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세청 대전정부청사 전경.
지난해 10월 북한산으로 의심되는 석탄 9000여톤이 국내에 유입됐다는 유엔보고서로 인해 논란이 한창인 가운데, 이 문제에 대한 조사를 진행하고 있는 관세청이 '진퇴양난'에 빠져든 모양새다.
정치적으로 민감한 사안에 휘말려 이쪽 저쪽에서 얻어맞는 '샌드백' 신세로 내몰릴 판이다.
발단은 자유한국당 심재철 의원의 '뜬금 폭로'에서부터 시작됐다.
심 의원은 지난 1일 관계당국(관세청)으로부터 북한산 석탄 유입과 관련한 조사 결과를 보고 받았는데, 지난달 '북한산이 맞다'는 결론으로 조사가 마무리됐다는 내용이었다고 폭로했다.
심 의원 측은 또 이미 조사를 마무리하고 결론도 내린 상황에서 외교·정치·경제적 파장을 우려한 청와대로부터 내려진 '함구령'에 따라 관세청이 고의적으로 조사결과를 숨기고 있다고 주장했다. 보고 당시 본청 조사총괄과장이 청와대 함구령까지 이야기 했다는 것.
관세청이 즉각 '조사가 진행 중이라는 내용 외에는 보고한 것이 없다'며 펄쩍 뛰었지만 엎지러진 물을 다시 담기에는 벅차 보이는 형국이다.
유엔 대북제제위원회가 최근 제출한 보고서에 따르면 러시아 홀름스크항에서 환적된 북한산 석탄 9000여톤이 스카이엔절호(파나마 선적)와 리치글로리호(시에라리온 선적)에 실려 작년 10월2일과 11일, 각각 인천과 포항으로 입항한 것으로 확인됐다.
국내 민간 업자들이 원산지를 속이는 방식으로 지난해 8월 채택된 대북제재 2371호, 즉 '북한산 석탄 수입 금지조치'를 위반한 것이다.
정부는 지난해 10월 '북한산 의심'이라는 첩보를 입수해 관세청을 중심으로 조사를 진행해 왔다는 입장이다. 다만 해당 석탄이 북한산인지 여부에 대해서는 확실한 결론을 못 내렸다는 것이 최근까지 정리된 정부의 입장이었다.
심 의원의 폭로가 '파괴력'을 가지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심 의원에 따르면 관세청 조사총괄과장은 지난달 26일 의원실을 찾아 비공개 보고를 통해 '조사가 7월 중 마무리됐으며 두 척의 화물선에서 반입된 문제의 석탄들이 북한산으로 최종 확인됐다. 검찰에 넘기려 하는데 수사 지휘가 아직 안 떨어져서 못 넘기고 있는 상황이라며 청와대로부터 이 건에 대해선 함구하라는 지시까지 내려왔다'고 말했다는 것이다.
관세청 조사총괄과장이 심 의원에게 한 보고 내용이 사실이라면, 최근까지 확실한 결론을 못 내렸다는 청와대 등의 공식 발표는 '대국민 사기극'으로 귀결된다.
또한 국내 수입 업체의 고의성 여부를 떠나 북한 핵 문제의 당사국인 한국에서 대북제재 위반 사안이 발생했다는 사실은 국제적 비판거리가 될 수밖에 없는 사안이다. 이 때문에 정부가 이 문제를 오랜 시간 동안 깔아 뭉게고 앉아 어물쩍 넘어가려 한다는 의혹이 제기되기도 한 것이다.
관세청은 심 의원 폭로에 즉각적인 반응을 보였다.
해당 조사를 아직 완료한 것은 아니기 때문에 '지난달 최종 판단을 내렸다'는 보고를 받았다는 심 의원의 주장은 사실이 아니라고 강조했다.
이어 지난달 26일 심재철 의원 방문시 관계자로부터 비공식적으로 북한산 석탄이 맞는지 확인해 달라는 질문을 받은 적은 있다며 이에 대해 조사총괄과장은 어떤 답변도 하지 않았으며 대신 '조사가 마무리 단계'라고만 설명한 바 있다고 해명했다.
관세청 관계자는 "실제로 아직 조사가 진행 중이고 조사가 끝나는 대로 검찰에 넘길 예정"이라며 "관세청이 심 의원에게 북한산 석탄임을 확인해 줬다는 것은 사실이 아니고, 청와대에서 이 사건에 대해 함구령을 내렸다는 말도 어불성설"이라고 말했다.
◆…김영문 관세청장.
김영문 관세청장도 지난달 27일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업무보고에서 북한산 석탄 유입 사건과 관련해 "조사가 마무리 단계에 있으며, 조만간 조사 결과를 공개하겠다"고 언급한 바 있다.
심 의원이 관세청의 비공개 보고를 받은 시점은 김 청장의 업무보고 하루 전인 26일이다. 만약 심 의원 주장이 사실이라면 김 청장은 '청와대 함구령'에 따라 국회에서 허위보고를 한 셈이 된다.
관세청이 북한산 석탄임을 이미 알고 있었다는 사실만 밝혀지면 청와대의 함구령도 기정사실화 되는 것이다.
심 의원은 "정부가 발표를 막고 있는지 어쨌는지, (관세청이 발표를) 안 하고 있다"며 "이미 상황은 알고 있는데도 이런저런 파장이 두려우니 이야기를 안 하고 있다고 봐야한다. 고의라고 봐야한다"고 지적했다.
관세청은 곤혹스러울 수밖에 없다.
지난해 유입된 석탄 9000톤은 물론, 북한 석탄을 실은 선박들이 최근까지도 총 32∼33회에 걸쳐 한국 내 항구를 드나들었다고 하는데, 10개월이 지나도록 이에 대한 파악도 제대로 못한데다 조사 결과도 빨리 내놓지 못하고 있는 것은 관세청의 무능을 스스로 증명한 꼴이 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심 의원의 말대로 북한산 석탄임을 확인해 놓고도 청와대의 함구령 지시로 인해 입을 닫고 있었다고 말하면 '방치 문제'와 '대북결의안 위반 문제' 등으로 더 큰 파장을 일으킬 수 있어 관세청을 떠나 정권에 까지 큰 정치적 부담을 안기게 된다.
관세청의 해명에도 불구하고 야당은 북한산 석탄에 대한 공세를 멈추지 않고 있다.
김관영 바른미래당 원내대표는 2일 국회에서 열린 원내대책회의에서 "북한산 석탄 문제는 단순한 국내 문제가 아니다. 국제사회와의 신뢰가 깨진다면 한반도 비핵화 논의과정에서 우리가 설 자리는 없을 것"이라며 "지금처럼 청와대가 소극적으로 대처하고 쉬쉬한다고 해서 어물쩍 넘어갈 수 없다"고 말했다.
그는 "청와대 묵인설, 관세청 함구령까지 나오고 있는데 정부가 진실을 은폐할 목적이었다면 매우 심각한 문제"라며 "정부는 누가 어떤 경로로 구입했고 최종 소비처가 어디였는지 국민이 납득할 설명을 내놔야 한다"고 강조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