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서초구의 한 상호저축은행 지점은 최근 '아파트 담보대출 시세의 80% 이상' 이라는 문구가 적힌 대형 현수막을 지점에 내걸고 대대적인 주택담보대출 유치에 나섰다. 이 지점을 통해 문의한 결과 300세대 이상의 대단지 아파트의 경우 투기지역 여부와 상관없이 최대 85%까지 대출이 가능했다. 금융당국에서 제한하고 있는 70%보다 무려 15%포인트 추가대출이 가능한 상황이다.
연 8.4% 금리로 최대 90%까지 대출가능
이 지점 관계자는 "물건이 좋은 경우 담보대출 차주의 소득규모에 따라 추가로 대출한도 조정이 가능하다"고 밝혔다. 연 8.4%의 금리를 적용해 최대 90%까지도 대출을 늘릴 수 있다는 것이 이 관계자의 설명이다.
근처의 단위농협과 신협에서도 사정은 비슷했다. 단위농협에서는 33평 이상 중대형 D아파트의 경우 연 7.5~8%의 금리로 최대 75%까지 대출이 가능하다. 신협은 이 보다 높아 최대 80~85%까지 대출을 해준다.
인근 방배동의 '동부 센트레빌' 49평형을 매입하면서 담보대출을 문의하기 위해 저축은행을 찾은 최아무개씨는 "은행에 비해 금리가 높기는 해도 1억원이상 더 대출을 받을 수 있어 이곳을 찾았다"고 말했다. 그는 "조만간 정부에서 담보인정비율을 줄인다고 해 서둘러 대출을 받을 계획"이라고 덧붙였다.
방배동 '동부 센트레빌' 49평형의 경우 저축은행, 단위농협을 통해서는 최대 6억 6000만원까지 대출이 가능한 반면 은행권은 약 5억3000만원정도 대출이 가능한 것으로 조사됐다.
2금융권 대출 유치경쟁 갈수록 가열
지난 27일 서초동 한 아파트의 게시판에는 '47평형에 최대 75%인 6억 8000만원까지 대출을 해주겠다'는 한 저축은행의 광고전단이 나붙었다. 이 곳에서 50미터 가량 떨어진 옆 동 게시판에는 '타행대출로 갈아탈 경우 설정비 부담없이 최대 80%까지 대출을 해주겠다'는 또 다른 저축은행의 전단도 눈에 띄었다.
이곳에서 만난 주민 윤아무개씨는 "요즘에는 이름도 알지 못하는 캐피탈 업체에서 홍보용 차량을 이용해 최대 90%까지 대출을 해주겠다는 현수막을 내걸고 아파트 구석구석을 누비고 있다"며 "정부에서 담보대출을 죄어 집값을 잡겠다고 하지만 어디 이 같은 상황에서 실효를 거두겠느냐"고 말했다.
지난 25일 오전 서울 관악구의 한 아파트에는 한 캐피탈사에서 대형 천막을 차려놓고 '토종꿀'을 공짜로 나눠주면서 '32평형에 최대 2억 4000만원까지 대출을 해주겠다'는 전단을 뿌렸다. 그 이튿날인 26일에는 또 다른 캐피탈사에서 '최대 2억 7000만원까지도 대출이 가능하다'며 홍보에 나섰다. 이는 이 아파트의 평균 시세(3억원)의 90%에 달한다.
한 저축은행 관계자는 "소액 신용대출 부실화에 따른 피해가 다른 금융권에 비해 상대적으로 컸던 저축은행 입장에서는 그나마 안정적인 여신상품인 주택담보 대출에 영업력을 집중할 수밖에 없는 실정"이라고 말했다.
담보인정비율 '있으나 마나'... 호가 최고액 기준으로 담보대출
정부가 주택담보대출을 제한하려는 움직임을 보이자 이를 비웃기라도 하듯 금융권의 주택담보대출 유치경쟁이 극에 달하고 있다.
금융권마다 제한돼 있는 담보인정비율(LTV) 상한은 있으나마나한 실정이다. 은행·보험사의 LTV는 투기지역 40%(만기 10년 이상은 60%), 비투기지역 60%로 적용되고 있다. 2금융권은 이보다 높아 단위농협·신협은 투기지역 60%, 비투기지역 70%이며 상호저축은행은 투기지역에서도 70%가 적용된다.
그러나 대부분의 금융권에서는 호가 최고액을 기준으로 LTV를 계산하는 등 편법을 동원해 LTV를 늘리고 있다. 일부에서는 아예 LTV를 무시하는 곳도 있다. 이를 규제해야 할 감독당국에서는 오는 8월 정부의 종합부동산대책이 나올 때까지 당분간 실태점검을 미룬다는 입장이어서 이를 틈탄 금융권의 대출 유치경쟁도 더 치열해지고 있다.
이 같은 현상은 은행권에서도 나타나고 있다. 은행의 주택담보대출 규모는 지난 5월 말 현재 176조2000억원으로 작년 말에 비해 7조1000억원 증가했다. 지난달 주택담보대출금리가 다시 사상 최저치를 경신한 가운데 이달에도 시중은행의 주택담보대출 금액은 증가 추세에 있다.
내년 신BIS협약 앞두고 은행도 앞다퉈 늘려
구본성 금융연구원 연구위원은 "내년부터 시행되는 신 국제결제은행(BIS)협약을 앞두고 은행들의 주택담보대출 편중 현상이 지속될 가능성이 크다"며 "장기적으로 수익구조 안정화를 위해선 담보대출기간을 장기로 늘리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신BIS협약에서 주택담보대출 위험가중치는 종전 50%에서 35%로 줄어드는 반면 기업대출은 신용등급에 따라 20~150%로 차등 적용돼 주택담보대출 비중이 높을수록 은행 입장에선 안정성을 확보하게 된다.
홍종학 경원대 교수는 "주택담보대출이 투기자금화 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서는 단기 위주로 이뤄지는 LTV를 장기로 유도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해야 할 것"이라며 "단순히 LTV를 낮추는 식으로 접근해서는 그 효과를 거두기 힘들 것"이라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