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옥경 두 번째 시집 '바다의 전설' 펴내 눈길
상습적 폭염과 게릴라성 폭우가 교차한다. 기압골의 불규칙한 움직임이 여름의 정중앙을 관통한다. 불확실성의 시간. 날씨보다 더 수상한 시대의 개인과 사회를 개성 있는 시선으로 바라본 시집 두 권이 비슷한 시기에 출간됐다. 직면한 상황을 정면으로 포착한 두 명의 시인이 구축해낸 여름과 바다의 언어 세계, 상당히 맛깔스럽다.
김선미 시인이 펴낸 '마가린 공장으로 가요, 우리'(포지션)는 시인의 첫 작품집이다. 2009년 계간 '시에'로 등단한 그는 수년간 시작에 매진한 끝에 오롯한 결실을 세상에 내놨다. 49편의 작품이 4부에 걸쳐 수록돼 있다.
안서현 문학평론가는 이 시집을 '여름의 세계도'라고 압축했다. 여름 특유 녹색의 잔상과 생명의 리듬, 그 이면에 숨겨진 불안과 허무, 광기·충동까지 짚어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각각 존재의 본질, 오늘날 번화한 이 현대 사회와 문명의 질서와 조응한다고 이해했다.
“뭉게구름이 손에 닿는 곳으로 간다 부드럽게 핥아 먹으려 신발 두짝 나란히 벗어놓고 오줌 마려운 걸 참으며 장애우용 승강기를 타고 망할 곳으로 간다 혀가 먼저 뽑혀나가고 눈이 코가 귀가 사라져도 모르는, 망할 꽃 망할 나라 망할 헬리콥터 망할 빌딩들 위에 헐떡이며 사정을 하고, 해변의 여기저기 떠도는 손발은 운수 같은 거 밀물이 오기 전 떼를 지어 바다에 떠밀려 내려간 붉은 산 게들처럼 죽을 둥 말 둥 학학거리며 산란하고 마는”
-'여름 1' 전문
호된 계절에 혹은 시련의 시대에 시달리는 흔한 군상. 시인이 그려낸 여름은 분명 우리의 일상과 닮았다. 현실의 벽 앞에 외롭게 견딘 채 죽을 둥 말 둥 살아가는 오묘한 답답함이 묻어난다.
김선미 시인은 “자기만의 마가린 공장으로 휴가를 떠나자”며 “조금 더 신선한 삶이라면 좋겠지만 조금은 불안하고, 아슬아슬하고, 시들어 있는 것도 내 삶”이라고 말한다. 현실은 결코 이상적일 수만은 없다. 다만 받아들이고 나아갈 수는 있다는 이야기다.
'바다의 전설'(두엄)은 김옥경 시인의 두 번째 시집이다. 3부로 나눠 담긴 60편의 시들이 바다와 전설, 세상을 노래했다. 2013년 계간 문예지 '시와 사람'을 통해 문단에 나선 시인은 2014년 58편이 담긴 첫 시집 '벽에 걸린 여자' 이후 3년 만에 두 번째 시집을 공개하는 등 활발한 활동을 이어오고 있다.
그는 '통영 남매바위', '연오랑과 세오녀', '만파식적', '말짱 도루묵' 등 설화가 깃든 과거의 바다를 읊은 후 3부 '그리고 또 다른 생의 바다'에서 앞으로 전설이 될 현대를 화두로 삼았다.
시인은 우리가 함께 겪은 아픔과 희망을 담담한 시편으로 녹여냈다. '다시는 오지 않을 것 같던/ 팽목항에 봄이 찾아 왔네/ 화사해라 저 유리창에 비치는 햇살/ 첫사랑이 온 듯 설레더니/ 오늘은 세월호를 인양하는 날/ 무엇이 그리도 무서웠을까?/ 심해에 잠긴 진실이 떠올라/ 한탄하는 어지러운 세상'(약속 없는 이별)에서는 '현실'이라는 바다의 슬픔이 진하게 느껴진다.
그는 또 '광화문 광장에 피어나는 불꽃/ 그것은 시민들의 입김으로 피운 혁명의 불꽃/(중략) 민주주의가 다시 온다면/ 억울한 자가 없는 세상 누구나 평등해지는/ 행복한 세상은 올까요/ 만약에 세상이 바뀐다면'(만약에)이라고 정의로운 세상에 대한 간절함을 드러낸다.
김옥경 시인은 기적처럼 새롭게 열리는 세상에서 마음 놓고 꿈을 꾸자고 제안한다. 다락방에서 탈출해 드넓은 광장에서 함께 환호하자고. 우리들의 신세계가 마침내 열리고 있다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