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님, 오래간만이네요. 요즘 잘 계시죠?"
나와는 서울 유명 국립대에서 최고위과정을 함께한 해군 대령출신의 지인을 한 카페에서 만난 것은 제법 가을의 체취가 느껴지는 9월 초순의 어느 날 이었다.
"나야 항상 그렇지 뭐..송 세무사는 잘 있지? 요즘도 많이 바쁜가?"
작년까지 동기모임 내 가장 왕성한 골프모임을 주도적으로 이끌던 해군 구축함 함장 출신의 형님은 언제나 당당한 밝은 미소가 매력적인 분이었다. 그런데 그날은 다소 어두워 보이는 것이 평소와 같지 않음에 다소 놀랐다.
"요즘 어떻게 지내세요? 건강은요?"
내 질문에 대답대신 성격 좋은 미소만을 띤 채 식사장소로 옮길 것을 제안했고, 근처 식당에 자리했다.
"송 세무사한테 얘기하기가 좀 그런데 요즘 많이 어렵네. 군대 퇴직하고 지인 소개로 취업한 곳에서 임원으로 몇 년 있다가 눈치도 보이고 해서 퇴직 후 사업을 조그만 하게 시작했는데 생각보다 잘 안되더니 요즘은 직원들 내보내고 나 혼자 하고 있는데도 쉽지 않아"
사실 주위에 대기업이나 위의 지인처럼 공무원 출신 분들이 사업을 시작하고 얼마 있지 않아 털어놓는 전형적인 대화내용이었기에 대화 몇 마디를 나누고 어떤 상황인지 금방 알게 되었다.
이분은 오랜 기간 군 생활을 하면서 알게 된 인적 네트워크를 활용해 사업의 기회를 만들어 내고, 잘 운영하면 충분히 승산이 있을 것이라는 막연한 희망을 갖고 사업에 뛰어들었으나 현실은 결코 녹록치 않았던 것이다.
그 어렵다는 퇴직 후 창업에 왜 그리도 많은 이들이 뛰어들고 있을까? 요즘 들어 이런 분들과의 만남을 통해 알게 된 사실이 있다.
첫째. 과거 내 모습을 유지하고 싶다.
수십, 수 백 명의 부하들이 자신의 말 한마디에 야근을 밥 먹듯이 하고 군인이라면 일사분란하게 움직이던 시절을 보낸 분들은 알고 있다. 그 시절 자신이 얼마나 당당했던가를.
그 모습을 유지하고 싶지만 쉽지 않다.
물론 오르고 있는 동안은 모른다. 아니 내려오고 얼마동안은 금방 마음만 먹으면 다시 그 자리에 갈 수 있을 것만 같은 느낌이다.
기존 터전으로의 복귀는 어렵기 때문에 새로운 곳에서 다시 시작해 보려한다. 그동안 알고 지낸 핸드폰 속 수많은 인맥들이 내 전화에 반갑게 맞아주는 것은 물론, 당장이라도 자신을 불러낼 것만 같기 때문이다.
하지만 핸드폰 속 그 많은 인맥들은 그냥 전화번호일 뿐이라는 경험을 하는데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는다.
인맥은 내가 그들에게 필요한 사람일 때 즉 유용하게 활용될 수 있는 자산을 줄 수 있는 경우에만 의미 있다 것을 알아야 한다. 내가 줄 것이 없으면 인맥도 사라진다.
둘째. 자존감을 세우며 살고 싶다.
많은 직장인들이 알고 있다. 자신의 선배들이 퇴사 후 어떤 모습으로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를. 그리고 자신만큼은 선배들의 전철을 밟지 않으리라 다짐하며 미래를 준비하려고도 한다.
그런데 정작 의지만 있을 뿐 환경을 바꾸려하지 못한다. 사실 그게 어렵다는 것을 나는 안다.
회사를 다니면서 창업 준비를 하던 세무사 자격증에 도전을 하던 혹 다니는 조직에서 가장 오랫동안 다닐 수 있는 위치까지 오르기 위해 노력하든 목표는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그것을 왜 하는 가이다. 혹시라도 그 왜를 아직 못 찾았다면 이것을 추가해서 고려해보면 어떨까?
"나이 들어서도 내 이름으로 당당히 자존감을 세우며 살고 싶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