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작하는 말
안녕하십니까. 이번에 54회 세무사시험에 합격한 전경호입니다.
우선 드디어 합격수기를 쓸 수 있게 되어 정말 기쁩니다. 공부하는동안 "감사합니다", "저는 너무나 행복합니다" 이 두 문장을 늘 되뇌이며 살아왔는데 그게 현실이 된 것이 너무나 신기하고 좋습니다.
사실 그동안의 기억도 잘 안나고 뭘 써야할지도 모르겠지만 혹시라도 누군가에게 도움이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으로 하나하나 적어보겠습니다.
전 학창시절부터 딱히 공부를 열심히 하는 스타일은 아니었습니다. 컴퓨터공학과를 졸업하고 컴퓨터그래픽으로 먹고 살던 사람이었습니다. 잦은 야근과 적은 임금 그리고 일한만큼의 대가를 받지 못하는 현실에 다른 직업을 찾고 싶었습니다.
정말 완전히 다른 인생을 살고 싶었고 그럴 수 있는 직업을 찾다가 세무사라는 직업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 직업이라면 내가 일한만큼의 수익과 여유로운 삶을 살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했고 실제로 그렇게 사시는 분들을 보니 도전해봐야겠다고 다짐하게 되었습니다.
또 어차피 시간을 투자해서 공부를 할 거면 합격 후 또다시 남의 직원이 되는 것은 싫었던 것이 가장 큰 이유입니다.
이런저런 이유로 시작한 공부는 정말 쉽지 않더군요. 법이라는 것은 온통 처음 보는 단어들 뿐이었고 회계, 재정학, 거기다 영어까지.. 요즘말로 정말 1도 모르겠더군요.
대학을 졸업하고 몇년동안 책이라고는 프로그램메뉴얼 정도만 보던 사람이라 처음엔 모든 것이 낯설고 어려웠습니다.
□ 1, 2차 시험대비 전반적인 학습방법
생초보인 제가 가장 적응이 빨랐던 것은 원가회계였습니다. 이해도 잘되고 재미있더군요. 재무회계나 세법과는 달리 계산과정이 간단하고 들어가는 개념이 적은 것이 이유였습니다.
맞은 문제가 늘어갈 수록 재미도 붙고 많은 시간을 투자했고 그러다 보니 시간이 지날수록 실력이 늘었던 것 같습니다. 또 해가 갈수록 투자하는 시간도 줄어들었죠. 자연히 효자과목이 되었습니다.
반면에 재무회계는 과락만 면하면 된다며 개념보다 공식이나 틀 위주로 강의하던 분의 강의를 시작으로 아주 어렵게 공부했습니다. 끝까지 발목을 잡았던 과목이었으나 생각보다 간단한 방법으로 탈출할 수 있었습니다.
연습서는 정말 너무 어렵고 문제도 커서 이런 걸 어떻게 푸나 싶고 책펴기가 겁이 났었는데 객관식 기출문제를 반복해서 풀어보는 방법으로 해결했습니다. 기출을 반복함으로써 주로 출제되는 문제에대한 이해도를 높이다 보니 처음보는 문제라도 풀어낼 수 있었습니다.
재정학은 외워야한다는 생각으로 공부하다가 고배를 마신 후 이해를 해야 문제를 풀 수 있다는 강사님의 강의를 듣고 나서야 점수가 오르더군요. 강의를 듣고 필기한 것을 떠올리며 자꾸 이야기를 꾸미는 것이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세법은 정말 지옥 같았습니다. 1차 때는 '아'다르고 '어' 다른 지문들의 홍수속에서, 2차때는 많은 분량 때문에 힘들었습니다. 처음엔 계산문제가 너무 어려웠는데, 나중으로 갈수록 계산문제를 토대로 세법조문을 이해하는 것이 도움이 많이 되었던 것 같습니다.
선택과목은 상법이었는데 이 역시도 많은 양과 생소한 내용으로 어려움을 많이 겪었습니다.
다른 과목들과 마찬가지로 이해를 토대로 자주 보면서 암기를 하다보니 좋은 점수를 받을 수 있었습니다.
최근 세무사 2차시험의 출제경향을 분석해보면 회계학1부인 재무,원가회계와 회계학2부인 세무회계의 경우 아주 어려운 문제가 많이 나오는게 아니라 기본적인 문제들과 건들지 말라는 폭탄들이 섞여서 나오는 것 같습니다.
어려운 문제를 틀리는 것이 아니라 당연히 맞춰야 할 문제를 틀리는 것이 패착이 아닌가 싶습니다. 아는 문제를 정확하게 풀기위해서는 많은 문제를 풀기보다는 기본적인 문제를 여러번 반복하여 몸이 기억할 정도로 만드는 것이 가장 중요하면서도 빠르게 합격 할 수 있는 길이라 생각합니다.
