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히 건설사들의 분식관행은 업계에서조차 사실을 대부분 인정하고 있는 상황이어서, 두산사건을 계기로 분식의혹을 받게 된 건설업체들이 줄지어 '자진 고백'할 것인지 여부에도 관심이 쏠리고 있다.
건설업체들은 참여연대와 경실련 등 시민단체와 회계업계에서까지 "건설업계의 회계질서를 바로 잡기 위한 제도적 장치가 마련돼야 한다"는 공격을 받는 등 십자포화를 받고 있는 실정. 그래서 고민의 깊이가 더해지고 있다.
건설업계의 분식회계관행은 동아건설의 사례에서도 극명하게 드러난 바 있으며, 지난 2001년 12월부터 지난달까지 분식회계 혐의 등으로 인해 금감원으로부터 징계를 받은 건설업체만 ㈜대동주택 등 무려 23개 업체에 달한다.
◆ 건설업계 분식 관행 어떻게 이뤄지나
건설업계와 회계사업계 등에 따르면 건설업계 분식회계는 두산건설의 예처럼 주로 특정 사업장의 원가를 다른 사업장으로 옮기거나, 아파트 신축이나 분양공사 등 매출액의 기준이 되는 '공정률'을 조작해 매출을 일시적으로 부풀리는 방법으로 이뤄진다.
또 ▲반제품 등 재고자산을 실제 가치보다 부풀리거나 ▲아파트 미분양·공사중단 등에 의한 손실을 줄이고 ▲재개발·재건축 이주비 지급에 따른 금융비용을 부풀리거나 ▲금리폭등 등으로 인한 차입금이자 부담을 늘리는 방법도 흔히 사용된다.
동아건설도 10여년간 7000억원에 달하는 분식회계를 하면서 해외 및 국내 공사관련 매출액·매출채권 등을 부풀리고 재고자산을 부풀린 사실이 드러났었다.
당시 동아건설은 리비아 공사수익(매출액) 등 해외공사 매출액을 부풀리는 수법으로 순이익과 외형을 부풀리는 수법을 동원했다고 밝힌 바 있다.
◆건설업계 '분식 관행(慣行)' 왜?
건설업체들은 시공능력평가결과에 따라 공사수주 규모가 달라지기 때문에, 매출액을 부풀려 능력을 과대포장하고 싶은 욕구가 언제나 도사리고 있다.
공정률을 조작하더라도 이를 정확히 확인하기가 힘들고, '예정원가'라는 불확실한 요소가 자리하고 있기 때문에, 이 같은 분식욕구는 더 커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 업계관계자들의 전언이다.
특히 외부 감사인인 회계법인이 공사현장을 확인하는 등 감사절차를 소홀히 하는 것도 원인이 되고 있는 것으로 지적되고 있다.
금감위 관계자는 "건설업체가 매출원가나 매출액을 부풀리는 사례가 흔하다는 것은 회계사라면 누구나 알고 있는 상식"이라며 "이에 따라 건설업체에 대한 감리를 실시할 때에 이를 집중적으로 조사한다"고 말했다.
某회계법인의 회계감사 책임자는 "건설업계는 분식회계 위험이 상존하는 곳"이라며 "건설업체가 총 예정원가라는 불확실한 요소를 가지고 공사진행률을 조작한다면 회계감사인이 이를 알아내기는 힘들다"고 털어놓았다.
그는 이어 "건설업체의 매출수익은 총 공사대금에 공사진행률을 곱하는 계산 구조로 돼 있고, 공사진행률은 투입한 원가를 총 공사예정 원가로 나눠서 산출한다"면서 "공사예정 원가는 말 그대로 '예정치'이기 때문에 매년 달라질 수밖에 없어 현장확인이 어렵다"고 말했다.
현장에 가서 확인을 한다고 하더라고 회사담당자가 "앞으로 이런저런 이유로 총 예정원가가 달라 질 것"이라고 주장하면, 이를 입증하기가 보통 힘든 것이 아니라는 설명.
대한건설협회 관계자도 기업이 의도적으로 분식회계를 자행하기 위해 재무제표를 조작한 상황에서도 외부 감사인인 회계법인이 회계감사를 실시할 때 공사 진행률 등을 직접 확인하지 않거나, 분식회계 사실을 알고도 그냥 넘어가는 '눈뜬 장님'이 된다면 건설업체의 분식회계는 얼마든지 가능하다고 털어놓았다.
그는 "두산건설은 과다계상을 통해 매출액을 유지한 뒤 이 현장에서 저 현장으로 수년간 계속 밀려 계산하는 경우"라며 특히 "업체와 회계법인이 한통속이 되면 이같은 문제는 얼마든지 발생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이어 "(분식회계 여부는) 양심의 문제라고 본다"고 덧붙였다.
참여연대 김경률 회계사는 "건설업분식회계 관행이 고쳐지지 않는 이유는 우선 각 현장에 실질적으로 기입된 만큼의 원가가 투입됐는지, 공사가 실제로 얼마만큼 진행됐는지 확인하기가 쉽지 않다는 점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특히 "전혀 공사가 진행되지 않았는데도 30∼40% 가량 공사가 진행된 것처럼 부풀리는 등 일정 규모 이상의 분식회계는 회계법인이 확인할 수 있다"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두산처럼 큰 규모의 분식회계를 저지른 것을 보면 회계법인이 관여되지 않고서는 불가능하다는 것을 말해준다"고 꼬집었다.
또 "건설업체 분식회계 등은 금감원 감리도 서류상으로만 확인 과정을 거치기 때문에 밝혀지기 힘들다"고 주장했다.
◆ 건설업체 분식 '고해성사(告解聖事)' 계속될까
분식회계가 관행화 돼 있다는 지적을 받고있는 건설업체들의 고해성사가 잇따를지 여부가 관심이다.
某 건설업체 회계팀장은 "내년까지 분식회계를 자진 수정할 수 있도록 유예기간을 준 만큼 과거 분식을 시정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 회사가 많은 것으로 알고 있다"고 밝혔다.
그는 그러나 "분식규모가 적고 경영에 자신있는 회사들은 분식을 떨어내려고(해소하려고) 하겠지만 분식규모가 크고 떨어낼 경우 회사가 자생할 여력이 없는 곳은 위험하더라고 그냥 놔둘 수밖에 없어 고민하는 상황"이라고 털어놓았다.
건설업협회 관계자는 "증권집단소송제가 시행되거나 금감원의 감리가 강화되면 분식회계는 힘들어 질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