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료=조세일보 DB
우리나라가 1999년 11월 외화 부족으로 IMF(국제통화기금)에 지원을 요청하면서 겪은 외환위기는 환율의 무서움을 그대로 보여줬다.
당시 달러당 900원 수준이었던 원화는 불과 몇개월만에 2000원에 육박하면서 대한민국 경제를 패닉으로 몰아넣었다. 경제가 침몰하면서 구조조정이 본격화됐고 은행권도 모두 자멸하는 분위기였다.
1998년에는 제일은행 40여개 점포가 한꺼번에 문을 닫았다. 은행을 살리기 위해 회사를 떠나야만 했던 선배들과 살아남은 직원들이 울면서 동료를 보내는 모습을 담은 영상은 이른바 '눈물의 비디오'로 국민들의 마음을 울렸다.
대한민국 어느 직장에서도 구조조정이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여졌고 그동안 고성장 경제 속에서 냉대 받았던 공무원과 교사직이 최고의 직장으로 변하는 전환점이 됐다.
IMF 시대를 마무리하면서 통화스와프에 대한 관심은 더욱 높아졌다. 통화스와프만 제대로 가동된다면 외환위기와 같은 전철을 두번다시 밟지 않게 될 것이라는 기대감도 컸다.
스와프는 통상 금리 변동에 따른 위험을 헤지하거나 스프레드(기준금리와 실제금리의 차이)를 이용해 안정적인 수익을 꾀하는 금융공학 투자기법으로도 활용된다.
통화스와프는 자국의 화폐를 스와프(swap, 교환)한다는 것을 말하며 서로 다른 통화를 미리 약정된 환율에 따라 일정한 시점에 교환하는 외환거래다. 통화스와프 계약이 체결돼 있으면 양국은 필요할 때 자국 통화를 상대방 중앙은행에 맡기고 그에 상응하는 외화를 빌려와 쓸 수 있다.
2015년은 한국의 통화스와프 역사의 중요한 한 해 였다.
한국은 일본과 2001년 7월 20억 달러 규모의 첫 통화스와프 계약을 맺었고 스와프 규모가 2008년 300억 달러, 2011년 700억 달러까지 증액됐다.
2012년 8월 이명박 전 대통령의 독도 방문을 계기로 한·일 관계가 악화하면서 그해 10월 만기가 도래한 570억달러 규모의 통화스와프가 연장되지 않았고 잔여 금액 100억 달러 규모도 2015년 2월 만기가 끝나면서 완전 종료됐다.
일본과의 통화스와프가 종료되자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를 비롯해 재계는 일본과의 통화스와프 체결 필요성을 호소했다.
허창수 전경련 회장은 그해 10월 26일 일본 도쿄 소재 게이단렌(經團連)회관에서 열린 전경련과 게이단렌의 한일 국교정상화 50주년 기념 심포지엄에서 “통화 안전망 확보를 위해 아시아의 중심국인 한국과 일본이 나서야 할 것”이라며 “한·일 앙국간 중단된 통화스와프 재개도 고려해 볼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일본 게이단렌의 사카키바라 사다유키 회장은 “2015년 11월 1일에 박근혜 대통령과 아베 신조 총리 간 정상회담이 예정돼 있다”며 “양호한 경제 관계의 전제로서 정치 외교 양면에서 안정적인 관계를 구축하는 것이 중요하다”며 발을 뺏다.
2015년 이후 한·일 통화스와프 체결은 이뤄지지 못했지만 2015년 12월 28일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문제를 두고 한·일 외교장관 간 협상이 타결됐고 한일 양국에서 위안부 지원 재단을 설립해 일본 측에서 출연기금으로 10억엔을 지원한다는 합의문이 발표됐다.
일본측이 한·일 통화스와프를 위안부 문제와 연계시켜 최대한 정치적 효과를 누리려는 것이 아니냐는 의문을 자아내는 대목이기도 하다. 일본은 2017년 1월 위안부 소녀상 문제로 통화스와프 논의를 일방적으로 중단했다.
