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을 비롯한 일부 수도권 집값이 걷잡을 수 없이 치솟자, 정부가 지난 13일 8차 부동산 대책(이하 9·13 부동산 대책)을 내놨다. 이른바 '충격과 공포'로 압축된, 지금까지 발표된 부동산 대책 중 가장 강력하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문재인 정부는 출범 후 지금까지 부동산 대책만 줄기차게 내놨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다.
지난해 6월19일 발표된 1차 부동산 대책은 부동산조정대상지역 추가 지정과 조정대상지역 내 청약 및 담보인정비율(LTV)·총부채상환비율(DTI) 등 대출 규제 강화가 주요 내용이었다. 즉 돈줄을 죄는 측면에서의 접근법을 시도한 것이다.
하지만 주택시장 불안은 지속됐고 한 달여 만에 또다시 '8·2대책'이 발표됐다.
역대급 부동산 대책이라 불렸던 당시 대책에는 투기지역·투기과열지구 지정, 재건축·재개발 규제 정비, 양도소득세 강화, LTV·DTI 금융규제 강화, 자금조달계획 신고 의무화, 특별사법경찰제 도입 등 수요억제와 세금·대출 규제 강화 등이 총망라 됐다.
지난해 10월24일에는 '가계부채종합대책'으로 불리는 대출 규제책이 또 나왔다. 2018년 신(新) DTI 도입, 총체적상환능력비율(DSR) 조기 도입, 가계부채 증가율 8% 이내 관리, 부동산 임대업자 규제 강화, 부실가구 및 생계형 자영업자 등 취약차주 맞춤형 지원 등이 포함됐다.
한달 조금 넘긴 11월29일에는 청년, 신혼부부, 고령자, 저소득 생애주기별·계층별 주거지원 방안 마련, 향후 5년간 공적지원주택 100만호 공급 계획 수립 등의 내용이 담긴 대책이 발표됐고 12월13일에는 임대주택 등록 활성화 방안이 발표됐다.
올해 7월5일에는 신혼희망타운 10만호 공급, 청년 우대형 청약통장 등 주거로드맵의 신혼·청년 지원 프로그램이 구체화됐다. 하지만 서울 강남에서 시작된 집값 상승세가 강북 지역으로까지 번지자 정부는 서울 동작·동대문·종로·중구 등에 대한 투기지역 추가 지정을 골자로 한 '8·27대책'을 서둘러 발표했고, 9·13 부동산 대책 발표까지 숨가쁘게 내달렸다.
9·13 부동산 대책에 대한 시장의 평가는 충격과 공포로 압축된다. 조정대상지역 2주택 이상 보유자에 대한 주택분 종부 최고세율 최고 3.2% 중과, 세부담 상한 150%에서 300%로 상향, 과표 3억∼6억원 구간을 신설 및 세율 0.2%포인트 인상 등의 내용이 담겼다.
아울러 정부는 주택임대사업자에 대한 과도한 세제 혜택도 대폭 하향조정, 다주택자가 조정지역내 신규주택을 취득할 경우 양도세 중과와 종부세 면제 혜택을 없애기로 했다.
이와 함께 국민주택 규모(전용면적 85㎡이하·수도권 외 읍면지역 100㎡ 이하) 이하에 대해 양도세 감면 요건에 주택가액 기준을 신설하고, 투기과열지구 내 주택을 담보로 받는 임대사업자 대출에는 주택담보대출비율(LTV) 40%가 적용되는 등 대출 규제도 강화했다.
어디에 얼마나... 이번주 '공급대책' 이목 집중
이번 9·13 부동산 대책의 효과에 대해선 의견이 다소 갈리고 있는 모습이다.
수위가 높아 혼란에 빠진 수도권 아파트 시장을 잠시나마 진정시키는 효과가 있을 것으로 내다보는 의견도 있지만, '세금으로 집값을 잡는 것은 분명한 한계가 있다'는 오랜 시장 전문가들의 주장도 그대로 살아 있는 상황이다.
성패의 관건은 이번주 내 추가발표될 예정인 '공급대책'이 쥐고 있다는 평가다. 시차는 분명 존재하겠지만 수요를 감당할 정도의 공급이 이루어지면 집값 안정에 도움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국토교통부는 추석 연휴 직전인 오는 21일 구체적인 주택 공급 입지와 수량 등을 밝힐 계획이다.
김현미 국토부 장관은 지난 13일 "지금 지자체와 절차를 진행 중"이라며 "법에 절차와 시일이 정해져 있기 때문에 (절차가)종료되는 21일 주택 공급 입지와 수량을 발표하겠다"고 밝혔다.
정부의 기본 방침은 수도권 내 교통 여건이 우수하고 주택 수요가 많은 지역을 중심으로 신규 공공 택지 30곳, 30만호를 개발하겠다는 것이 골자인데, 사실 이는 지난 8.27 대책에도 포함됐던 내용이다. 보존 가치가 낮은 3등급 이하 '그린벨트' 지역을 활용하겠다는 것이 새롭다면 새롭다.
