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일 열린 국회 조세소위위원회.
올해 제출된 세법개정안을 심의하는 국회 조세소위원회(위원장 추경호 자유한국당 의원)가 한창 진행중인 가운데, '수정수입 세금계산서' 발급사유를 확대하는 세법개정안(정부안)을 둘러싸고 기획재정부와 관세청이 대립각을 세우고 있어 주목되고 있다.
개정안을 만든 기재부, 기재부의 외청 중 하나인 관세청이 서로 상반된 입장을 취하며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는 상하급 기관간 충돌하는 이례적인 현상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김영문 관세청장은 지난 22일 조세소위 회의장에 나타나 소위원들에게 정부 세법개정안에 대한 반대 입장을 밝힌 뒤, 관련 법안 심의가 진행된 지난 24일에는 직접 회의에 참석해 관세청의 입장을 적극 설명하기도 했다.
이날 기재부와 관세청의 입장을 전해들은 조세소위 위원들은 기재부와 관세청이 협의해 조정안을 마련해 올 것을 요구하며 상황을 종료시켰다.
수정수입 세금계산서 발급 사유, 줄였다 늘렸다…왜?
문제가 된 세법개정안은 관세조사시 적발한 탈루 부가가치세에 대한 수정수입 세금계산서 발급 사유를 확대하는 내용이다.
통상 수입거래는 국내거래와 달리 공급자를 특정할 수 없기 때문에 수입자가 신고한 과표에 따라 세관장이 세금계산서를 발급하고 수입자가 이 세금계산서를 매개로 부가가치세 매입세액공제를 받는다.
종전(2013년 전)까지는 법에서 세금계산서 발급 사유를 제한하지 않고 시행령에 따라 수입부가가치세를 과오납한 경우 세금계산서를 발급하도록 하고 있었다.
하지만 수입자가 과세표준을 과소 신고해 적발된 경우 부가가치세를 추징당하더라도 세금계산서를 발급받아 추징당한 부가가치세에 대해 매입세액공제를 받을 수 있어, 세관장의 추징액이 상쇄된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현행법은 지난 2013년 7월 개정된 것으로, 수입업자가 과세표준을 낮춰 신고해 부가가치세를 추징 당한 경우 수입자의 단순 착오이거나 귀책사유가 없는 경우에만 세금계산서를 발급해주도록 규정하고 있다.
하지만 단순 착오이거나 귀책사유가 없음을 수입업자가 직접 입증해야 하기 때문에 실제 단순 착오로 과표를 낮춰 신고를 했어도 세금계산서를 발급 받기가 어렵다는 지적이 터져 나왔다.
이에 정부는 올해 세법개정안에 세금계산서 발급사유에서 관세법상 벌칙사유에 해당하거나 수입업자의 고의·중과실이 있는 경우를 제외하도록 하는 내용을 담았다. 즉 벌칙사유가 아니거나 수입업자의 고의·중과실이 아니면 세금계산서를 발급 받을 수 있도록 한 것이다.
개정안이 통과되면 고의·중과실에 대한 '입증책임'이 관세청으로 넘어가기 때문에 납세자 입장에선 숨통이 트일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결국 누가 '입증'하느냐에 대한 문제
기재부는 2013년 법 개정으로 인해 세금계산서 발급이 과도하게 제한됐고 이에 따른 납세자의 권익이 상당부분 침해, 이를 바로잡아야 한다는 취지 아래 세법개정을 추진하게 됐다는 입장이다.
기재부 관계자는 "납세자가 단순 착오로 과표를 낮게 신고했음에도 입증이 어려워 현장에서 곤란을 겪는 업체들이 굉장히 많았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관세청은 정부 개정안으로 혜택을 보는 것은 대부분 다국적 기업인데다, 이들에 대한 고의·중과실 입증은 사실상 불가능 하다는 주장이다. 쉽게 말해 입증책임을 관세청이 떠 안게 될 경우 관세행정 집행에 혼란이 가중된다는 것이다.
기재위 수석 전문위원실도 검토보고서를 통해 "개정안은 실질과세 원칙에 따라 납세자에게 원래 돌려주어야 할 세금을 돌려주는 것으로 조세정의 실현에 부합하는 측면이 있다"면서도 "세금계산서 미발급액 1443억원 중 자료 미제출로 입증이 불가능한 59.6%에 대한 입증책임이 관세청이 부담하게 되고 혜택은 대기업과 다국적 기업에게 돌아갈 가능성이 높다는 지적이 있다"고 밝혔다.
또한 이날 회의장에 참석한 김영문 관세청장은 "지하경제 양성화를 추진하면서 그동안 관세행정이 성과주의 위주로 진행되면서 무리한 측면이 있었던 것은 확실하다. 하지만 관세청은 성실신고를 기반으로 관세행정을 운영할 수밖에 없다"면서 "이번 개정안은 성실신고 유인 효과를 없애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세금계산서 발급과 관련해 현재 제도를 (시행령 등을 통해)많이 바꿔놨고 이를 강화해서 추진하면 된다. 굳이 법을 개정해야 한다는 것에 대해 의문을 갖고 있다"고 덧붙였다.
실제 관세청은 지난해 8월 '수정수입세금계산서 발급에 관한 운영지침'을 개정하고 올해 2월 '부가가치세법 시행령'을 개정해 이미 발급대상을 확대한 바 있고, 이에 따라 올해 상반기에 259억8000만원의 세액에 대해 추가로 세금계산서를 발급한 것으로 나타났다.
양측의 주장을 들은 조세소위 위원들은 납세자 권리 보호라는 제도의 취지에 대해선 공감하지만 입증 책임을 관세청에 넘기는 부분은 우려된다는 입장을 취했다.
국민의당 이언주 의원은 "경미한 과실에 대해서는 수정세금계산서를 발급해주는 것이 맞는 것 같다"며 "하지만 입증은 수정을 요구하는 쪽에서 하는 것이 맞다. 관세청이 이를 입증하기는 곤란할 것이다"라고 말했다.
같은 당 박주현 의원도 "관세청으로 입증책임을 넘기는 것은 좀 그렇고 현행법에 경미한 과실 하나 집어넣어서 수입자가 과실을 입증하는 경우 수정계산서를 발급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맞다"고 말했다.
정부는 경미한 과실에 대해선 수정세금계산서 발급을 해줘야 한다는 의원들의 주장에 동의하면서도 입증책임 부분은 관세청과 협의해서 진행하겠다고 밝혔다.
추경호 조세소위위원장은 "현장에서 납세자가 불편을 겪는 애로사항이 있을 수 있다"며 "기재부와 관세청이 기본적인 수정안 또는 조정안을 만들어서 다음 회의 때 제안해 달라"고 결론지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