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이가 좋은 고소득자를 표적으로 한 '증세'에 이어, 소득이 있어도 한 푼의 세금(근로소득세)도 내지 않는 근로자(면세근로자)들을 '과세권' 안으로 넣으려는 움직임이 본격화되고 있다.
고소득 근로자 증세는 정부의 주도로, 면세근로자를 과세권에 편입시키려는 시도는 정치권의 주도로 단계를 밟아가는 모양새다.
'국민개세주의(國民皆稅主義)' 관점에서 볼 때 일정한 소득이 있다면 최소한의 납세 의무를 지는 것이 당연한 이치다. 그러나 특정 계층에만 세부담을 지우게 하고, 광범위하게 퍼져 있는 면세근로자를 그대로 둘 경우 과세형평성에 금이 갈 수밖에 없다.
"소득이 있는 곳에 세금 있다"
문재인 정부가 일명 부자를 대상으로 한 '핀셋 증세'를 하려는 데는 국정과제 이행에 따른 막대한 재원을 조달하기 위한 목적이 다분하다. 향후 5년 동안 공약 실행에 투입되는 재원은 무려 178조원에 육박하는 것으로 추산되고 있는 상태.
이 재원을 마련하고자 올해 세법개정안엔 전체 기업의 0.2%인 130여개 기업을 대상으로 법인세 과표구간(세금을 매기는 기준금액)에 2000억원 초과를 만들고, 세율을 현 22%에서 25%로 올렸다. 소득세 과표도 3억원 초과~5억원 이하 과표구간의 세율은 38%에서 40%로, 5억원 초과 구간은 40%에서 42%로 바꿨다.
이 같은 조치로 법인·소득세 수입은 각각 연(年) 2조6000억원, 1조800억원이 더 거둬질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문제는 상대적으로 조세저항이 덜한 고소득자만을 표적으로 한 증세를 했다는데 있다. 정부의 중장기 조세정책으로는 면세근로자를 축소하려는 방향성이 제시되고 있으나, 올해 세법개정안엔 어떠한 언급도 없었다.
정치권에선 오래 전부터 면세근로자 문제를 수면 위로 올리면서, 특정 계층의 세부담만을 늘리는 증세에 대해 부정적인 태도를 취하고 있다.
최근 바른정당 이종구 의원이 발표한 소득세법 일부개정안은 총급여액 기준 2000만원을 넘는 근로자에 대상으로 최소한 일정액 이상의 세금을 내게 하는 '최저한세' 도입이 주요 골자다.
근로자가 연말정산 때 받은 세액공제금액에 '월 1만원(연 12만원)'의 근로소득세를 부과하자는 것인데, 사실상 증세 초점은 면세근로자를 줄이는데 두었다. 연 2263억원(5년 1조1315억원)에 달하는 추가 세수가 발생한 만큼 증세에 따른 파급효과도 크다.
이 의원은 "모든 국민이 십시일반을 하여 복지 재원을 마련하자는 법안의 취지는 향후 '중부담-중복지' 논의에 있어 중요한 출발점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작년 국회예산정책처가 발표한 '근로소득세 면세자 증가 배경과 개선 방안' 보고서에 따르면 산출세액의 5%를 최소한의 소득세액으로 부과하는 방안이 제시된 바 있다. 약 553만명의 면세자 한 명당 평균 2만원을 추가로 납부, 이들이 과세자로 전환된다는 관측까지 내놨다.
세금 안내는 근로자 줄일 수 있을까
근로소득 면세자가 갑자기 늘어난 이유 중 하나는 2013년 소득공제를 세액공제를 전환하는 소득세법 개정이 꼽힌다. 여기에 2015년에 연말정산 후속 보완대책까지 이루어지면서 전체 근로소득 과세자의 절반이 세금(근로소득세)을 내지 않게 됐다.
국세청의 통계연보에 따르면 2013년 기준 납세대상자는 1636만명으로, 이 중 32.4%인 531만명이 면세자였다. 그러나 개정된 소득세법이 적용된 2014년에 면세자 비율은 48.1%(약 802만명)으로 크게 뛰었고, 2015년은 명목임금 상승 등의 영향을 받아 46.8%로 소폭 줄었다.
세법개정의 취지가 과세형평을 무너뜨린 모양새다.
면세자의 비율이 늘면서 근로소득세의 과세기반이 줄어들고 과세대상자의 세부담이 급증하고 있다. 실제 국회입법조사처가 최근 발표한 '국정감사 정책자'에 따르면 과세대상자 1인당 세부담이 2013년 201만6000원에서 2015년 306만1000원으로 올랐고, 과세대상자 유효세율도 같은 기간 4.9%에서 6.2%로 높아졌다.
이 같은 면세자 비율은 미국(35.0%), 캐나다(22.6%), 호주(23.1%), 독일(19.8%), 일본(15.8%) 등 세계 주요국과 비교해도 상당히 높은 편이다.
사실 이 문제가 '국민개세주의=면세자 비율 축소'처럼 단순하진 않다.
세금을 1만원도 내기 싫다는 '조세저항'이 심해서다.
면세자 축소 논의는 이미 국회에서 이루어진바 있다.
당시 국회 기획재정위원회는 소득세법 개정(소득공제→세액공제)에 따라 면세자 비율이 과도하게 올라간 부분을 우려하며 정부에 대책마련을 촉구했었다. 이에 기획재정부는 급여 구간별로 일정 금액 이상의 세금을 부과하는 최저한세 등을 제시하면서도 '저소득층의 세부담이 증가된다'는 이유를 들며 신중한 입장을 취했다.
올해도 정부의 조세정책 기조는 '눈치보기' 흐름이 엿보인다.
기재부가 세법을 설계하기 전 이 문제를 두고 조세재정연구원에 연구용역을 발주했는데, 결과에는 표준세액공제 축소, 세액공제 종합한도 설정, 근로소득공제 축소 등이 제시됐다. 그러나 이 자료를 바탕으로 한 공청회(4월)에선 각계 전문가들이 인위적인 증세에 고개를 저으면서 정부도 조용히 대세(?)에 편승했다.
기재부 관계자는 "면세자 축소와 관련한 의사결정을 위해 공청회를 열었는데 주류 의견들이 (임금상승에 따른)자연감소가 많았다"며 "그런 점들을 고려해서 올해 세법개정안을 넣지 않았다"고 밝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