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세공무원의 '꽃'은 세무서장(4급)이라지만 이를 위해 넘어야 할 '큰 산'이 하나 있다.
이 큰 산은 국세공무원의 90% 이상을 차지하고 있는 6급 이하 비고시 출신 국세공무원들의 '진정한 로망'인 사무관(5급) 승진이다.
6급 이하 비고시 출신들이 오매불망(寤寐不忘) 사무관 승진을 염원하는 것은 단순히 급여 상승 등 현실적인 이유보다는 명실상부한 '관리자' 반열에 올라 가문의 영광은 물론 주변으로부터 남부럽지 않은 대접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사무관으로 올라서면 일정한 내정기간을 거친 후(이때 대부분의 사무관 내정자들은 일선 세무서 과장 직무대리로 근무하게 된다) 일선 세무서와 2급 지방청(대전·광주·대구)에서 과장 보직을 받으며 1급 지방청에서는 팀장의 역할을 한다.
사무관 승진 시점 연령이 낮을수록 그 이상의 직급으로 날아오를 가능성은 커지지만 9급 공채로 국세공무원 생활을 시작한 이들의 경우(타 부처 공무원들도 상황은 큰 차이가 없다) 8급과 7급, 6급을 거쳐 5급 사무관으로 오르기까지 20년 이상 시간이 소요된다.
즉 사무간은 비고시 출신 국세공무원들이 현질적으로 가장 높게 올라설 수 있는 마지막 직급이나 다름이 없다. 그만큼 사무관 승진 인사에 대한 국세청 내외부의 관심이 높고 승진 결과 등을 둘러싸고 이런 저런 뒷말이 나오는 등 '민심'을 가늠해 볼 수 있는 포인트이다.
◆…일선 세무서 개인납세과가 선호부서로 탈바꿈했던 이유는... = 임환수 전 국세청장은 재임시절 일선 세무서 소득세과와 부가가치세를 통합해 개인납세과를 만들었지만 1년 내내 신고만 받을 것이란 우려가 피어오르며 직원들 사이에서 '기피부서'로 전락했다. 이에 임 전 국세청장은 개인납세과 직원들에 대한 인사우대 정책을 전개했고 그 결과 개인납세과는 선호부서로 탈바꿈하면서 우수인재들이 몰리기 시작했다.
사무관 승진 인사, 조직개편 방향에 달려있다
사무관 승진은 본청장의 의중이 90% 이상 반영되어 결정되는 서기관 이상 승진 인사와 달리 '순번'을 의미하는 승진명부와 소속 지방국세청장의 권한(추천)에 따라 좌우되지만 큰 방향성은 최고 인사권자인 본청장의 '인사철학'에 따라 정해진다.
최근 5년(2014년~2018년) 동안 단행된 국세청 사무관 승진 인사의 흐름을 살펴보면 국세청장의 인사철학이 어디에 무게중심을 두고 있었는지 가늠해 볼 수 있다.
2014년~2018년 기간 동안 사무관 승진 인사는 승진규모 감소와 역량평가 방식 변경, 특별승진 규모 비공개 등 크고 작은 변화가 있었지만 가장 큰 변화는 본청장 교체 후 인사 방향이 특정부서에 대한 전략적 인사우대가 사실상 철폐되고 부선별 균형인사로의 전환이다.
임환수 전 국세청장이 취임했던 2014년 8월부터 그해 연말까지 국세청에서는 큰 변화가 있었다. 오랫동안 소득세과와 부가가치세과로 나뉘어져 업무를 해왔던 일선 세무서 조직이 '개인납세과'로 통합되는 조직개편이 단행된 것이다.
임 전 국세청장의 조직운영 정책의 핵심이었던 개인납세과 출범은 큰 진통 속에 진행됐다.
근로장려금 등 수급대상이 확대되면서 소득세과 업무가 폭주할 것을 우려해 부가가치세과 인력을 소득세과와 통합해 효율적으로 운영한다는 의도였지만 일선 직원들은 종합소득세 신고, 장려금 신청, 부가세 신고 등 '빛'이 나지 않는 신고업무만 1년 내내 하게 될 것이라며 강한 반발이 나왔다.
이러한 반발여론을 타개하고 자신의 조직운영 정책을 관철시키기 위해 임 전 국세청장이 꺼내든 카드가 '개인납세과 직원 인사우대' 정책이다. 보직 이동시 우대와 더불어 승진 우대라는 초강력 유인책은 임 전 국세청장 취임 2년차인 2015년부터 본색을 드러냈다.
지난 2014년 9월22일 단행된 227명 규모의 사무관 승진 인사에서는 전임 국세청장(김덕중 전 국세청장) 시절 인사방향이 어느 정도 정립되어 있었기 때문에 임 전 국세청장의 의지를 반영하기는 힘들었다.