한정된 시간 안에서 하기 위해서는 모든 문제를 다 건드리지 않고 버릴것은 과감하게 버리는 것도 중요합니다. 자신있는 문제들을 검산을 거쳐 기본적인 점수를 확보해 놓고 남는 시간에 추가적인 점수를 얻는 것이 좋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세법학의 경우도 아주 지엽적인 문제보다는 학원의 강사분들이 나온다고 말씀하시는 대중적인 문제들을 얼마나 정확하고 깔끔하게 쓰는지가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최근에 응시생이 증가하면서 높은 점수의 통문제보다는 작은 배점의 조각 문제들이 나오는데 그것들을 배점에 맞게 쓸 수 있는 능력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 합격의 노하우
2012년부터 50회 세무사를 목표로 시작한 것이 어느덧 햇수로는 6년을 공부했습니다.
6년간 전업으로 공부했고 평균공부시간은 7~8시간 정도 였던것 같습니다.
학원은 공부를 시작한 첫해 주말반으로 실강을 들었고 객관식 종합반 한번, 유예3기 두 번을 들었습니다. 실강보다 인강을 선호했는데. 실강을 들어보니 내용은 좋으나 말이 느린 강사의 강의를 듣는 것이 너무 고역이었기 때문입니다. 말의 톤도 일정하고 낮은데 느리기까지 한데 그걸 몇시간씩 앉아서 듣는다는 것이 정말 힘들었습니다. 그래서 나중엔 전부 인강으로 돌려서 1.7~8배속으로 빠르게 들었습니다.
몇년만에 처음하는 공부라 정말 이 많은 양을 어떻게 외워야 할지 모르겠더군요.
어제 본 것을 오늘 잊어버리는 일이 수두룩했습니다. 강의를 듣다가 후반부에 가서 뒤돌아 보면 내 책에 누군가 다른 사람이 낙서 해놓은 것을 발견하기도 합니다. 물론 제가 한 것이지만요. 그렇게 어려워하던 암기는 결국 다음 방법으로 해결 할 수 있었습니다.
첫 번째 방법은 그날 그날 공부일기를 쓰는 것이었습니다.
처음엔 그냥 오늘은 어떤 과목을 했다. 이정도만 쓰다가 나중엔 왼쪽에 줄이 그어진 노트에 풀었던 문제의 번호를 쓰고 그 옆에 간단하게 이 문제에 대한 요약이나 틀린 이유, 몰랐던 개념들을 적었습니다. 회독수가 올라가고 노트가 한권, 두권이 되면서 이 문제는 지난번에도 틀렸는데 또 틀렸네, 지난번엔 완전 틀렸던 걸 이번엔 완전히 다 맞췄네 하면서 칭찬도 써주고 그랬습니다.
저한텐 이게 많이들 하시는 오답노트 역할을 했는데 매일 공부 마치기 전에 하루를 마감할 때 한번보고 다음날 시작하면서 또 한번 보고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학습이 되는 것을 느꼈습니다.
첫 번째 방법은 주로 회계학 1, 2부를 공부할 때 유용하게 썼다면 두 번째 방법으로 세법학을 암기할 때 작은 메모지에 그날 공부한 것을 타이틀이나 소제목 위주로 써서 한두장씩 들고 다니면서 그 내용을 떠올리려 노력한 것이었습니다.
처음엔 무작정 쓰면서 외워보려 했지만 손가락도 손목도 남아나질 않아서 써본 방법인데, 이건 힘도 덜 들었고 식사시간이나 산책할 때 주머니에 몇장씩 넣어가지고 다니면서 계속 생각하니까 잡생각도 안들고 좋았던 것 같습니다.
황농문 교수님의 몰입이란 책에서 1초도 안쉬고 공부하기라는 말이 나왔었는데 그걸 가능하게 해주는 도구 정도로 생각하시면 될 것 같습니다.
처음엔 뭔가를 생각해보려해도 아까 뭐했지? 어젠 뭐했지? 하면서 자책만 했었는데 작은 메모지에 간단하게 적은 목차들이 큰 도움을 주었습니다.
◆…전경호씨가 욕실 거울에 써놓은 내용. 전경호씨는 "이것은 합격 후 쓴 것이 아니고 올해 4월부터 써놓은 것이다"며 "합격의 다른 요인도 많지만 실력이 비슷하다면 누가 더 자신을 믿고 확신하는지에 달려있다"고 말했다. 전경호씨 제공
□ 슬럼프 극복법과 체력 관리
제가 시도했던 방법은 날이 더워지면서 점점 지쳐갈 때부터 막판까지 썼던 방법인데요.
