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일 오후 여의도 국회 앞 잔디밭에서 만난 윤옥선 '군·경 의문사 진상규명과 폭력근절을 위한 가족협의회'(군가협) 회장은 이같이 말한 뒤 "'모든 잘못은 죽은 자에게 있다'는 식으로 접근하니 군내 사망 사고 문제가 해결이 안되는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같은 장소에 모여있는 군가협의 다른 회원들도 자신의 경험을 털어놓으며 "사망 사고가 발생했을 때 군 당국은 자살로 몰아가는 경향이 있다"고 입을 모았다. 이들은 또 "떠난 이, 죽은 사람, 사건 발생 시기와 장소가 달라도 군 당국의 조사 방식 및 사망 원인 분석은 천편일률적"이라고 지적했다.
모든 잘못은 죽은 자에게 있다?
사망 사고 원인은 거의 대부분 가정 불화, 이성 문제, 내성적이고 나약한 성격에서 비롯된 부적응 중에서 지목되며 구조적인 문제에 대한 분석이나 심층적 원인 조사는 이뤄지지 않는다는 게 이들의 주장이다.
이동학씨는 "처음에 통보받을 때 '자식이 자살했다'는 말을 들은 사람도 있다"고 운을 뗀 뒤 "나중에 유족이 이 부분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면 '그런 말 한 적 없다'고 부인한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이씨는 2002년 8월 강원도에서 근무하던 조카를 떠나보냈다.
조남희씨는 "제대로 수사하기도 전에 이미 결론을 내려놓고 기존 매뉴얼에서 그럴듯한 원인을 하나 붙여 개인 성격 탓이나 집안 문제로 돌리는 것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들 수밖에 없다"고 전했다. 2002년 5월 9일, 조씨는 그 전날인 어버이날 저녁 통화했던 아들이 '자살했다'는 충격적인 소식을 들어야만 했다.
이러한 의구심은 조사 과정을 거치며 증폭된다. 이들은 "▲유족에게 바로 현장을 보여주는 것도 아니고 ▲의문을 제기해도 속시원한 대답을 듣기 어려우며 ▲유족은 배제된 채 군인들만으로 진행된 조사를 통해 천편일률적으로 제시되는 '자살'이라는 결론을 받아들일 수 있겠느냐"고 반문했다.
군대에서 일어난 사건에 대해 군인들만으로는 제대로 된 조사가 이뤄진 적이 거의 없었던 만큼 유족과 민간단체의 참여가 필수적이라는 게 이들의 주장이다.
아들을 데려가 놓고 '아들에게 뭔가 문제가 있어 죽었다'며 주검으로 돌려보내는 국가와 군 당국의 결론을 받아들일 수 없는 유족들. 이들 중 떠나간 장병 2l명의 가족들은 제대로 진상이 규명되기 전에는 아들을 떠나보낼 수 없다며 병원 냉동실에 시신을 보관한 채 장례를 미루고 있다고 한다.
서석원 군가협 간사는 "21건 중 대부분은 사망한 지 1년이 넘었으며 해군에서 근무하던 중 1998년 9월에 떠난 김모 중위의 시신은 7년째 분당의 한 병원에 보관된 상태"라고 전했다.
국방위 통과 법안은 '함량 미달'... "자료 접근권·조사권 충분히 보장돼야"
이들은 그동안 '올바른 과거청산을 위한 범국민위원회' 등 시민사회 단체들과 함께 과거사 진상규명법에서 군 의문사 사건을 제대로 조사할 것을 촉구해왔다. 그러나 지난 22일 국회 국방위를 통과한 '군 의문사 진상규명 특별법'에 대해서는 매우 비판적이다.
이들이 22일 통과된 법안을 비판하는 이유는 지난 3일 제정된 '진실과 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 기본법'(과거사법)에서 군 의문사를 분리했기 때문만은 아니다. 그보다 더 중요한 이유는 ▲진상규명위원회의 상임위원을 1인, 위원을 7인으로 한정하는 등 조사 인력을 불충분하게 배정한 점 ▲누더기법이라고 비판받는 '진실과 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 기본법'(과거사법)에도 보장돼 있는 '자료 제출 거부시 열람권'마저 반영되지 않은 점 ▲진상규명을 위해 필수적인 '압수수색영장 청구권' 등이 부여되지 않은 점 등 진상규명을 어렵게 만드는 내용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윤 회장은 "구조가 폐쇄적인 데다 그동안 많은 사안을 은폐해온 군의 특수성을 감안할 때 자료 접근권 및 조사권을 제한하는 22일 통과 법안은 실효성 있는 의문사 조사를 실제로 하지 않겠다는 것"이라고 강도 높게 비판했다.
이들은 앞으로 국회 법사위 및 본회의에서 내용을 보완해 실효성 있는 법률을 만들 것을 촉구하고 있다. 국회 앞 농성과 1인 시위를 계속해온 이들은 이날도 "목에 깁스를 한 것처럼 뻣뻣하기만 한" 국회의원들을 만나기 위해 국회를 찾았다.
이들은 "이번 연천 사건 같은 비참한 사태 및 계속 이어지는 군 의문사 사건들이 재발되지 않기를 진정으로 바라고 있다면 군 의문사 진상을 제대로 규명해야 한다"고 한결같이 말하고 있다. <오마이뉴스 제공>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