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합에 의한 소비자권익 침해인가? 아닌가?
공정거래위원회가 한국공인회계사회의 최소감사시간 설정이 담합이라며 중징계를 내린 것에 대해 한국공인회계사회가 “공정위 제재는 외부감사의 공공재 성격을 잘못 이해한 결과”라며 반발하고 나섰다.
이는 지난 2014년 12월 회계사회가 300세대 이상 아파트 외부 회계감사 시간을 최소 100시간으로 정하고 구성사업자에게 이를 철저히 준수할 것과 준수여부를 중점 감사할 예정이라고 통지한 것이 발단이 됐다.
공정위는 이 행위가 가격 경쟁을 제한한 사업자단체 금지행위에 해당된다고 결정한 반면 회계사회는 그동안 문제가 돼 왔던 아파트회계감사를 철저히 하기 위해서는 필요했던 조치라고 주장하고 있다.
공정위는 회계사회와 담당 임원 2인에 대해 형사 고발, 과징금 5억원, 시정명령의 중징계를 내렸고 회계사회는 법적 대응에 나설 것으로 보여 두 단체간 갈등이 깊어지는 모습이다.
공정위 “최소감사시간은 가격결정 행위” vs 회계사회 “감사품질 향상 조치”
공정거래위원회는 회계사회의 최소감사시간 설정이 가격경쟁을 제한하는 방식으로 소비자권익을 침해하는 담합 행위라 보고 있다.
공정거래법에 따르면 사업자는 계약·협정·결의 기타 어떠한 방법으로도 다른 사업자와 공동으로 부당하게 경쟁을 제한하는 행위를 금지하고 있고 그 예로 가격을 결정·유지 또는 변경하는 행위를 들고 있다.
문제의 핵심은 회계사회가 최소감사시간 100시간 설정을 한 행위가 가격 결정 행위인지에 대한 여부다.
회계사회는 최소감사시간 설정은 아파트 회계품질 향상을 위한 최소한의 조치일 뿐 담합이 아니라는 주장을 하고 있다.
회계사회 관계자는 “최소감사시간을 규정하는 행위는 감사 품질을 높이기 위한 것이라며 가격담합은 아니다”고 설명했다.
반면 공정위는 회계사회의 최소감사시간 설정도 가격을 결정하는 요소에 해당되기 때문에 공정거래법 위반이라는 입장이다.
공정위 관계자는 “회계사회가 구성사업자에게 최소감사시간을 임의로 제시하고 따르지 않으면 제재를 하겠다고 한 행위는 공정거래법 위반이다”고 설명했다.
공정위, 회계감사는 공공재 주장에 “주택법엔 표준감사시간 규정 안돼”
회계사회는 공공재인 회계감사라는 특수성을 고려하지 않은 채 공정위가 법률상의 해석을 지나치게 엄격히 적용했다며 억울하다는 입장이다.
국회·금융위도 회계감사가 공공재 성격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인식하고 오히려 자유경쟁이 소비자 후생을 악화시킨다는 점을 인식하고 있는데 이번 결정은 공정위의 회계감사에 대한 몰이해에서 비롯됐다는 것.
실제 이번 공정위의 제재의 이유로 들고 있는 최소감사시간은 표준감사시간제라는 이름으로 지난해 9월 국회에서 통과된 외부감사법 개정에 따라 올해 11월부터 일반 회사들을 대상으로 도입될 예정이다.
공정위는 비록 아파트단지의 외부회계감사 품질제고와 투명성 확보가 필요하다해도 어떠한 이유로든 가격에 영향을 미쳐 구성사업자간 경쟁을 제한하는 것은 담합이라는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
공정위 관계자는 “회계감사 품질제고는 법령의 제개정이나 제도개선으로 풀어야 한다”며 “사업자단체가 구성사업자에게 최소감사시간을 제시하고 따르지 않으면 제재하겠다는 것은 공정거래법 위반”이라고 말했다.
또 “아파트 회계감사는 주택법이 근거법인데 당시 이 법에는 회계사회가 주장하는 표준감사시간이 규정돼 있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이에 대해 회계사회 관계자는 “법을 엄격하게 해석하더라도 전후사정을 고려야 하는 것”이라며 “금융위조차 회계사회가 기획한 최소감사시간을 참고자료로 쓰는 상황에서 법정 최대 과징금과 개인에게도 형사고발을 받을 만큼 회계사회가 나쁜 행위를 한 지는 의문”이라고 반박했다.
청년 회계사들 “공정위 결정은 입법 만능주의”…아파트 회계감사 무용론 제기
공정위의 이번 결정으로 회계업계 일각에서는 아파트 회계감사의 무용론까지 나오고 있다.
청년공인회계사회는 공정위 결정에 대해 성명을 내고 “공정위가 최소한의 아파트 감사 품질을 유지하자는 결의까지 규제한다면 회계사들이 더 이상 할 수 있는 역할이 없다”며 “차라리 요식행위로 전락하게 될 아파트 회계감사 의무화를 폐지하고자 건의한다”고 밝혔다.
이총희 청년공인회계사회 회장은 “공정위의 이번 결정은 입법만능주의의 전형”이라며 “최소감사시간은 가격 담합으로 얻을 수 있는 실익이 없으며 공정위가 아파트 회계감사 현실을 전혀 모르고 의사결정을 했거나 알고 있다 해도 부처 입장만 고려한 소탐대실의 조치라고 보인다”고 주장했다.
이영한 서울시립대 교수는 “최소감사시간은 가격에 영향을 주기위한 것이라기 보다는 최저감사품질을 유지하기 위한 것이고 회계사회가 제시한 100시간은 아무리 작은 조직이라 하더라도 최소한으로 투입될 수 밖에 없는 시간”이라고 견해를 밝혔다.
그는 “그 이하로 감사시간이 투입됐다는 이야기는 감사품질 자체를 신뢰할 수 없는 수준이기에 회계사회가 가이드라인을 준 것 같다”며 “가격 담합의 이슈로 묶을 문제는 아닌 것 같다”고 설명했다.
최소감사시간의 설정이 담합인지, 공정위의 무리한 법해석인지에 대한 결정은 회계사회와 공정위간 법정 다툼으로 번질 전망이다. 이 사건은 법해석 문제 뿐 아니라 향후 아파트 회계감사 정착에 대한 방향성을 가늠하게 될 것으로 보여 주목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