 소득 격차를 줄인다는 방침이다.
증세를 위해서는 국민적 합의가 필수적인 만큼 집권 초반부터 국민적 합의 수준을 높이기 위해 공론화 작업을 시작한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내달 중하순 발표될 것으로 보이는 올해 세법개정안에는 과도한 수준의 증세방안은 담지 않는다는 계획이다.
불필요한 증세 논란은 지방선거에 악영향을 줄 수 있다는 판단에 따른 것으로 풀이된다.
세금, 부자에겐 '더' 서민에겐 '덜'
최근 문재인 정부 대통령직 인수위원회 역할을 하는 국정기획자문위원회가 내놓은 '조세개혁' 방향을 보면, 부자증세 의지가 고스란히 담겨있다.
증세 타킷은 대기업, 고소득자다.
구체적으로 대기업이 적용받는 비과세·감면 제도의 실효성을 따져 축소(폐지)한다. 고용창출투자세액공제가 대대적으로 손질될 전망이다. 고소득자 상속·증여세의 공제 축소도 거론되고 있다. 상속·증여를 미리 신고만 하면 내야 할 세금의 7%를 공제해주는 '신고세액공제제도'를 들 수 있는데, 공제율을 낮추는 방안이 검토된다.
또 주식 양도차익과 이자·배당소득에서 부분적인 과세 기반도 넓히고, 국세청의 세원 빅데이터를 이용한 탈루소득 과세 강화한다는 방침이다.
'부의 세습'이라는 비판을 받는 가업상속공제 역시 수술 대상에 오른다.
가업을 상속하는 경우 가업상속재산가액의 100%를 가업 경영 기간에 따라 최대 500억원까지 상속가액에서 공재해주고 있다. 최근에는 3000억원 미만 중견기업까지 공제대상에 포함시키면서 과세형평에 어긋난다는 지적이 적지 않다.
박광온 국정위 대변인은 지난 29일 문재인 정부 조세개혁 방향에 대한 브리핑을 통해 "그간의 부자 감세 정책으로 왜곡된 세제를 정상화하는 조세정의 실현을 통해 더불어 잘사는 경제를 만드는 것"이라고 밝혔다.
반면 서민·영세사업자에겐 세금 부담을 덜어주는 방향으로 세제가 개편될 것으로 보인다.
급격한 월세화 시대의 주거비 경감을 위해 '월세세액공제율'을 확대하는 안이 추진된다.
현재 주택을 소유하지 않거나 총 급여액이 7000만원을 넘지 않는 근로자가 25평 이하의 주택(오피스텔 등)에 전입신고 이후 1년 동안 지급한 월세 금액(연 750만원 한도) 10%의 금액을 세액공제 받을 수 있다. 정부는 이 공제율을 올리겠다는 것이다.
폐업한 자영업자가 사업을 재개하거나 취업했을 때 소액 체납액을 한시적으로 면세해주는 방안도 추진된다. 현 세금 체납액이 500만원 이상이면 신용정보기관에 체납 정보가 넘어가 신용등급이 하락하고 예금·급여 등 재산이 발생하면 즉시 압류 및 체납을 진행한다.
또 내년부터 근로소득 증대세제의 공제 대상 근로자를 확대하고 공제율도 높이기로 했다.
중소기업이 근로자 임금을 전체 평균 임금상승률보다 더 많이 올리면 임금증가분의 10%를 세액공제해주는 제도다. 이 밖에 영세 음식업 사업자가 면세 농수산물을 구매할 때 적용하는 의제매입세액 공제 혜택을 확대하는 방안 등도 거론되고 있다.
신중 또 신중…내년엔 증세 없다
문재인 정부의 복지공약을 달성하려면 단순히 조세지출 정비만으로 막대한 재원을 조달하기란 무리가 있을 수밖에 없다. 문재인 대통령의 대선 공약 201개를 이행하는 데 필요한 예산만 5년간 178조원에 달한다.
이 때문에 복지 확대를 위한 증세는 불가피하다는 인식이 짙다.
그러나 인위적으로 세율을 조정하는 증세는 당장 하지 않는다는 방침이다.
법인세율 올리는 부분만 보더라도 '가뜩이나 경기도 좋지 않은데 법인세 인상은 경기활성화에 찬물을 끼얹는다'는 비판이 거세다. 현재 국회에 법인세 최고세율을 MB정부 감세정책 이전인 25%까지 올리는 개정안이 계류 중이지만 당장 국회 논의테이블에 오르긴 어렵지 않겠냐는 시각이 많다.
고소득자에게만 더 걷겠다는 소득세도 조세형평이 어긋난다는 비판이 있다.
근로소득 과세대상자 가운데서 절반에 이르는 근로자가 세금(근로소득세)을 한 푼도 내지 않고 있어서다. 정부에서도 저소득 근로자에게 적용되는 세금공제 혜택을 줄이는 방식으로 '면세근로자' 비율을 축소하겠다고는 하나, 당장 제도를 바꿨을 때 조세저항에 직면할 수 있기에 국민적 합의를 먼저 이끌어낸다는 방침.
특히 노무현 정부 시절 종합부동산세(종부세) 조세저항 파동을 겪은 점을 감안해 재산세, 종합부동산세 등 부동산 보유세를 상향조정하려는데 신중한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미세먼지 감축 일환으로 추진하려고 했던 유류세 인상도 서민들의 과중한 부담을 의식해 중장기 과제로 미뤘다.
정부는 법인세율이나 경유세, 부동산 보유세 인상 등 민감하고 첨예한 이슈는 올해 하반기 내 '조세·재정개혁 특별위원회'를 만들어 신중한 검토와 접근을 하기로 했다.
각계의 대표 인사와 전문가들로 구성된 이 논의 기구에서 세제개편 등을 논의하며 추진 여부를 결정하겠다는 것이다. 더욱이 내년 지방선거를 앞둔 상황에서 민심을 뒤흔드는 불필요한 증세 논란을 최소화하겠다는 뜻으로도 해석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