문제는 그린벨트 해제에 대한 서울시의 반대 입장이 완강해 어떤 식으로 결론이 날 지는 여전히 불투명하든 것이다. 서울시는 9·13 부동산 대책 발표 직후 "그린벨트 해제 대상지를 정부와 협의한 바가 없다"며 그린벨트 해제에 대한 반대 입장을 재차 강조한 바 있다.
그린벨트 해제에 대해선 부정적인 입장을 밝혔지만 정부의 부동산 정책을 적극 지지한다는 입장을 밝히기도 한 박원순 서울시장이 정부와 어떤 합의점을 찾아낼 지 이번 주 공급대책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는 상황이다.
공시가 현실화, 토지공개념…남은 카드, 아직 많다
한편 정부의 부동산 대책이 여기서 그칠 것인지에 대한 관심도 커지고 있다.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정부가 쓸 수 있는 1차적인 카드는 전부 사용했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지만, 이 같은 고강도 대책에도 불구하고 '약발'이 먹히지 않을 경우 9차, 10차 부동산 대책이 나오지 못할 이유가 없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시각이다.
실제 정부와 여당은 후속 조치에 대한 가능성을 '활짝' 열어 놓은 상황이다.
김동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장관은 13일 브리핑을 통해 "공시가격을 점진적으로 현실화 하고 부동산 자산에 대한 과세를 강화하겠다"며 "부동산 시장이 불안해지면 추가적인 대책을 또 다시 마련하겠다"고 예고한 바 있다.
또한 그는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만약 이번 대책으로 집값의 불안정 상황이 다시 생긴다면 신속하고 확실하게 정부의 의지를 보이면서 부동산 시장 안정화에 기여를 할 것"이라고 거듭 강조한 뒤 "이번에 검토를 하면서 저희가 선택하지 않은 여러 대안들, 그밖에 다른 대안까지 생각을 하면서 상황에 맞는 집값 안정책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김 부총리도 밝혔지만 공시가격 현실화는 현재 여러 경제 및 시민단체에서도 적극적으로 주장하고 있는 내용이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은 9·13 부동산 대책에 대한 논평을 통해 보유세 강화의 최우선 과제로는 시세반영도 제대로 못하고 아파트와 형평성에도 어긋나는 불공평한 공시가격 및 공시지가 개선이라고 주장했다.
경실련은 정부가 세율을 인상하고, 신규 과표 구간을 만들어 종부세를 대폭 인상하겠다고 하지만 이는 국회의 법 개정이 필요하다며 "정부가 진정 보유세 강화에 대한 의지가 있다면 법 개정 없이 개선이 가능한 공시가격 정상화를 최우선으로 추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세율 인상으로 조세저항을 가중시키는 것보단 공시가격을 현실화하는 것이 정부 입장에서 꺼낼 수 있는 가장 효율적인 카드라는 이야기도 나온다. 아울러 경실련은 다주택자의 불로소득 근절을 위해 ▲임대사업자 등록 의무화 ▲임대소득에 대한 종합과세 시행 ▲세입자 전가를 막기 위한 전원세상한제 등이 도입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정부가 내놓은 방안들 외 남은 카드로는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언급했던 '토지공개념' 도입도 꼽을 수 있다. 토지공개념은 토지의 사적 소유는 인정하되, 공공이익을 위해 토지 소유와 이용을 일부 제한할 수 있다는 개념이다.
이 대표는 지난 11일 민주당-경기도 예산정책협의회에서 이재명 경기도지사와 토지공개념 실현에 뜻을 함께 했다. 이 지사는 "헌법의 토지공개념을 실현시키는 것이 중요하다"면서 토지보유세을 각 시·도가 선택 시행할 수 있도록 위임해줄 것을 건의했다.
이에 이 대표는 "1990년대 초반 토지공개념을 도입하고는 실제 20년 가까이 공개념의 실체를 만들지 않았다"며 "토지 공급이 안되어 집값이 폭등하는 구조를 극복할 종합대책을 중앙정부가 모색 중"이라고 답했다.
같은 당 홍영표 원내대표 역시 정부의 부동산 대책 발표 하루 전인 지난 12일 기자간담회를 통해 "지금까지 부동산 시장이 토지공개념과 정반대의 방향으로 커왔기 때문에 발표될 정책에는 토지공개념이 더 강력하게 반영될 것"이라고 언급한 바 있다.
이와 함께 재건축 가능 연한을 현행 30년에서 40년으로 늘리는 방안과 정비사업 임대주택 의무 공급 비율 확대 등도 추가 대책으로 거론되는 모습이다.
다만 재건축 연한을 늘릴 경우 주택 공급을 위축시키는 결과를 가져와 정부가 추진하는 주택공급 확대 방향과 어긋날 수 있다는 점에서 가능성이 낮다는 관측이 나온다.
일각에선 재개발·재건축 규제를 완화해야 한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장기적인 관점에서 보면 그린벨트를 해제해 주택을 공급하는 것보다 재건축 시장을 통한 공급 확대가 더 낫다는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