다만 임 전 국세청장이 취임 당시 주창했던 '희망사다리 인사'는 반영 됐다.
사실상 임 전 국세청장 이전 국세청 사무관 승진은 본지방청 소속이 아니라면 승진은 '하늘의 별따기'나 다름없었다(본지방청에서 날고 기어도 힘들기는 마찬가지다). 이에 본지방청에서 일하다 이런 저런 이유로 일선 세무서로 전출되어 세월만 낚다 쓸쓸히 퇴직하는 것이 일종의 '경로'였다.
그렇게 많은 수의 능력있는 국세공무원들이 사라져갔다.
승진이라는 목표가 없으니 무기력할 수밖에 없는 것은 당연. 일선 조직의 활력이 떨어지는 문제도 파생됐다. 이러한 문제를 타개하기 위한 정책이 희망사다리 인사였고 실제로 승진을 사실상 포기하고 있던(?) 일선 세무서 소속 6급 고참 직원들이 수혜를 받았다.
이 아니더라도 일선 세무서에서 열심히 일해 성과를 내면 승진이 가능하도록 한다는 희망사다리 인사는 그동안 사실상 전무하다시피했던 일선 세무서 소속 6급 고참 직원들이 및 고령의 사무관 승진자들을 다수 배출시키는 시발점이 됐다.
2014년 사무관 승진 때는 227명 중 일선 세무서 소속이 52명(전체 승진인원의 32%)으로 지난 2012년 승진인원 24명(23.5%), 2013년 40명(27.6%)보다 대폭 늘어나 일선 직원들의 호응을 얻었다.
그동안 국세청에서는 본청과 지방청 인사 우대로 인한 일선 직원들의 소외 때문에 조직 내 갈등이 유발됐고 일선 직원들은 희망사다리가 이런 갈등을 해소시켜줄 것이라 기대했다.
본격적인 '개인납세과' 우대…부작용도 '속출'
임 전 국세청장이 취임하고 해가 바뀐 2015년에는 많은 일이 있었다. 서울 시대를 정리하고 세종으로 옮겨온 국세청은 차세대 국세행정시스템(NTIS)를 개통하고 일선 세무서에 개인납세과를 신설했다.
임 전 국세청장 입장에선 이 모든 것을 해낸 직원들에 대한 인센티브가 필요했고 이는 2015년 이후에 단행된 사무관 승진 인사에 반영됐다.
개인납세과 소속 승진자는 2014년 9명에서 2015년 22명으로 증가했다가 2016년 35명으로 대폭 증가했으며 한승희 국세청장이 취임한 2017년에는 22명으로 감소했다. 숫자만 비교해본다면 조직개편을 했었던 임 전 국세청장이 떠난 2017년부터 개인납세과 우대가 사라졌다고 보는 것이 맞을 수 있지만 단순하게 이렇게만 해석하기는 어렵다.
사무관 승진 인원은 2014년 227명에서 2015년 231명으로 역대 최대라는 기록을 세웠다가 2016년부터 208명으로 줄어들더니 급기야 지난해는 150명으로 대폭 감소했다.
전체 승진인원 대비 개인납세과 승진 비율을 본다면 2014년 4%에서 2015년 10%, 2016년 17%로 꾸준히 늘어나다가 2017년 15%로 다소 감소했다.
2014년 일선 세무서 승진자는 52명으로 이 중 9명이 개인납세 분야 소속 직원으로 비율은 17%였다. 2015년에는 57명 중 22명이 승진해 39%의 비율을 보이다가 2016년에는 52명 중 35명이 승진해 67%의 비율로 치솟았다. 지난해에는 36명 중 22명으로 61%의 비율을 보였다.
조직개편 당시 '지옥의 개인납세과'라는 별칭을 얻으며 기피부서로 전락했던 일선 개인납세과는 승진이라는 보상이 제대로 주어지자 선호부서로 탈바꿈했고 국세청 내 우수자원들이 몰리기 시작했다.
그러자 생각지 못한 문제가 불거졌다.
그동안 국세청의 브레인들이 간다고 알려진 법인과 재산세제 부서에 우수자원이 부족해 심각한 인재고갈 현상을 겪게 된 것이다. 과거에는 승진명당으로 알려진 이 부서가 비선호부서로 바뀌었고 이는 즉각 국세청 조직에 또 다른 갈등을 유발시켰다.
일을 제대로 처리하지 못하는 국세공무원들을 보는 세무대리인들은 불만을 터뜨렸고 해당 부서 직원들 역시 일할 사람이 부족하거나 혹은 업무가 제대로 돌아가지 않아 힘들다고 호소했다. 심지어 일부 직원들은 '역차별'을 받고 있다고 주장했다.
[②편으로 이어집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