쉴 때 즐겨보던 판타지 소설에서 아이디어를 얻었습니다. 소설속의 주인공이 우연히 현실을 게임같이 살 수 있는 능력을 얻어서 레벨을 올리기 위해 열심히 노력한다는 내용의 만화같은 소설이었는데요. 키득거리며 보다가 왜 내 삶은 이렇게 힘들기만 한건가 나도 이런 능력있으면 좋겠다 싶었죠. 그래서 문득 공부도 이런식으로 해보면 어떨까 싶은 겁니다.
하루하루의 삶을 RPG게임 같이 경험치 기준을 정해 놓고 일정한 점수를 넘으면 레벨이 올라가는 규칙을 만들어 놓고 제 행동들을 점수화하기 시작했습니다.
레벨은 0부터 100까지가 있고 남은 기간동안 60이 되면 합격, 70이 되면 차석, 80이 넘으면 수석이다라는 생각을 가지고 실행에 옮겼습니다.
각 레벨당 100점부터 시작해서 레벨이 올라갈수록 얻어야 하는 점수도 5점씩 커지는거죠.
아침7시 기상 10점, 50분 쉬지 않고 공부하면 30점 10분이 지날때마다 +5점, 밥먹으러갈 때 암기카드 가져가기 5점, 운동가기 30점, 군것질하면 -30점, 오후7시 이전에 집에가면 -100점 등등 그날그날의 행동들을 정해서 레벨을 올리기 시작했습니다. 시험보기 전날의 레벨은 83. 목표한 100은 못 채웠지만 그래도 이 방법 덕분에 더운 여름 나른해질 시기를 버텼습니다.
아울러 체력관리는 하루 한시간씩 하는 단체운동 같은걸 했는데 혼자 헬스장에서 낑낑대는것 보다 훨씬 재미있기도 했고 다양한 스트레칭들도 배워서 공부하는 내내 잘 활용했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가끔 지옥의 타바타운동이 끝나면 불을 다 끄고 2~3분정도 눈을 감고 숨을 고르며 자신이 원하는 이미지를 상상하라고 했는데 이게 정말 좋았습니다.
부모님께 합격했다는 전화를 하는 것을 상상하며 "할 수 있다"를 수없이 외쳤습니다.
상상하고 이미지화 하세요. 현실로 이루어집니다. 누군가의 말처럼 상상을 상상으로만 두지말고 실현시키는 겁니다.
□ 마치면서
실패는 그게 몇 번이든 늘 쓰라립니다. 다시 시작하기 힘들다는 것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실패를 실패라 부르지 말고 경험을 한번더 했다고 생각하면 실패는 더이상 실패가 아닌거라고 생각합니다. 값진 경험을 더 쌓은 겁니다. 결국 그것들이 모여서 끝내 이룰 수 있는 원동력이 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제발 스마트폰을 멀리 하시기 바랍니다.
이 작은 것 안에 재밌는 것들이 너무나도 많습니다. 독서실 갈 때만큼은 안들고 가려고 노력하시기 바랍니다. 스마트폰과 멀어지는 것이 공부할 때 첫 번째 지켜야 할 일인 것 같습니다.
공부를 하면서 늘 다짐 했던 것이 있습니다. 경쟁은 이걸로 끝이다.
내가 세무사가 된다면 경쟁보다는 상생을 위해서 살아야겠다고 말입니다.
전문적인 분야를 개척하여 다른 분들과 윈윈하는 세무사가 되고싶습니다.
그리고 소외되고 어려운 분들을 도울 수 있었으면 좋겠고 그럴만한 능력을 갖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끝으로 몇 년간 저를 위해 수없이 많은 밤 기도하셨을 부모님과 부족한 오빠를 살뜰히 챙겨준 곧 시집가는 예쁜 내동생에게 이 모든 기쁨과 영광을 돌리고 싶습니다.
공부를 하면서야 비로소 가족이라는 소중함을 깨닫게 되어 죄송스럽기도 하고, 이제라도 좋은 소식 알려드릴 수 있어 너무 기쁩니다.
그리고 여기까지 오기까지 너무나 많은 도움과 응원을 아끼지 않으셨던 멘토 송세무사님과 방세무사님, 첫 학원에서부터 알게되어 저를 너무나 아껴주셨던 현무형님, 응원과 축하를 아끼지 않으셨던 많은 친척분들, 친구들, 그리고 스터디를 함께 했던 분들, 그 외에 저를 아시는 모든 분들게 감사의 인사를 드리고 싶습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저는 너무나 행복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