한·일 통화스와프 종료로 환율에 대한 불안심리가 잠재된 상황속에서 2017년 10월 한·중 통화스와프가 사드 갈등속에서도 계약 체결됐다.
한국과 중국은 2009년 4월 한국은행과 중국 인민은행이 1800억 위안 규모의 원·위안화 통화스와프 계약을 처음 체결했고 2011년 10월 규모를 3600억 위안(560억 달러)으로 늘렸고 2014년 10월에 만기를 3년 연장했다.
한·중 양국이 지난해 10월 13일 같은 규모의 통화스와프 계약을 새로 체결했다. 새로운 스와프계약이지만 재연장 성격을 띠고 있다.
한·중 통화스와프 체결은 지난해 국민이 뽑은 기획재정부의 최고의 정책으로 선정됐다.
한·중 통화스와프에 이어 한국과 캐나다, 한국과 스위스와의 통화스와프 체결은 원화에 대한 불안심리를 해소해 줄 뿐 아니라 원화의 국제 위상에도 커다란 기여를 하고 있다.
◆…김동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가운데) 2017년 11월 16일 정부서울청사에서 한·캐나다 통화스와프 협정 체결 내용을 브리핑하고 있다. 사진=조세일보 DB
한국 캐나다 양국 중앙은행은 자국의 금융안정을 위해 필요하다고 판단될 경우 통화스와프를 통해 상대국 자금을 자국 금융기관에 수혈할 수 있다.
한국은 지난 9일에는 스위스과 100억 스위스프랑(약 106억 달러, 11조2000억원) 규모의 통화스와프 계약을 체결했다.
스위스 프랑은 달러, 유로화, 엔화, 파운드, 캐나다 달러와 함께 6대 기축통화국 중 하나로 속한다. 한국은 이중 2개국과 통화스와프를 체결하게 됐다. 한국은 이로써 통화스와프 체결 국가가 모두 7개국으로 늘어났다.
문재인 정부들어 외국과의 통화스와프 체결이 늘고 외환보유액도 증가하는 추세이어서 원화 환율은 대외적 충격속에서도 안정화 됐다는 평이다. 문재인 정부의 가장 큰 환율 시험무대는 일본과의 통화스와프다.
일본 정부는 위안부 소녀상을 트집 잡아 통화스와프 협상을 중단한 상태다. 우리 정부 또한 4000억 달러에 육박하는 외환보유액을 갖고 있어 일본에 기대지 않겠다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환율의 세계에서는 일본 정부도 환율을 자만할 수 없는 처지다.
일본은 마이너스 실질금리를 맞이해 시중에 엔화를 풀어 넣음으로써 엔화 약세를 유도하면서 경제성장을 꾀하는 정책을 펴나가고 있다. 그러나 국제 환율시장은 결코 일본 정부의 뜻대로 되는 만만한 시장이 아니다.
더욱이 미국 트럼프 행정부는 일본 정부에 강력한 엔고 압력을 행사하고 있고 엔고 기조하에서는 또다시 일본경제가 실질금리와 맞물려 저성장의 늪에서 헤어나지 못할 수도 있다.
일본 엔화가 급격한 변동 위험성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한국과 중국의 통화와도 손을 잡을 필요성이 제기되고 있다. 일본이 엔화 환율변동을 버티지 못하고 금리와 환율에서 실책을 빚게 되면 또다시 잃어버린 20년을 답습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일본 스스로 엔화 환율변동을 버티지 못하고 한국측에 통화스와프 체결을 제의해 온다면 문재인 정부의 환율정책은 역사에 남을 이정표를 세우게 될 것으로 보인다.
정부의 환율정책은 그 어느때보다 높은 사기에 충만해 있다. 이제는 대한민국 원화를 세계 주요 결제통화의 반열에 올려 놓을 수 있는 방안을 강구해야 할 때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